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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기 Dec 06. 2023

영화 괴물: 불의 세계에서 물의 기억을 그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보고

#1 괴물은 누구인가?

인간이 만든 세속적인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오해와 희생을 낳고 있는가? 평범함 속에 가려진 잔혹함은 개인의 마음에 있는가? 아님 사회에서 비롯되는가? 괴물을 찾으려는 내가 바로 괴물이다.


#2 물에 대한 동경

영화 내내 어른들의 시점이 서로 엇갈리는 동안, 아이들은 그들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차곡차곡 만들어간다. 여기에 더해진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아쿠아'는 현실을 초월한 환상적인 물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불'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그렇게 아름다운 '물'막을 내린다.

세탁소에서 열심히 일하는 엄마, 어항 속 금붕어를 아끼는 호리 선생, 술에 취해도 식물에 물을 주는 요리의 아버지는 모두 태생은 선한 물의 인물들이다. 다만 세상이 그들을 흰 선 안에 존재해야만 하는 속적 '어른'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엇갈린 시점 1: 자신이 낳은 아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괴롭고 불안한 시점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오해에서 비롯된 그 분노는 애먼 호리 선생에게 향한다. 당신이 건물에 불을 지르지 않았냐며.

엇갈린 시점 2: 오해에서 비롯된 억울함을 이해시키려는 괴로운 호리 선생의 시점은 아이들이 아닌 학교로 향한다. 무기력하게 매뉴얼 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학교에 대해, 그리고 총책임자인 교장에 대해 분노한다. 당신이 손녀를 죽게 만든 거 아니 나며.

시점 3은 철저하게 아이들의 시선이다. 어른들이 서로를 향해, 정확히는 타인의 마음을 향해 불을 지르는 동안, 미나토와 요리는 세상을 벗어나 그들만의 환상열차를 꾸며간다. 이 영화는 엄마의 불안한 시점으로 시작되지만, 아이들의 아름다운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태풍과 빗물을 뚫고 좁은 도랑을 기어 나와 저 멀리 해가 비추는 다리를 건넌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양수에서 비롯된다. 물의 세계에서 태어났지만, 불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순을 보여준다. 견디기 힘든 일상 속 불의 고통 속에서, 사실은 아름다운 물의 세계가 존재했었음을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그리고 있다. 그래서 미나토의 엄마는 물의 세계를 동경하며, 불의 세계 최전방에서 물을 뿌리는 소방관들에게 "힘내라(がんばれ)!"를 외치는 것이다.


#3 현대도시와 현대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평범'한 가족 모습 속에 감춰진 비정상적 요소들을 아주 섬세하게 들추어낸다. 그것은 그 자체로 관객들에게 불쾌함을 준다. 우리는 가족에 대한 믿고 싶은 모습만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대표적 해체주의자이자 포스트 모더니스트라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동안 전혀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들을 제시해 왔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비정상적 가족의 모습에서 보편적 가족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감독이 "이것 또한 가족의 모습입니다"란 메시지로 관객의 뒤통수를 때렸음을 깨달아야 했었다.

나는 도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러한 감독의 메시지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곤 했다. 연구를 통해 경계를 구분하기 힘든 현대도시의 특성들을 발견해 오면서, 고레에다 감독이 묘사하는 현대 가족의 상 또한 현대도시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대도시와 현대가족은 그 복잡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이해가 가능한 대상인가? 아니면 그것들을 담기 위한 새로운 틀이 우리 사회는 필요한가?라는 질문들을 던진다.

무심코 타인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우리 자신이 바로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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