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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Oct 08. 2023

낯설지만 슬픈, 다시 나아가는

연애에 대한 편지, 유희

  반갑지 않은 명절을 보내고, 다시 이경 씨에게 편지를 씁니다. 결혼 한 사람에게 명절이란 그리 유쾌하지만은 행사여서 일까요? 아직도 명절 후유증을 다 이겨내지 못한 채 이경 씨에게 편지를 씁니다. 잘 지내셨나요? 명절을 지내고 연애에 대한 글을 쓰려니 마음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사실 이 ‘연애’라는 단어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연애’라는 단어는 금기어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남편과 연애하듯 결혼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저에게 연애는 먼 옛날에 쓰던 단어처럼 부끄러워 몸 둘 바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야말로 결혼과 육아라는 생생한 현실 앞에 연애와 사랑은 못 피는 담배라도 피우며 회상해야 하는 그런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쨌든 연애를 하던 시절 저는 상대에게 마음을 다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고 사랑이 아닌데도 기대고 싶은 마음에 상대를 붙들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를 제 부모의 결핍을 채워 줄 어떤 존재로 여기기도 했고요. 상대에게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다가도 마음속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연애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헤어진 후 애가 닳아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보지도 못했고요. 항상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우선이었기에 연애는 뒷전이 되고는 했습니다. 대부분의 연애를 상대가 건넨 호감에서 시작했기에 상대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절절히 사랑한다는 감정은 느끼기 어려웠던 같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연애는 대부분 제가 끝을 냈고, 끝을 낸 후에는 미련도 남지 않았습니다. 연애를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연애가 비슷한 패턴으로 시작해서 끝나버렸지요. 


  어쩌면 사랑과 연애가 무엇인지 애초에 잘 알 수 없어서 헤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열렬하게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연애를 해야 하는지 무지의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땐 왜 그런 걸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었나 후회가 들기도 하네요. 조금 덜 우울해하고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아주 많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함부로 하는 것들에게 절대 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 맞장구를 치며  스스로 더 가혹하고 매정하게 학대했던 날이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땐 왜 그것이 저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인지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왜 저는 저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을까요?


  아줌마가 된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멋진 남자 배우를 보며 “와, 저 남자 멋있다.”하며 소파에 앉아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같이 살고 있는 과거 전 남자친구이자 현재 남편에게 아직 설렐 때도 많습니다(매우 중요). 아이를 낳고 많이 싸우고 있지만 그래도 제 인생에서 가장 듬직하고 괜찮은 남자라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먼 산을 본다). 


  그래도 남편과 연애할 때는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많이 가졌습니다. 서로 설렌다는 감정보다는 편하다는 감정을 많이 느꼈고 이상하게 마음속 이야기를 자꾸 꺼내고 싶어 졌습니다.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고 그 말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게 고마웠습니다. 저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저의 부족한 점을 약점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했습니다.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연애를 하면서 싸운 일도 별로 없었고 결혼을 한다면 이런 사람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20대 후반의 나이에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이 남편과 결혼을 하였고 아이를 낳게 된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이유라는 게 참 별 거 없지요?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이 주는 편안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편안함이 제 예민함을 낮춰주고 안정감을 주니 남편의 장점 중에 최고는 이 편안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우리 부부 사이가 좋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싸울 때도 정말 많습니다. 마음을 다듬고 숨을 고르며 하루하루 버티는 게 결혼 생활이니까요. 어린 아들처럼 챙겨줄 것이 많은 남편이 미워 종일 싸울 거리를 찾아내며 남편에게 시비를 걸 때도 많고요. 


  명절이라는 큰 산을 넘어가니 남편에게 더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 한없이 미운 마음이 들었다가도 피곤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다시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아마 며칠이 더 지나면 언제나 그랬듯 남편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애틋하게 느끼겠지요.

 이제는 남편에게  사랑을 넘어서 인류애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우여곡절, 다사다난, 희로애락을 함께 겪어나가며 말입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 아이가 다 자라면 저희도 다시 둘만의 연애를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의 엔딩은 인생의 마지막 부분에 알게 되겠지요.


  이경 씨와의 편지도 마지막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억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어두운 마음에 볕이 들고 있는 기분입니다. 앞으로의 편지도 이경 씨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환한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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