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홀을 오고 그 이후
호주에 오고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인 "호주에서 사니깐 어때?" 또는 " 호주의 어떤 점이 좋아?"라고 물어본다. 이 질문을 호주에서 살면서 제일 많이 들었지만 딱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장점이랄만 한 게 없다. 흔히 다들 아는 호주 하면 생각하는 자연, 맑은 공기, 좋은 날씨 등 초록초록 한 이미지가 제일 대중적인 이미지인 것 같다. 근데 막상 생가해보면 이게 정말 끝이다.
호주의 장점을 10초 안에 5가지 말하는 것보다 단점을 말하는 게 더 쉽고 빠르다. 즉 단점이 더 많다.
한국에 비교를 하자면 인터넷부터, 교통, 생활의 편리함까지 모든 게 손도 많이 가고 간편하지 않다. 그래도 호주가 살기 좋다고 말하는 이유는 "여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호주에서의 여유는 모든 불편함을 잊게 해 줄 만한 정말 큰 장점이다. '호주의 여유'라는 단어 안에는 다방면의 의미가 존재하고 있다. 시간적 여유, 인간관계의 여유, 존중하는 여유, 물질적인 여유, 느긋함이 호주의 배경으로 깔고 들어간다.
내가 느꼈던 한국의 배경은 느긋함보단 분주함이었다. 호주워홀 초반에는 호주만의 느긋함이 불편했다. 매일 분주함으로 살아가던 내 환경이 바뀐 것이다. 직장을 갖고 있어도 보장되는 느긋함은 내가 바쁘다 해도 여전히 내 눈으로 보는 호주는 여유로 가득했다. 누구 하나 어디 쫒기 듯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호주에서 생활하며 바삐 지내왔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도 있고 너무 바빠서 녹초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삶 속에 여유는 존재했다. 나를 가라앉게 해 줄 그들만의 여유와 안락함이 있다.
한국에서 살 때는 분주함, 모자람이 있었다. 뭐가 모자란 지, 부족한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 속에 무언가 공허함이 컸다.
그에 반해 호주의 삶은 좀 달랐다. 초반엔 어색했지만 내가 나를 위해 주는 여유도 생겨났고 남을 위한 여유도 생겨났다. 남을 위한 여유란 그들을 존중하는 여유, 엇갈리는 의견 안에 배려하는 여유, 그들의 다름을 이해하고 나 또한 다름 중 하나라는 인식, 다름을 바꾸려 들지 않았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여유를 배웠다. 이건 내 가치관에 있어 많은 성장요소 중 하나인 것 같아. 처음 본 사람의 다름은 인정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알고 지냈던 지인의 성격, 신념, 외모가 변화된다면 존중하기보단 '너 왜 이렇게 변했어?'라는 반응이 먼저 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 사람의 변화를 딱히 반갑게 맞이하는 경우보단 떨떠름할 것이다.
여기서 배운 '남을 위한 여유'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면 뭔가 관대해진다. 너그러워진다.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니, 남에게도 너그러워진다. 호주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조급함보단 너그러움의 비율이 훨씬 크게 와닿는다.
잔잔한 여유가 좋다.
내가 생각하는 여유 안에는 관계가 큰 비율을 차지한다. 조급한 상황 속에 만나 순식간에 저무는 거 말고 잔잔하게 온도를 유지해 나아가는 관계가 좋다. 화려한, 나만 보여주며 뜨겁게 마음을 표현하기보단 미지근하게 언제든 찾아가면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 이런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좋다. 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내게
뚜렸해지고 진심이 된다. 그들과의 미지근함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우리'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