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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나 Sep 11. 2022

소금과 후추와 새와 사상경찰:먼 곳에서 온 애도


지난 십 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다국적 음악 프로젝트 그룹 Mili의 행보는 이색적이었다. 리듬게임 Deemo에 수록한 곡들의 스타일은 다채로웠고, 가사는 모에 캐릭터로 자아내는 부조리극 같았고, 유튜브에 공개된 그들의 작업물은 환상적이고 동시에 그로테스크했다. 그들의 작업물은 '메르헨 팝'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스토리텔링에 기반하며 그중에서도 동화적인 색채가 강했다. 그러나 사운드 호라이즌(Sound Horizon)과 같이 앨범 중심의 아티스트도 아니었고, 리듬 게임에만 머무는 동인계 터줏대감도 아니었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예술가 같았다. 프로젝트 문과의 협업, 애니메이션과 게임들의 러브콜, 그리고 여러 장의 정규 앨범과 투어.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그룹 중에서는, 눈에 띄게 성공한 예시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프로젝트 문과의 작업물이 한창이던 21년, Mili는 To Kill a Living Book -For Library of Luina-라는 EP를 낸다. 앨범 제목에서 보다시피,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의 사운드트랙을 실은 앨범이다. 모두들 기대하던 앨범이었지만, 대중들을 가장 놀랍게 한 것은 보너스 트랙이었다. 소금과 후추와 새와 사상경찰. 화려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Mili답지 않은 단정한 재즈와 시적인 가사.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곡은 문학에 '진심'인 프로젝트 문이, Mili와 손을 잡고, 시인 윤동주에게 바치는 곡이라는 걸.


이 곡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애도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아픔이지만 이런 형상화는 낯설게 다가온다. 이 노래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소재들을 용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윤동주 시인, 민족 말살, 순사와 고문, 그리고 시. 그러나 표현법은 다르다. 별 헤는 밤, 서시, 윤동주의 생애가 전부 보통 명사로 대치되어 있고, 나라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으며,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목가적인 풍경과 압제당하는 비극, 그리고 노래의 화자만이 도착하지 못하는 꿈만 같은 평화로운 미래다.


나는 종종 코스모폴리타니즘에 대해 생각한다. 미야자와 겐지의 애독자로서, 그리고 인터넷 시대의 사람으로서 국경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은 우경화와 국수주의, 민족주의로 점차 치열해져 갔고 그로 인해 소수자들이 온갖 오해를 뒤집어쓴 채 핍박당하는 것 역시 보았다. 그런 시대에서 이런 노래를 만나서 기뻤다.


Mili는 한국과 전혀 상관없는 그룹이지만, 프로젝트 문과의 만남으로 한국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 게임 팀이 문학과 게임의 만남, 그리고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을 그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Mili 역시 필연적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 과정을 상상하는 것, 그리고 나온 결과물인 이 노래를 접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세상에는 아픔이 존재해왔고 여전히 그렇다. 이런 세상에서 애도는 값지다. 그들은, 우리가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아픈 역사를 재조명했다. 상투적이지 않다. Mili만의 환상적인 어법으로, 낯선 애도를 저 먼 곳에서 보내왔다. 그를 곱씹으며 조금은 슬퍼지고 따뜻해지는 밤이다. 다른 우리가 어쩌면 소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로.



22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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