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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 A씨 Aug 26. 2022

심리 1- 당신은 당신의 편인가요?

정신건강 일지 1/ 어둠 속에 토해내듯

마침내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되기 시작했다. 감당이 안 되기 시작했다는 건, 내 감정에 내가 질식할 것 같았다는 말이다. 내 분노를 컨트롤하지 못해 그 분노에 내가 좌지우지 되는 것만 같은 기분. 매사가 너무 지쳤고 전보다 더 화가 많이 났다. “내가 이상한 것 같아?” 라고 물으니 가까운 사람은 “많이 신경질적인 것 같아”라며 정 힘들면 병원에 가보길 권했다.


일반적으로 난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는다. A라는 원인, B라는 원인. 그렇게 원인을 찾고 나면 나름의 해결책을 생각했고, 실현했다. (이것도 이제야 느끼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었다.) 아무튼, 이번엔 그런 자구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너무 힘든데 도무지 원인을 모르겠는 기분. 그러면서 우울감도 찾아왔다. 술이 우울감을 증폭시켰다.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안되겠다는 생각에 난생 처음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병원에 가니 사전 설문지를 줬다. 불안 테스트, 스트레스 테스트, 우울감 테스트, 성인 ADHD 테스트, 수면 테스트, 조울 테스트… 등 온갖 테스트를 다 했다. 인터넷에서 볼 법한, 익숙한 질문들도 있었지만 - 예컨대 ‘나는 슬프다’ 같은- 생소한 질문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건 “나는 집을 나설 때 도시 가스, 전기 등등이 제대로 꺼졌는지 수차례 확인한다”는 질문. 지하철 역까지 다 와서 갑자기 집에 고데기 켜놓고 왔는지 궁금해서 집으로 다시 가는 경우가 허다한 나는 ‘이거 난데?’ 하며 흡사 MBTI 검사를 하듯 반가워서 “매우 그렇다”를 눌렀다. 불안한 나의 자아야, 반가워.


“병원엔 왜 오셨나요?” 의사가 물었다.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돼서 왔어요.” 라고 답했다. 의사는 최근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은 일들을 몇 가지 말했다. 그리고 화가 자주 난다고,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일을 하면서 화가 나는 일은 너무너무 많고, 일을 갓 시작했을 땐 하루에 12번도 화가 나서 매일같이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런 과정을 나름대로 이겨냈고, 그때도 미쳐버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아예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사람에겐 많은 감정이 있어요. 하지만 경우에 따라 그게 한 감정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분노처럼요”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서러움, 억울함, 섭섭함… 이런 감정이 화로 분출되는데 그걸 어떤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아, 화가 나!”라고 한다는 말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A 상황에선 섭섭하셨을 것 같고요, B상황에선 답답하고 억울하셨을 것 같아요. C 상황에선 굉장히 서운하셨을 것 같고요” 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31년짜리 내 인생을 처음 본 의사가 나에 대해 무얼 그리 많이 알았을까. 그래도 의사는 몇 가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외롭냐는 질문을 했다. 네, 외롭죠. 의사는 내 외로움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난 “글쎄… 근데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지 않나요? ㅎ 그런 수준인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난 주위에 친구들이 많고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많다고. 그래서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마냥 외로울 때가 있는데 인간은 다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럼 주위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가장 당신의 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는데, 갑자기 그때 눈물이 터졌다. 썩 눈물이 날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의사는 내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지금 본인이 본인의 편이 아닌 것 같아요.”


어릴 때 내게 이런 말을 한 지인이 있었다. 너는 뭐든 혼자 이겨내려고 하는 것 같고 그래서 곁을 잘 내주지 않는다고,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지만 그래도 힘든 일이 많을텐데 그럴 땐 주위 사람들에게도 힘을 받으라고.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냥 버텼다. 왠지 나는 힘들어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이건 뭐 그정도 상황은 아니 것 같은데?’하며 스스로를 채찍질 했다. 별 것도 아닌 거에 이렇게 힘들어 한다고? 힘들긴 한데 좀 힘들다 털어내자. 나는 그게 내 멘탈이 강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그냥 내가 내 편이 아닌 거였다. 의사는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건 아닐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쓰고 보니 내 본체가 좀 불쌍하다.


의사는 약 처방에 대한 결정을 내가 내리게 했다. 다리가 부러지면 깁스를 하라던가, 깁스를 할 정도는 아니니 반깁스를 하라던가 뭐 이런 치료를 의사가 해주지 않나. 그러나 의사선생님은 나는 스스로 결정하는 편이 좋겠다고. 보통 이정도면 약을 먹냐 물으니, 나보다 증상이 미미한 사람도 약을 먹기도 한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약을 타진 않았다.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때문이었던 것 같다. 상담센터의 상담도 예약되어 있는 상태긴 했다. 


어쨌든 두려운 건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감이다. 심장이 쿡쿡 찌른다. 나의 자아야, 우리 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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