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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불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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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Nov 09. 2023

너라도 나를 정상이라고 해주면 안 돼?

“내가 이상한 사람 같으니까 병원에 가는 거 아니야, 너라도 나를 정상이라고 해주면 안 돼?”


묵묵부답이었다. 요즘 짜증을 심하게 냈었던가. 20대 중반 즈음,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증상이 제일 심했을 때, 그때와 비교해 보면 새 발의 피도 못 미치는 짜증이었다. 당시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남자친구를 괜히 보듬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우울증 늪에 빠진 양 나도 같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늪 깊숙이 끌려들어 간 걸지도 모른다.


길바닥에서 악을 쓰며 싸우는데, 20대니까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나를 너무 화나게 만들었으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나는 화가 많지 않았던 사람 같다. 그럴 수 있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고해성사하듯 나에게 어떤 수치스러운 이야기도, 또는 본인이 저지른 나쁜 일도 전부 말해주곤 했는데, 그건 내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서였다고 나중에서야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해도 비난받지 않아서 좋았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무딘 사람이었다. 어떤 자극에도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발령 문제로 초등학교를 2번이나 옮겼다. 초등학교를 어쩌다 보니 3개나 다니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어딘가에 적응하고 소속되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반대로 누군가와 헤어져져야만 하는 이별도 쉬웠다. 어떤 외부의 변화에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어렸을 때 강제로 깨닫는 바람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약으로 완전하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약은 증상만 완화시킬 뿐 나 스스로 주문을 외듯 세뇌시켜야 한단다. 그 말인즉슨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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