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이네 가족밴드가 탄생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성남 지역에 발달장애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화 예술 교육을 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3년 전쯤 상담을 하러 갔었다. 원장님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드디어 민준이에 관한 소개를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 끝에 민준이가 노래는 조금 부른다고 그래서 아빠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교회에서는 행사 때 노래를 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만난 지 1시간 만에 안된 원장님이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8월에 소극장에서 공연할 건데 그때 무대에 서세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민준이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면 핸드폰에 저장된 동영상이라도 보여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무대에 서라고 하시니 처음에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차근차근 여쭈어보니 다음 해에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해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사전 작업으로 그 해는 150명 규모의 소극장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준비 중이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센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무대에 설 아이들이 많지 않았는 데다 민준이가 노래를 어찌 하든 상관없이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는 무대의 그림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원장님께 들었던 거 같았다. 제안을 받고 나도 생각을 정리해보니 민준이에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족들 아니면 교회의 친숙한 사람들 앞에서만 노래를 불렀는데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하는 공연은 모험이긴 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교회에서도 찬양팀 리더를 맡아달라고 목사님이 간곡하게 부탁하셨을 때 정말 난처해하며 아주 어렵게 결정을 내렸었고, 앞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교회 행사 때에도 민준이와 무대를 서게 하려면 내가 일찍부터 사전작업을 하며 없는 애교를 떨어야만 가능했다. 그런 남편에게 모르는 사람들이 150명이나 모여있는 무대에 서면 좋겠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내 머릿속에서 이미 상상이 되고 그림이 그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이야기를 주저주저 꺼냈을 때 남편은 날 한번 쳐다보더니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며칠 뒤 다시 말을 꺼냈는데 이번에는 조금 화를 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다음부터는 며칠씩 간격을 두고 기회가 될 때마다 혼잣말처럼 자꾸만 말을 흘렸다.
"내 생각에는 좋은 기회인 거 같은데..."
"민준이한테 참 좋을 거 같은데..."
"괜찮을 것도 같은데...."
제안을 받고 한 달쯤 지났는데도 남편의 긍정적인 대답은 듣지 못한 채 날짜는 흘러가고 있었다. 남편 없이 민준이 혼자라도 무대에 세울까 생각도 했지만 여러모로 그건 너무 불안했다. 사실 민준이는 혼자서 노래 부르는 건 즐겼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 유치원 때는 할머니 앞에서도 긴장해서 입을 다무는 아이였고, 초등 저학년 학급 장기자랑 시간에는 몸만 비비 꼬다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교회에서 몇 번 무대에 섰을 때도 노래하다 말고 마이크에 붙은 스티커를 떼는 등 여러 가지 돌발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아무래도 남편이 마음을 내고 무대에 함께 서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결혼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좋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주 내로 확답을 달라고 원장님께서 이야기를 하셔서요...... 내 생각에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쭉 설명하며, 남편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내 생각을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남편의 시원한 대답.
"한번 해보지 뭐."
잠깐 내 귀를 의심했다. 스스로 무대공포증이 있다고 했던 우리 남편이 맞나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해보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내가 살짝 겁이 났다.
"근데 괜히 무대에 섰다가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해요."
"그래도 괜찮아. 좋은 기회니 잘 이용해 보는 거지."
그날 남편의 그 담대한 발언을 나는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남편이 얼마나 멋있고 듬직했는지 남편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극적으로 출연을 결정한 후 선곡에 들어갔는데 참 막막하고 어려웠다. 민준이가 아는 노래는 학교에서 배운 것 외에는 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남편과 함께 부른 수백 곡의 찬양과 찬송가들이 전부였다. 교회가 아니니 찬양으로만 선곡할 수는 없었다. 응원의 메시지, 소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좋은 곡이 없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몇 날 며칠 노래를 찾았다.
그러다가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로 나와서 귀에 익었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남편과 민준이가 함께 불러보았다. 평소에 들었을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었는데 가사를 찬찬이 뜯어보니 세상에, 장애인 가족들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딱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의미가 있다고, 우리 다 함께 노래하자고, 후회 없이 꿈을 꾸자고...
그래서 무대에서 부를 노래는 "걱정 말아요 그대"와 평소 내 마음을 울렸던 "내 모습 이대로" 2곡으로 정해졌다.
공연 날짜가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아 맹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어느 날, 센터에서 마주친 원장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민준이 동생이 피아노를 잘 친다면서요?"
당시 민준이는 센터에서 피아노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준하가 함께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음악학원의 공간을 빌려서 수업을 했었는데 그곳에 있던 근사한 그랜드 피아노를 보더니 준하가 쳐 보고 싶다고 해서 연주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보셨던 피아노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전한 모양이었다.
"민준이 동생이 피아노 반주 가능해요? 그러면 셋이 같이 무대에 서면 되겠네요"
클래식으로만 계속 피아노 레슨을 받아오고 있던 준하는 대중가요 반주는 해본 적이 없었고, 코드 법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준하까지 세 명이 함께 공연을 하는 그림을 그때까지 우리 가족들은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반주야 연습을 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중학교 2학년, 한창 민감한 사춘기의 준하가 과연 장애가 있는 형아랑 함께 무대에 선다고 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원장님께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집에 돌아와 나는 준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준하야, 8월에 아빠하고 민준이 형아가 같이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거든. 근데 네가 피아노 반주 좀 해 줄 수 있을까?"
준하는 궁금한 걸 몇 가지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고 나더니
"좋아요. 연습해볼게요" 하고 답했다.
남편에 이어 준하의 화끈한 대답에 나는 또 한 번 진짜 놀랐다.
중학교 2학년,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들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어른들 마음대로 못하는 사춘기 나이가 아닌가. 준하도 사실 반항과 고집을 부리기도 하며 나와 부딪치는 일이 많았던 시기였고, 스스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부모의 설득으로 하게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했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물어는 보면서도 준하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깨끗이 마음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근데 준하야, 모르는 사람들이 네가 민준이 형아 동생이라는 걸 다 알게 되는데, 너 괜찮니?"
"전에는 신경도 쓰이고 그랬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눈물 나게 참 감사한 순간이었다. 한때는 민준이 때문에 우울했고, 형아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면 하기 싫다고 말했으며, 보드게임을 함께 할 수 있는 형아가 아니어서 너무 속상하다고 했던 준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민준이가 우리 형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후에 공연을 준비하는 한 달 정도의 기간은 참 행복했다. 매일 저녁 모여 짧게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연습했는데 이렇게 매일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었다. 공연이라는 프로젝트를 가족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도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다. 민준이의 목소리에 맞게 코드를 바꾸고, 기타와 피아노 반주가 어떻게 어우러지는 게 좋은지 함께 고민하고, 1, 2절 가사를 자꾸 헷갈려하는 민준이를 어떻게 도와줄지 머리를 쓰며 우리 가족의 친밀감과 서로를 향한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주말에는 특별히 민준이의 적응을 위해 공연을 할 소극장에 직접 가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때, 아무도 없는 객석에 나 혼자 앉아서 남편과 준하가 반주를 의논하고, 함께 장난치며 웃기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말 아름다웠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으면 그대로 작품이 될 거 같았던 아빠와 아들의 행복한 투샷은 사진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뭉클하게 남았다.
큰 기대 없이 모험으로 시도했던 소극장 공연은 예상치 않게 아주 성공적이었다. 일찍 가서 리허설하고 순서를 기다리고 하는 시간이 길어 민준이가 행여라도 짜증내고 공연을 제대로 못할까 봐 그날 나는 아주 마음을 졸였었다. 그러나 아빠와 동생과 함께여서 그랬는지 민준이는 힘든 스케줄 속에서도 큰 실수 없이 무대를 잘 마쳐주었다.
물론 민준이의 노래는 아쉬운 면이 많았다. 음을 놓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고음을 내야 하는 부분에서 거의 소리를 내지 못했고, 마이크 스티커에 잠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오히려 민준이의 꾸밈없는 목소리와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선곡한 곡들과 민준이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아주 잘 어우러졌다. 그런데 민준이의 노래를 듣고 주체 못 하게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나는 민준이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받았던 감동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낀다는 게 참 신기했다. 또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선생님과 함께 무대에 섰는데 아빠, 동생과 함께 한 경우는 우리밖에 없어서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날의 공연을 계기로 이후에 '민준이네 가족밴드'는 몇 번 더 다양한 무대에 서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2020년 2월에는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잠시 피아노를 쉬게 되는 준하의 피아노 독주를 중심으로 가족음악회를 기획했다가 코로나로 연기를 했던 것이 기약 없이 지금까지 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공연은 하지 않고 있었던 시간 중에도 다양한 면에서 각자 성장하며, 함께여서 누구보다도 우리 가족들이 행복했고 우리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가족밴드의 경험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기도하며 방법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살아보니 인생은 절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질까 봐 두려워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이제 나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다양한 변수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민준이가 노래하고 수줍음 많은 남편과 형아를 미워했던 준하가 함께 연주하는 '가족밴드'라니 우리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그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니 인생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나는 한 번도 그려보지 못했던 일을 내 인생에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 정말 궁금하고, 어떻게 선하게 인도해 가실지도 참 궁금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움이 아닌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 한다. 어떤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이 우리 가족을 통해 쓰일지 기대가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가슴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