무엇도 중요하지 않게
나를 이루는 많은 단어들 사이엔 ‘자아도취’가 있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병증적 사고에 의한 어느 정도의 자기혐오를 가지고 있고, 또 자아도취의 기저에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에 대한 멸시를 함께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나는 나를 좋아한다. 특히나 나는 잡기에 능해, 스스로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한다” 라고 말할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평균치 이상을 해낸다. 주로 이런 부분을 자랑스러워 한다.
어디가서 특별하게 빛날 만큼의 재능은 없어도, 이만하면 다재다능이라는 말을 자처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나 역시 잘 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사실 못하는 것 빼고 잘해,라는 말 자체가 못하는 건 못한다는 의미고, 알량한 자아도취를 위해 못하는 것들은 의식적으로 피해 왔으니 못하는 건 영원히 못하는 것의 범주에 머물 뿐 실력이 늘 일이 없기도 했다.
나는 나의 주양육자였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우렁찬 음치로 자라났고, (몇 년 전 할머니 댁에서 지내던 시절, 새벽녘 할머니께서 울부짖듯 오열하는 소리에 깬 적이 있다. 한참의 고민 끝에 거실에 나가 보니 할머니는 ‘가요무대’를 보며 노래를 따라부르고 계셨다. 정말로 즐겁게.) 음악을 전공하여 자주 함께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디 나가도 빠지지 않는 박치가 되었다. 마트며 길거리며를 가리지 않고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추는 어머니에게서는 몸치라는 점을 물려받았다. 음치 박치 몸치 트리니티를 한 몸에 가지고 자란 덕에 노래와 춤을 보여야 하는 자리는 기색만 보여도 도망다니고는 했다.
일상 중에서도 몸치인 게 뻔히 보였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축제 장기자랑에 나간다며 춤 연습을 할 때 당연하게도 내 이름은 빠져있었다. 어차피 이름이 같이 올라가 있었다면 질겁을 하고 빼달라고 하길 바랐을 터였다. 방과후 교실에 함께 남았지만 친구들은 춤 연습을 했고 나는 책상 세 개를 이어붙인 뒤 그 위에 누워 책을 읽었다. 애초에 춤 추는 건 내 일이 아니었다.
20대 초 청소년 대상의 봉사활동을 할 때 율동 담당이 된 적 있다. 쉬운 박자의 대중가요에 맞춰 가사 내용과 흡사한 직관적인 율동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준비운동을 겸하는 활동이었으니 동작만 크게 크게 하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활동이 내 담당이 되었다는 게 너무도 싫었다. 부끄럽기도 했다. 그 봉사단체의 단체장이 나를 사용하는 방식이 특히나 싫었다. 내가 율동 담당이 된 건 율동을 잘해서도 열의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니가 춤을 추면 애들이 웃어. 청소년의 관심을 끌고 통솔 하는 건 어려운 일이어서, 내 우스운 몸동작을 청소년들을 이끄는 도구로 쓰고자 한 것이다.
어제 정오를 조금 지나서였다. 짝과 함께 마주 앉아 점심을 먹었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인지 오른쪽 발 끝이 조금씩 저렸다. 못견딜 만큼은 아니어서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짝이 자신의 왼발 끝을 만지며 다리가 저리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살짝 저리던 감각이 발목 너머까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손으로 꾹 눌러보니 찌릿한 느낌이 종아리까지 퍼졌다. 상 너머 앉은 짝도 꼭 나처럼 자기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우리 춤 출까?
춤을 못추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짝의 목을 끌어안고, 몸를 좌우로 움직이는 것 뿐이었다. 음악도 없고 정해진 동작도 없었다. 그냥 몸과 몸을 맞대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닿을 때마다 올라오는 발바닥의 찌릿한 감각을 느낄 뿐이었다. 서로의 품에 닿는 호흡에 맞춰, 춤도 포옹도 아닌 움직임을 함께했다.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엔 포크댄스도 참 많이 추었다. 나와 짝이 된 사람들은 다 빨리 순서가 지나가길 바라곤 했다. 번번히 상대방의 발을 밟았고 발을 밟지 않을 때는 밟지 않는다는 것에만 집중해 제대로 동작을 하지 못했다. 딱딱하게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 내게도 짝에게도 지칠만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재밌는 짝들도 있었다. 나처럼 아예 춤을 못추거나, 내가 춤을 못춘다는 걸 알아서 동작 소화를 애진작에 포기한 이들이었다. 스텝도 동작도 없이 손이나 잡고 흔들다가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도는 건 참 재미있었다. 춤이 재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면 포크댄스도 참 재밌는 활동이겠다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춤을 추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 학창시절의 끝무렵 브로콜리 너마저의 ‘춤’이라는 곡을 들었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떡해. 어떻게 해야 해. 춤을 추기 위해 짝을 만나고 손을 마주잡고 몸을 움직이면, 내 서툰 동작이 혹시 짝에게 불편하지 않을까, 아니 불편하지는 않더라도 그냥 이 우스운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 걸까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뭔가를 망치지 않을까. 나와 짝이 되는 이들이, 빨리 이 순서가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게 되지 않을까 겁을 먹기도 한다. 짝을 만나고 춤을 추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그렇다. 꼭 짝이 아니어도, 춤을 추지 않아도 그런 맘이 드는 건 마찬가지라, 특히나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 예민했던 학창시절의 후반 이 노래를 들으며 참 먹먹한 공감을 했던 것 같다.
짝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랫만에 ‘춤’을 다시 들었다. 우린 긴 꿈을 꾸고 있어. 문득 꿈을 깨진 않을까. 눈을 뜨면 모든 게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마치 없었던 일 처럼. 난 눈을 감고 춤을 춰. 그리고 짝과 함께 춘 춤을 생각했다. 우리가 춘 것도 춤일까.
율동 담당 봉사를 하는 건 참 싫었다. 시간을 내서 율동을 배우러 가는 것도, 집에서 혼자 연습을 하는 것도 당연히 싫었다. 그래도 재밌는 게 있긴 했다. 청소년들이 내 율동을 보고 마구 웃음을 터트릴 때, 나는 일부러 더 과장된 동작으로 율동을 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재밌으면 됐지, 생각하면서. 그럴 때면 율동을 하는 것도 조금은 더 재미있었다.
짝의 목을 끌어안고, 몸을 맞대고, 머리에 얼굴을 묻고 몸을 흔들면서 생각했다. 춤을 더 잘 추고 싶다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춘 게 썩 그럴듯한 춤이 아니었더라도, 즐거워 움직이면 그게 다가 아닐까.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해, 그런 이름 아래 못하는 걸 숨기기 보다는 그냥 못하면 못하는대로, 음악도, 정해진 스텝도 없는 채 저린 다리가 풀릴 때까지 몸을 흔드는 것도, 재미있다면 춤이 아닐까.
다른 사람과 춤을 추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처럼 뻣뻣하고 실수가 잦은 몸치들에게는. 동작을 해내는데만 급급해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살피는 게 어렵고, 조금 익숙해지면 욕심을 부리느라 그나마 해내던 움직임마저도 망치고 만다. 때문에 겁을 먹어, 춤을 추는 걸 더 어려워했던 것 같다.
어제 짝과 함께 춘 춤은 참 재미있었다. 가까이 닿은 채 가만히 움직여 참 좋았다. 갑자기 춤을 춘다는 것도 우스워서 재미있었다. 춤을 추는 건 참 힘들다. 그리고 끝나지 않길 바라게 된다. 우리가 추는 춤도 꾸는 꿈도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추는 동안 재밌다면 충분히 좋은 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춤을 못춘다. 그리고 재미있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