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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연 기자 Feb 05. 2021

<승리호> - 좋은 어른이 될 거야



어떤 사람들은 <남매의 집> <짐승의 끝>처럼 계보나 좌표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독창적 디스토피아를 그렸던 조성희 감독이 <늑대소년> 같은 멜로영화를 만들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 이후 확실히 그의 고유 인자는 재정의됐다. 조성희 감독의 마음속엔 변하지 않는 소년이 있다. <남매의 집>에서 괴한들로부터 여동생 순이를 지키지 못했던 오빠 철수는, 아직 세상과 소통하는 법은 모르지만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순정을 간직한 ‘늑대소년’의 이름으로 반복되고, 이곳의 순이(박보영)는 말랑한 순정 만화 속 소녀가 된다. <탐정 홍길동>은 추리력은 비상하나 과거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미성숙한 성인 남자가 어린 자매와 동행하며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다. <승리호>의 주인공들은 전작보다 훨씬 성숙한 어른들이지만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로 다툰다. 공교롭게도 장르적으로는 어린 시절 봤던 영화들, 예컨대 <인디아나 존스> <백 투 더 퓨처> <스타워즈> 시리즈나 <구니스> 같은 1980, 9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영화를 보며 쉽게 벅차고 순수한 열망을 싹 틔우게 했던 그 시절 그 비디오 영화(혹은 ‘주말의 명화’)의 활력을 조성희 감독의 세계관에 완벽하게 이식했다. 


꽃님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흥미로운 것은, <승리호>가 전작들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공생과 화합 등 그들보다 더 어린 세대가 가진 희망을 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한다는 데 있다. 제임스 설리반의 ‘좋은 세상’과 태호(송중기)가 딸 순이에게 약속했던 ‘좋은 사람’의 직접적인 대비는 성장제일주의에 경도된 시대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어드벤처물의 두근거림을 추진력 삼아 대안 가족의 탄생으로 뭉클한 감동을 안기는 여정에 흔쾌히 합승하다 보면 인류의 공생을 제안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순진하게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에 영화적인 설득을 더하는 것은 (조성희 감독의 전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예고편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두 어린이다. “우주에서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대요. 우주의 마음으로 보면 버릴 것도 없고 귀한 것도 없고요”라는 꽃님이의 말엔 ‘나노봇’보다 강력한 힘이 있고, 특히 조성희 감독이 작사하고 김태성 음악감독이 작곡한 노래(마지막 쿠키로도 나온다.)의 가사가 등장하는 어떤 장면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업동이도 울 것이다. 그렇게 <승리호>는 소년 만화의 순진한 정의감처럼 비칠 수 있는 목소리에 기어코 보는 이를 흠뻑 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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