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emi Apr 15. 2024

9년 만에 찍은 프로필 사진

40대의 나를 마주하다.

 요즘은 젊은 친구들 뿐 아니라 나의 주변에서도 종종 프로필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본다. 젊은 친구들은 사원증 사진도 프로필 사진을 따로 찍어서 쓰기도 하고, 내 주변에 작가님들도 프로필 사진을 찍어서 자기소개서 등에 쓴다. 그리고 운동하는 지인들은 '오늘이 가장 젊은 나'를 기록하기 위해 바디 프로필을 찍기도 한다. 사실 나도 한때 바디 프로필을 목표로 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목표를 그렇게 잡았을 뿐, 정말 찍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남들이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은 좋아했다. 


 그러다 그림책을 내고 나니 북토크 때 쓸 사진을 달라고 하거나, 강의 지원서에 사진을 넣어야 할 일이 생겼다. 증명사진을 언제 마지막으로 찍었던가... 아, 몇 년 전에 운전면허증 갱신한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서 찍은 사진,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날도 운동하고 가서 대충 머리 질끈 묶고 찍었던 기억이 있다. 운전 면허증을 보여줄 일 있겠어?라는 마음에 아무 생각없이 찍었다. 그리고는 그 면허증은 지갑 저 깊숙이 넣어 두고 있다. 누군가가 보기라도 할까봐. 그때도 사진 찍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는데, 또다시 그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사실 나란 여자는 사진 찍는 것을 엄청 좋아했다. 내 기억에 아마 중학생 때부터 스티커사진이 유행했다. 나는 용돈만 생기면 스티커 사진을 친구들이랑 찍으러 다녔다. 그러다 대학생 때 스타샷이라는 곳(어쩌면 지금의 프로필 사진 느낌)이 유행하니, 또 주구장창 스타샷에 가서 사진을 찍어댔다. 그때는 친구들이랑 만나면 그냥 지금 아이들이 인생네컷을 찍듯, 나도 스터샷을 찍었던 것 같다. 그러고는 몇년 후 또 즉석카메라가 유행했다. 즉석카메라를 사서 또 친구들 만나거나 여행 갈 때마다 찍어서 또 모았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기점으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고 나니 사진 찍기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5년, 둘째가 돌이 될 때 즈음. 첫째의 돌 촬영을 하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워서 4명 가족 완전체의 가족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최대한 심플한 곳을 찾아 돌쟁이 둘째를 데리고 촬영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0년 결혼한 이후로 처음 메이크업을 받고 나름 드레스를 입고 멋지게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남의 편이라는 사람은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입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사진을 찍었던 안 좋은 추억이 있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와이셔츠도 풀어 헤치고 눈빛이 흐리멍텅하다. 나는 나라도 살고자하는 마음에(?) 열심히 찍었다. 그때는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드레스를 입고 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었나 싶다.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드레스 입고 화장하고 찍는 마지막 사진이라고 말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아가씨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여느 엄마들처럼 휴대폰에는 아이 사진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 나를 찍으려고 하면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어쩌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20대 때의 내 얼굴만 생각해서 인지, 우울해지기도 했다. 왜 엄마들이 사진 찍을 때 자기는 안 찍겠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다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일단 너무 거추장스러운 것은 싫고 그냥 심플하게 찍고 싶었다. 프로필 사진을 찍어본 지인에게 조언을 구한 후, 집에서 제일 가깝고 이벤트도 하고 있는 스튜디오를 바로 예약했다. 사실 다른 데를 알아볼 마음조차 없었다. 스튜디오를 예약하고 다시 고민이 생겼다. 메이크업을 직접 할까, 아니면 이 참에 받을까. 사실 화장을 진하게 할 생각이 없었기에 그냥 평소대로 하고 가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또 찍겠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한 번에 완벽하게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제휴된 곳을 소개받아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기로 했다. 


 촬영 당일, 버스 타고 압구정에 있는 미용실에 가는 내내 버스 안에서 남의 편과 언쟁을 벌였다. 왜 나는 사진만 찍는 날이면 싸우는지. 사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찍는 만삭 촬영 때도 전날 엄청 싸워서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연차가 쌓여서 그런지 극적으로 버스 내리기 전에 화해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미용실로 향했다. 압구정이 얼마만인지. 그 많은 스티커 사진과 스타샷을 찍으러 다니던 동네. 20년 후 나는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에 왔다. 


 미용실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를 받으며 잠시나마 내가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옆에 어떤 이쁜 분은 모델인지, "오늘은 무슨 촬영이에요?"라고 대화하는 것도 들렸다. 내가 모델과 나란히 앉아서 메이크업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평소에 화장은 아이쉐도우와 립스틱이 최선이었는데, 눈썹을 한 올 한 올 붙이니까 내 눈이 2배는 커 보였다. 그리고 인스타에서 많이 보던(?) 코 옆에 음영을 줘서 내 코도 2배는 오뚝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미용실을 나온 후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계속 줄줄이 촬영이 있는지 나같이 이쁘게 화장한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촬영 약 15-30분간 촬영되고 당일날 찍은 사진 원본은 다 받을 수 있고 그중 2컷만 고르면 보정해서 주는 시스템이다. 혼자 가서 찍은 관계로 스튜디오에서 찍은 모습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작가님이 편하게 대해줘서 사진 찍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금방 촬영이 끝나고 집에 오니 밤에 원본 사진이 메일함에 도착해 있었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세월의 흔적. 세월은 비껴가지 않는구나.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우울하다고 했다. 재빠르게 눈치챈 남편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며 위로를 해주지만 전혀 와닿지 않는 멘트였다. 그래도 어쪄겠는가. 돈 주고 찍었으니 그중에서 2장은 골라야 하니 말이다. 부끄러워서 가족에게만 겨우 이야기를 했는데, 매의 눈 동생에게도 한번 더 컴펌을 받았다. 겨우 2장을 고른 후 지금은 보정본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용실도 스튜디오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남들은 다 잘 나왔다고 했다.(그냥 하는 말이겠지만...) 다만 내 눈에만 보이는 세월의 흔적만큼은 고스란히 사진에 담겨 있었다. 난 그때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20대 때의 나, 수ㅁ-많은 사진 속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프로필을 찍으면서 매우 적나라하게 깨달았다. 나는 이제 20대가 아니고 40대의 나라는 것을. 눈 밑에 주름도 생기기 시작했고 얼굴 살이 빠지며 두 턱이 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의 탄력도 떨어지고 잡티와 기미도 늘고 있음을. 그래, 그걸로 족하다. 언제 또 사진을 찍을지 모르겠지만 40대를 시작한 나의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그리고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이제는 더 이상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꾸 사진첩에는 이쁜 풍경을 찍는 나지만. 지금 이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아껴줘야겠다. 50대에도 다시 이렇게 사진을 찍을 일이 생기길 바라면서도, 그땐 지금보다 더 찍기 싫겠지라는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 든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오늘의 나를 기록해 본다. 


부끄러워서 사진을 스케치로 살짝 변형:)


작가의 이전글 ‘더하기’ 인생이 아닌 ‘곱하기’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