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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Mar 25. 2024

‘더하기’ 인생이 아닌 ‘곱하기’ 인생

101번째 브런치 글

그림일기 940일

크로키 890일

그림책 하브루타 마음수영 100권


결혼 14년 차

책육아 12년 차

블로그운영 12년 차

통역 일 한지 10년

빨래방 운영 3년 차

그림 그린 지 4년 차


그리고 브런치 글 100!


이렇게 적어 내려가니 그동안 내가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저 숫자들이 그 어떤 숫자보다 의미 있고 소중하다.


‘태어날 때부터 남개미님은 이름처럼 부지런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성향 자체는 그리 부지런한 성향이 아니다.

(ENFP라고 말하면 가끔 사람들이 놀란다.)


그냥 여기저기 나다니며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할 뿐,

성실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내가 이렇게 마치 내 이름의 개미처럼 성실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

살게 만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들이 ‘더하기’ 인생을 살지,

‘곱하기’ 인생을 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하기’ 인생이 뭐야?


‘너의 연봉은 얼마니?’

’ 자가는 있니?‘

‘차는 무엇을 타니?‘


‘나는 연봉이 5천이니까, 연봉 5천 인 너는 안 돼.’

‘나는 연봉 1억 인 사람 정도는 만나야 해.’

‘서울의 자가 정도는 있어줘야, 만날 수 있어.‘

‘대기업은 다녀줘야지.’

등등.


즉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계산한다.

그 사람이 나와 합쳐졌을 때 (=더해졌을 때)

우리는 얼마가 되냐에 집중하고 있다.

100 + 100 = 200처럼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계산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더하기’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곱하기’ 인생은 무엇일까?


곱하기는 더하기와 전혀 다른 차원의 계산이다.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것을 그 숫자 그대로 더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화학작용’을 일으키듯 숫자가 불어난다.

100 * 100 = 10,000처럼 단위가 달라진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곱하기’ 인생을 살아보면 어떨까?


내가 누군가를 만나 곱하여진다. 이것은 즉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능력, 가능성이 드러난다.

반대로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몰랐던 나의 잠재능력, 가능성이 발현된다.


그렇게 둘이 만나,

서로 자기도 몰랐던 능력들이 발현되어

좋은 시너지를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곱하기’ 인생이다.



내가 저렇게 많은 일들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원래 성실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만나 ‘곱해졌기‘ 때문이다.


그게 처음에는 남편이었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우리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같이 그림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메이트님일 것이다.



인간관계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설명을 할 수 없다.

그냥 이 사람을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이 사람은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성공한 사람…


이렇게만 바라보고 내가 그 사람과 관계를 맺어버리면

그냥 ‘더하기’만 하는 관계가 되어 버린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을 때,

화학반응을 일으키려 했던 것 같다.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작용을 미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상대방에게서 어떤 작용을 받고 있는가?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작용을 미치는지 먼저 보일 때도 있고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받고 있음을 먼저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도 서로 스파크가 터지듯,

상호 작용이 돼야 화학반응을 일으켜 곱해지는데,

한쪽만 그렇게 느끼는 관계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1,000 * 0 = 0 처럼

모든 것이 0으로 끝나 버린다.



내가 저렇게 많은 일을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나도 많은 사람들과 화학반응을 서로 일으켜,

곱하기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림일기를 혼자 썼다면 900일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늘 누군가가 내 일기를 보고 위로해 주고 응원했기에 가능했다.


매일 크로키를 그리는 것도

잘 그린다고 멋지다고 칭찬해 주는 동지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브런치글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혼자 썼다면 100개는 엄두도 못 낼 숫자이다.

왜냐하면 난 글을 쓰는 것을 즐기지도 않고 잘 쓰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브런치 글을 100개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 주고 정성스러운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곱하기’ 인생이다.



(부끄럽지만)

경제관념이라고 1도 없었던 내가,

가계부라는 것을 처음 쓰고 저축이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업체도 하나 갖고 부동산 투자를 하며

투자가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남편이 처음부터 투자가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하기 전에는

부족한 일본어를 가지고 일본 기업에 취업한,

그냥 그냥 회사원이었다.

그리고 저녁애는 영어과외를 하러 가던

그냥 열심히 살던 청년이었다.


우리는 서로 가진 것을 보고 결혼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가진 것도 없었지만.)


‘더하기’ 인생을 살았더라면 솔직히 서로 Pick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서로 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스파크가 일어나듯,

화학반응이 생겼고 곱해졌던 것 같다.

1,000 * 1,000 = 1,000,000

이렇게 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더하기’ 인생이 아니라,

‘곱하기’ 인생을 살길 바란다.


그냥 누군가를

책을 낸 작가로,

빌딩을 가진 부자로,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

보이는 그대로 보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려고 노력하고,

반대로 나 또한 상대방을 만나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지,

일어나는지 집중해 보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MBTI로 요즘 젊은이들이 소개팅을 거르거나,

나와 전혀 다른 MBTI인 사람들과는 안 맞는다고 선을 긋는 행위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취향은 존중한다. 나 또한 그러하니까.)


곱하기를 하는데 왜 제한을 두는가?

그냥 일단 곱해보자.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도 맞추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한 나를 알게 되기도 하고,

나로 인해 상대방이 바뀔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의 화학반응을 즐긴다.

내가 이렇게 브런치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다른 누군가와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가능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와 만날 때 화학반응을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스파크가 나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곱하기’ 인생을 산다면,

곳곳에서 스파크가 일어나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세상이 된다면 어떨까?


너무나 즐거울 것 같다.

상상만 해도 흥분되지 않는까?


처음에는 곱해지기 두려울 수도 있다.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근데 이것도 하다 보면 잘 곱하는 나만의 방법이 생긴다.


자, 오늘도 한번
곱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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