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홀로 도쿄로 향했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유치원생이었다. 하루는 시댁, 하루는 친정에 맡기고 떠난 일본 여행. 아쉬운 소리 한가득 하고 떠났었지만, 갔다 와서도 욕만 얻어먹고 끝난 여행. 하지만 그 때의 ‘나,를 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9년 만이다. 홀로 떠나는 것은.
물론 그 사이 친구들, 또는 지인들과 함께 떠난 여행도 있었다. 하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내가 원해서 떠난 여행은 9년 만이었다. 하지만 반쪽 자리 여행. 왜냐하면 당일로 제주도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물속에서 잠수했던 것처럼, 입에서는 뽀글뽀글 참던 숨이 새어나가는 순간. 참을 만큼 참아서 더 이상은 물속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다시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물속에서 영영 나오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물속에 잠수했던 것은 분명 나의 의지였다. 내가 물이 좋아서 물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잠수를 해보고 싶었다.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 물속에서 참을 수 있을까? 나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나는 운동도 오래 했고, 수영도 어렸을 때부터 했던 나인데. 물도 좋아하고 수영하기를 즐기니까. 물속에서 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라고 자만하며 잠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인간이었다. 어떠한 기계의 도움 없이는 1분, 아니 30초도 숨을 참고 잠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30초도 채 못 참고 물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물속에서 못 나올 것만 같았다.
그냥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종종 나의 삶과는 전혀 다른 공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돌아와야 하는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널려있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물론 잠깐 벗어났던 시간은 나를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것도 매일 365일, 그리고 일 년 이년이 지나고 나면 그것 또한 무뎌지는 순간이 온다.
오롯이 나로 있고 싶었다. 몇 시에 아이들이 오니까 간식을 준비해 두고, 아이들이 오면 간식 챙겨주고 저녁밥을 만들고. 빨래를 돌리고 집안 청소를 하고. 그 사이사이 내가 해야 할 본업을 하고 전화를 받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잠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찰나들. 그러다 이내 아이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면서 그 시간은 끝이 난다. 매일 똑같이 하는 일상 말고, 그냥 나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루만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남편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흔쾌히 다녀오라는 남편. 1박을 하기에는 다음날 일정도 있어서 당일치기로 가기로 했다. 새벽 6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밤 9시 비행기로 돌아오는 것으로. 일단 제주도에 사는 친구 두 명에게 연락을 했다. 한 친구와는 오전에 만나서 레저를 즐기고 점심을 함께 먹기로 하고, 또 한 친구와는 오후 늦게 만나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그 사이사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의 계획은 완벽했다.
원래 가기로 한 날에 장마 예보가 떴다. 나는 애매랄드 빛 제주 바다를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비가 온다니. 처음에는 비가 오는 제주도 나쁘지 않지, 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레저를 즐기지도 못하고 카페나 미술관에만 있는 것은, 왠지… 이곳에서의 일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그것은 서울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2주 후로 일정을 미루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간 날에도 오후 내내 비가 왔다. 하지만 또 미룰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숨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며 깜깜한 도로를 달리다가 해가 뜨는 광경을 보며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있어서 놀랬다. 나는 탑승 수속을 마친 후 커피 한잔을 사서 비행기가 보이는 큰 창에 앉아서 잠시 여유를 즐겼다. 여행 가기 전이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의 설렘. 나는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앞으로 펼쳐질 물 밖에서의 시간. 물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어공주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처음으로 왕자님이 탄 배를 탔을 때의 그 기쁨을, 나도 느끼길 바랐다. 인어공주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날아 올랐다.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서울을 올려다보며, 그리고 구름 사이를 지나가며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문득 사진 찍기를 멈추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사진 찍는 일에 열중할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아이들이었다. 엄마 혼자 제주도를 가는 것을 부러워했던 아이들. 하지만 “엄마, 영감 잘 얻고 와.”라며 사랑스럽게 말하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엄마의 여행을 나중에 공유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오롯이 나를 위한 여행을 나왔는데도 결국은 아이들 생각이 먼저 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어쩔 수 없구나 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오전 8시에 도착한 제주는 잔뜩 구름이 꼈다. 안 그래도 제주도 하늘 위에는 먹구름이 잔뜩 낀 것을 보았다. 비가 조금이라도 덜 오길 기도하며, 나는 제주 공항을 빠져 나왔다. 우선 버스 노선을 찾아보고, 오전 9시에 여는 공항 근처 맛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제주도에 와서 버스를 혼자 타기는 처음이었다. 올 때마다 렌터카를 빌려서 다녀봤지,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제주 버스를 타보고도 싶었고 버스를 타며 시내 구경도 하고 싶었다. 서울에서 쓰는 교통카드로 찍힐까? 고민하면서 버스를 탑승했다. 다행히 전국 공통이었나 보다. 버스에 무사히 오른 후 덜컥 덜컹, 마치 시골 버스를 탄 것처럼 아주 천천히 달리는 버스의 속도를 느꼈다. 30분 후 도착한 식당 앞. 오픈 시간까지 30분이나 남았던 나는, 대기 석에 앉아서 집 나갔던 영감님을 찾으려고 잠시 원고 쓰기에 집중했다.
9시 땡! 하니 식당 주인이 문을 열어 주어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먹는 돌솥 비빔밥. 사실 맛집 탐방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나는,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아서 감흥이 잘 없는 편이다. 뭐든 먹어도 맛있는 나의 식성 탓에, 돌솥 비빔밥도 내 입맛에는 아주 아주 훌륭했다. 물론 서울 사람에게 맛집이라고 추천받아서 간 집이었지만, 나중에 제주 도민들에게 들어보니 도민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아침을 맛있게 혼잡을 한 후, 친구가 식당으로 데리러 와서 우리는 레저를 하러 애월로 향했다.
제주 사는 친구는 내가 와야 레저를 할 수 있다며, 작년부터 나를 기다렸다. 노는 코드도 맞아야 함께 즐길 수도 있나 보다. 친구가 제트 보트를 멋지게 결재를 해주고 우리는 제주 앞바다를 끝없이 달렸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서울에서는 지평선도 볼 일이 없는데, 길고 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매일 이런 수평선을 보며 사는 삶을 어떨까? 보고 싶을 때 수평선을 보러 나갈 수 있는 삶은 어떨까? 왠지 수평선을 보고 사는 삶과 지금의 나의 삶은 전혀 다를 것만 같았다. 왠지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레저를 타고 유명한 드로잉 카페에 가서 잠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또 한 명의 친구가 와서 같이 근처 흑돼지 집에 가서 백돼지를 시켜 먹었다. 나는 늘 제주도에 갈 때마다 흑돼지를 먹었는데, 제주 도민들은 흑돼지를 안 먹는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다. 참 아이러니하다. 서울 사람들은 제주 흑돼지라고 하면 고 퀄리티의 고기로 생각하고 비싼 돈을 지불하는데 마다하지 않고 찾아서 먹는데 말이다. 점심을 배불리 먹은 후 잠시 농협과 선물 가게를 가서 집에 있을 가족들, 그리고 함께 오지 못한 친구를 위해 선물을 사고 우리는 오름에 올랐다.
안개가 자욱한 오름에 올라가봐요. 어쩌면 안갯속에 있는 영감을 찾을 수 있어요.
라고 말한 또 한 명의 친구의 말이 마음에 남아서 친구와 함께 오름에 올랐다. 비는 추적추적 오고 비 때문에 습하고 더웠다. 1분만 걸어도 속옷까지 축축하게 젓는 이 습하고 더운 날에 우리는 우산을 하나 같이 들고 오름에 올랐다. 평소에 운동을 하던 나는 숨 차진 않았지만, 평소에 운동을 안 한 나의 친구는 조금만 걸었는데도 헐떡 거렸다. 우리는 “그래서 운동을 해야 해~”라며 흔히 40대가 하는 운동 예찬론을 서로 주고받았다. 오름에 도착하니 비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제주 앞바다가 보였다. 반대편에는 한라산이 보인다는데, 그날은 보이지가 않았다. 꼭대기 정상에 앉아서 우리는 시원한 물을 마시며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그렇다고 집 나간 영감이 돌아온 것은 아니다. 다만 힘들게 오름을 올라오면서 이런저런 잡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졸렸던 찰나에 올랐던 오름이라,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면서 머리도 쓰기 시작했고 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불편한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것이다.
어떠한 큰 깨달음은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뭔가 내 안에 참아왔던 이산화탄소가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 이산화탄소는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다 각양각색의 형태였는데, 명확한 것은 그 이산화탄소가 내 몸속에 너무 가득 찬 나머지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름에 다 오르고 나는 젖은 몸으로 마지막 제주에서의 저녁을 함께 먹을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 친구와는 10년 만에 또 제주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그녀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또 새로운 자극이 많이 되었다. 홀로 사업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그녀의 모습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봐왔던 그녀의 우직한 모습이었다. 그녀와 제주에서의 마지막 만찬, 옥돔 정식을 먹고 있다가 문자가 왔다. 내가 서울로 돌아가려던 비행기 편에서 조류 충동 사고가 나서 탑승 시각이 무기한 연장될 것 같다며, 다른 편으로 수속하러 오라는 문자였다. 나는 오늘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급히 식사 자리를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튀어갔다. 다행히 혼자 와서 그런지, 원래 가려던 비행기 편보다 10분 빠른 편으로 변경해서 나는 무사히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나는 다시 차를 타고 졸린 눈을 비비며 집으로 향했다. 집을 나선 지 17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마치 며칠은 지난 것만 같은 노곤함이 몰려왔다. 정말 졸려서 이러다 사고가 나는 거 아닐까? 너무 졸린 정신상태를 부여잡고 겨우 집에 도착해서 거울을 보는데 잠이 확 달아났다. 다크 서클이 내 잎술까지 온 것이 아닌가. 정말 피곤하긴 했나 보다. 나는 바로 씻고 잠을 청했다.
몸은 정말 힘들었던 제주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나는 덕분에 다시 숨을 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시간이 조금 짧아, 다음에는 1박으로라도 가야지 하는 깨달음도 함께 얻었다. 그리고 조금씩 아이들도 내 손에서 벗어나게 되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 또한 더 길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다. 9년 전의 나는 여행을 떠나면서도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걱정 한아름 앉고 떠났다면, 지금의 나는 그래도 아이들 걱정 없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떠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리라.
엄마, 영감 떠올랐어요?
안타깝게도 집 나간 영감님을 찾기에는 하루라는 시간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여행 오자마자 나에게 맨 먼저 물어보는 아이들의 질문을 듣고 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영감은 핑계였고, 엄마 살려고 다녀왔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언젠가 나의 이 삶의 무게를 온전히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그러한 나이가 되면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때 엄마는 영감님 찾으러 간 것이 아니고, 살려고 숨을 쉬기 위해 제주도에 갔었다고 말이다.
한 번 해보니 이러한 나를 위한 여행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온전히 하루라도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나의 본능대로 사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말이다. 벌써부터 다음에는 어디로 혼자 떠나볼까, 즐거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제주도에서 열심히 들이마신 이 숨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잘 참아봐야겠다. 뽀글뽀글, 또 그 신호가 오면 떠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