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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un 24. 2024

그림책 작가 이수지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그림책 작가, 이수지 작가의 에세이가 나왔다고 하여 얼른 구매해서 읽어 보았다.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인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2022년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특별언급


그림책 역사가 짧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렇게 해외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국가의 위상을 올려줄 뿐 아니라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도 엄청난 힘이 된다.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나와 같은 신인은 멋진 선배 작가님이 꽃길을 닦아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한 일이다.

이수지 작가의 <만질 수 있는 생각>은 표지부터 신선했다.

다른 책과 달리 일단 책등의 제본 스타일도 참 이수지 작가답다는 생각을 했다.


<만질 수 있는 생각>을 다 읽고 나면 어렴풋이 이수지 작가가 왜 이렇게 표지 디자인을 했는지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



매달 새롭게 출간되는 그림책의 목록을 보면, 참 다양하다.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그림책이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나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버릇처럼 “더 넓어져야 해, 더 넓어져야 해!”라고 중얼거린다.
<만질 수 있는 생각> 중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입장에서 처음부터 마음에 쿵! 하고 와닿았던 구절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요즘 너무 많은 그림책이 나온다, 아무나 그림책을 낸다 등등의 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이다.

독립출판 등이 많아지면서 그림책을 내는 것이 예전보다는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림책 1권을 내는데 예전보다 시간이 덜 걸리거나 노력이 덜 걸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수지 작가님의 <만질 수 있는 생각>의 이 구절을 읽고 그림책 작업을 하는 초보 작가에게는 용기를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기존과 같은 작업 말고 세상에 없는 신선한 소재와 줄거리, 그림으로 독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자. 절대!



막막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에서 책을 출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만질 수 있는 생각> 중

이수지 작가의 <만질 수 있는 생각>은 이수지 작가가 하나의 그림책을 내기까지 어떠한 생각과 어떠한 작업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지 아주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림책 1권을 내는데 정말 힘들었던 1인으로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그림책을 냈던 이수지 작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처한 상황에 투덜투덜 대지 말고 나도 할 수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이수지 작가님처럼 포기하지 말고 해내야 한다.


이수지 작가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그림책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좋은 점도 많았겠지만 힘든 점도 많았음을  <만질 수 있는 생각>을 읽으며 적지 않게 위로받았다.  아이들과 일상을 보내다 보면 이따금씩 아이디어가 막 떠오른다. ‘나중에 그림책으로 만들어야지!’라고 호기롭게 메모라도 해두면 아이들 다 재우고 뭐라도 써 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둔 메모를 봐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당시 반짝이던 아이디어는 거짓말처럼 휘발되어 없다.


‘아까 볶음밥 만들 때 야채를 볶으면서 같이 날아가 버린 것은 아닐까?’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이수지 작가님도 그랬다니… 뭔가 같은 엄마로서 위로가 되었다.



종이책은 ‘만질 수 있는 형태의 생각’이다.
종이책의 촉감과 책을 넘기는 행위는
 ‘책을 보고 있는 나’를 인식하게 한다.
책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 전자책과 달리 물리적인 종이책은 그 경계가 분명하다.
<만질 수 있는 생각> 중

나도 그래서 종이책을 사랑한다. 종이책이 가진 고유의 종이 냄새, 넘길 때의 소리, 메모할 때의 촉감, 처음과 끝이 느껴지는 물리적인 특징. 요즘 같은 시대에 참 아날로그 인간 같아 조금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전자 그림책을 읽기보다는 종이 그림책을 읽길 바란다. 이수지 작가의 <만질 수 있는 생각>의 제목이 왜 ‘만질 수 있는’인지… 그러면서 내 생각을 만질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종이 그림책 만이 가진 물성을 살린 그러한 그림책을 나도 언젠가 만들고 싶다.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아… 딱히 슬럼프는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순간 주변이 조용해진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살짝 걱정되지만,
우울의 늪은 그저 창작 과정의 일환일 뿐, 그걸 따로 슬럼프라 부르지는 않는다.
<만질 수 있는 생각> 중

이수지 작가처럼 대단하신 작가님이라고 해서 작업이 뚝딱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분명 고민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꽉 막힌 느낌을 받을 때도 있을 텐데, 그녀의 참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긍정적인 사람인 편이다. 나도 슬럼프라고 느껴지는 시간이 (이제는) 거의 없고, 작업을 하며 힘든 일이 생기거나 본업을 하며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이 일을 통해 난 또 성장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해내려고 한다.

그 과정이 나는 즐겁다.


이수지 작가님도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책 작업은! 아이를 위해 만드는 작업 아닌가? 어떻게 즐겁지 아니한가?


재미있는 그림책을 만들어서 작업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계기를 생각해 보면 결국 다 아이들에게 닿아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그러니 그 생태적인 발랄함(<만질 수 있는 생각>에서의 이수지 작가님의 표현) 때문에 그림책 작업이 슬럼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아직까지는  물론 내 원고가 꽉 막혀서, 내 그림이 거지 같아서 답답하고 우울한 순간도 있지만 아이들이 읽을 것을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고 이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신나고 즐겁게 하는 사람한테 절대 못 이긴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그냥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책을 고를 줄 알게 된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뭐고 싫어하는 게 뭔지 알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성장한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스스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길로 나아가게 되겠죠.
<만질 수 있는 생각> 중

어쩜! 내가 아이들과 책 육아를 한 이유, 그리고 지금도 매주 일요일 모두 함께 도서관을 가는 이유이다.

그래, 이수지 작가님도 이러한 생각으로 아이를 키웠고 그렇게 그림책 작업을 하고 계시는 작가님이구나,라는 생각에 더더욱 존경스러웠다.

나는 어렸을 적 그림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문학을 좋아하던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은 엄청 봤다.  가끔 나는 왜 그림책도 문학책도 읽었을까? 자책을 하기도 했고 가끔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기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은 그림책 또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덕분에 <만질 수 있는 생각>에서 이수지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진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글 없는 그림책이 만드는 다양한 해석의 영역, 오독이란 말조차 불필요한, 자유롭고 풍부한 이야기의 세계를 사랑한다.  
하나의 의미만을 전달한다면 그것은 그림책일 수 없다.
 그림책 안에서만이라도 잠시,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만질 수 있는 생각> 중

아, 나는 진심으로 언젠가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처음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글 없는 그림책은 아무나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이수지 작가님의 <만질 수 없는 생각>에서 이수지 작가님이 글 없는 그림책에 대한 생각을 읽고 나니 나는 더 분명해졌다. 나도 언젠가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어야지! 나는 글 없는 그림책이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가져다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지를 남겨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입장에서도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 심어둔 작은 장치들을 독자들이 알게 될 쾌감도 느껴질 것이고 소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을 것이다.  다만 글 없이 그림만으로 그림책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아마 그림 만으로도 이해가 될 만큼 ‘잘’ (무조건 회화적으로 잘 그린다는 것이 아니라) 그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분야로 옮긴 사람들은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의식하므로,
오히려 자기 일에 비교적 가볍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도 원래 자신이 몸담았던 분야와 비교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관점으로 돌파하거나,
 오래도록 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통찰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
<만질 수 있는 생각> 중

마지막으로 가장 와닿았던 구절이다.  나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그림을 그린 지 불과 3년 정도 지났을 뿐이다. 어쩌면 그 업계에서는 아웃사이더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림책을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만질 수 있는 생각>에 나온 ‘비교적 가볍게 접근’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디든 그 업계에 몸담고 있다 보면 괜히 들리는 말도 많고 평가받을 일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괜히 ‘못하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라고 의식을 하게 되는 일이 많다. (사실 나도 본업에서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림책 업계에 처음 도전하면서 어차피 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을 것이고 (직속 선배도 후배도 없으니) 그들과 만날 일도 없으니 소문도 없겠지! 하는 ‘가벼움’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리고 너무 그림책에만 매몰되지 않고 나는 나의 삶, 엄마로서의 삶, 통역사로서의 삶, 빨래방 사장의 삶, 부동산 관련 종사자로의 삶, 성당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보니 더 ‘가볍게’ 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절대, 그림책 작업을 가볍게 해냈다는 소리는 아니다. 절대!


여하튼 이 많은 경험들이 나의 그림책에도 다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사실은 그림책 작가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해서 그림책 작업만 했더라면 물론 더 좋은 작업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림책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적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간절함‘이 있었던 것 같다.


통역을 하다가 빨래방 가서 청소를 하다가 또 성당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시간이 한없이 부족한데, 그 남는 시간에 쪼개고 쪼개서 작업을 하다 보니 어쩌면 ‘간절함’이 묻어나지 않았을까? 그림책 작가를 가까이에서 알고 지낼 일이 참 없다. 특히나 나 같은 아웃사이더는 말이다.


이수지 작가님의 <만질 수 있는 생각>을 만나, 마치 이수지 작가님과 친구가 되어 수다를 떨듯이 그녀의 작업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어서, 나 같은 초보 작가에게는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만질 수 있는 생각>은 그림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론서가 아니라 그림책 작가가 가지는 태도,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고 내가 왜 그림책을 좋아하고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지 더 명확해질 수 있었다.


혹시 나처럼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만질 수 있는 생각>을 한번 꼭 읽어 보시길 추천드린다.  이수지 작가님의 그림책 중 좋아하는 그림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나도 훗날 멋진 그림책을 만든 후 <만질 수 있는 생각>처럼 에세이를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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