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비즈니스와 사생활 사이
제가 기자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주변 친구들에게 많이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기자가 되면 멋진 영화배우들하고 술자리도 하고(...) 평소 좋아했던 감독과 술친구가 되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음... 이런 로망이 있는 건가? ^^;;;;
상대 쪽에서는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친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의 기준이 다르지만, 제 쪽에서는 사적으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업계 분들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굳이 업무가 아니라도 만나서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술 마시고, (코로나 전에는) 새벽까지 마시고... 넵, 하긴 합니다. 게다가 전 술을 좋아해서요.^^; 인스타그램으로 맞팔이 되어 있는 분들과 살갑게 인사도 자주 나누죠. 그런데 사적으로 친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수다도 자주 떱니다. 요즘 좋아하는 드라마, 영화, 예능 등등등 콘텐츠 관련 수다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역시 자주 연락을 나눌 사람들과 일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저는 이분들을 주말에 만나지는 않습니다.^^;;;
기자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뭐가 더 옳다고 할 수는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자로서 특종을 잡기 위해, 독점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는 평소에 관계를 잘 맺어 놓는 게 필요하긴 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사적으로 아주 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해외여행도 같이 다니는 경우도 보긴 했습니다. 혹은 기자가 되기 전에 원래 알던 사람들이 영화계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지요. (저는 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기자가 되기 전 저의 지인들 중에 원래 이쪽 일을 하고 있던 분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케이스가 거의 없습니다만.) 그래서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면 저는 상관없다고 봐요. 개인적으로는, 어쨌거나 영화에 대한 리뷰 혹은 20자평 같은 것을 쓸 때 제가 좋지만은 않은 말을 쓸 수 있으니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게 제 쪽에서 마음이 편한 것 같아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고 선을 긋는 편입니다.
그런데 친하다고 별점을 잘 준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억울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제가 일하는 회사에 관한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차라리 기자/평론가의 안목을 욕 하지, 친목질이 아니고서야 별점을 잘 줄 수가 없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게 더 놀랍고, 정말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이상한 망상을 하시는 분들은 기자/평론가가 특정 인물을 싫어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저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동료 기자들, 타 매체 기자가 누구누구를 싫어해서 작품에 혹평을 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글을 여러 번 봤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낭설을 보면 제 일이 아닐 때도 너무 화가 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여성 혐오적인 콘텐츠를 비판한 전적이 있는 사람인데 한국 남자 배우들을 미워하고 SNS에 욕을 쓴 적이 있다고 진지하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머리에 총 맞았나요? 맨날 업무 때문에 얼굴 보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영화 관계자, 배우 소속사 관계자들인데? 제 SNS에는 그분들이 맞팔되어 있는데?) 아마 저 여자는 페미니스트다=>그러니까 한국 남자 배우들을 미워할 것 같다=>남자를 미워한다, 가 된 것 같습니다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증거 자료를 모두 수집한 후 고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는 직업입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인물 피처와 인터뷰 기사를 썼습니다. 몇 개만 읽어보셔도 그 허위사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번에 개인 SNS에도 쓰긴 했지만, 제가 특정 영화인이 범죄자도 아닌데 험담을 하는 것을 보신 분은 제가 1건당 100만 원을 드릴 테니 꼭! 캡처 증거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영화 <아이리시맨>에 별 5개를 준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하고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오로지 성별 만을 기준으로 영화를 판단한다고 망상하며 여성 필자를 후려치고 공격하는 건 수십 년된 클리셰 같은 거라 굳이 귀찮게 해명하고 싶지도 않지만.)
조금 솔직하게 얘기해볼까요? 모든 기자에게 허용되는 이야기이겠지만, 업무 때문에 만났을 때 저를 너무 힘들게 했다거나 무례한 일을 당했다거나 하면 싫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기자도 사람인 걸요. 저도 상식 밖의 일을 겪어서 크게 분노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어떤 작품에 안 좋은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영화나 시리즈는 한 사람만의 작품이 아니지요. 얽혀 있는 사람이 정말 많고 그분들과 업무 때문에 계속 얼굴을 봅니다. 누구 하나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게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출연한 작품에 굉장한 호평을 한 적도 있습니다.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협업한 결과물이고, 작품은 작품으로 판단하는 것이니까요. 배우 관련 글도 호의적으로 잘 써줬습니다. 저는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좋은 것들을 얻어갔으면 하고 바라니까요.) 역으로 "이야, 사람 좋네" 라며 좋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기왕 하는 일 행복하게 하려면 가급적 상대의 장점을 찾고 그걸 주로 생각하자는 쪽이라 웬만하면 좋은 기억을 가져갑니다. 그런데 그게 리뷰와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고, 제가 신뢰하는 다른 기자들도 당연할 겁니다. 그래야 프로다, 라고 갈 것도 없이 그냥 당연한 거 아닌가요? 멍청하지 않으면 다 일은 이렇게 하죠.
어쩌다 보니 오늘은 침착하게 시작해서 약간 분통을 터뜨리며 끝나는 글이 됐네요. 다음에는 좀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