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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Dec 30. 2023

남편과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길

손을 잡으려다 어색함에 옷깃을 여미고 결국 두 손은 주머니로 향했다. 크리스마스에 내린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은 동네 언덕을 걸으며 이렇게 단 둘이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얼마만인지 생각했다.


"우리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뭔지 기억나?"

"글쎄. 장모님께 아이 맡기고 어벤저스 보지 않았었나?"


그랬다.


남편이 좋아하던 어벤저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보기 위해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갔던 것이 2019년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연애시절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데이트코스는 영화를 보고 맛집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둘 다 내향형인 탓에 사람 많고 번잡한 곳을 싫어했다. 주로 영화관 커플석을 예매해 조용히 관람을 하고 밥을 먹으며 함께 본 영화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주로 아이와 함께 볼만한 캐릭터 만화 시리즈를 보았고, 언젠가부터는 입장료가 아깝다는 핑계로 남편과 아이 둘을 들여보내고 나는 혼자 카페에서 시간 보내기를 더 즐겼다. 우리는 함께 있고 싶어 결혼했지만 언젠가부터 혼자 있고 싶어졌다.


<서울의 봄>이 개봉할 무렵부터 함께 보러 가자고 이야기는 나눴지만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은 남편도 회사에 가 있었고, 주말이면 아이를 맡길만한 곳이 없었고, 또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함께 영화를 봐야할까 싶었고. 남편이 모처럼 휴가를 써도 집에서 밀린 잠을 자며 쉬기를 원했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난 2016년부터 2023년까지 놓친 천만영화가 12편이나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조조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예매를 하며 물었다.


"커플석으로 예매할까? 연애 때처럼?"

"티켓 값만 비싸게 뭐 하러."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낭만보다는 현실을 생각하는 9년 차 부부니까.


영화를 보고 아이를 데리러 가기까지 20분 남짓이 남았다. 아이의 학교 주변을 산책하며 영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남편과 나는 진짜 안 맞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너무나도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왜일까? 깊이 대화할 여유도 없이 겉만 보고 내 멋대로 해석했기 때문아니었을까.


2024년.


남편은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정했다. 이로써 우리는 1년을 온전히 함께 있기로 결심했고, 백수가 되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이제 조조영화를 함께 보러 갈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영화관 커플석을 예매하기도 망설여질만큼 경제적 여유가 사라졌다.  


우리의 1년은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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