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소라 May 06. 2024

노을 지는 디스토피아, 필립 파레노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 전시 리뷰

2024년 리움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첫 작가로 '필립 파레노'를 소개한다.

국내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소개된 파레노의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보이스(VOICE)>.


1. 필립 파레노는 누구인가?

필랍 파레노(Philippe Parreno, 1964~)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다. 

그에게 있어 전시장은 단순히 작품을 소비하는 공간이 아닌, 전시장 그 자체를 작품으로 보며, 관객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하는 아티스트이다. 

그의 작업 장르는 영상부터 사운드, 조각,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까지를 작품에 도입하여 관객에게 공감각적인 전시 경험을 선사한다.



2. 전시장 구성

리움미술관에서의 이번 전시는 필립 파레노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리움의 개관 첫 20주년을 기념하는 첫 작가이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번 전시는 파레노의 활동을 대표하는 주요 작품과 신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리움미술관의 야외 데크, 로비, M2,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 전관에 걸쳐 구성되어 있다.

규모가 작지 않으며 관람 시간도 꽤 긴 전시이다 보니(필자는 약 2시간 정도를 관람했다), 편한 신발과 가벼운 짐, 넉넉한 시간을 갖고 전시를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3. 주요 전시작


(1) 노을 지는 전시장, 그리고 떠다니는 풍선 물고기들

처음 들어선 전시장은 마치 노을이 지는 듯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다.

노을이 지는 전시장 안에는 헬륨풍선 물고기들이 떠다니고 있는데, 이 광경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치 꿈꾸는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주황빛 시트지 또한 역시 파레노의 의도된 작품 중 하나인데, 가브리엘 타드의 공상과학 소설인 『지저 인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태양이 사라진 후 멸망한 이후의 세상을 묘사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풍선 물고기가 떠다니는 이 공간은 환상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전시장을 부유하는 풍선 물고기들은 <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현실에서는 어항 속에 갇혀 관조당하는 입장이지만, 이 전시장 안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전복시켜 인간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물고기처럼 관조 대상이 된다. 


(2) 혼자 연주하는 피아노, <여름 없는 한 해> (2004)

전시장 한편에는 연주자 없이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가 있고, 그 위로는 오렌지색 눈이 내려 쌓이고 있다.

파레노는 전시 자체를 거대한 악기로 간주했는데,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다른 작품과 조화를 이루며 전시장 내에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또 피아노 위에 내리는 주황빛 눈은 전시장의 노을빛과 함께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유도한다. 


(3) 영상작업들

이제 다른 전시공간인 '블랙박스'로 가면, 영상 작업들이 위와 같은 공간에서 순차적으로 상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영상작업은 총 7개로, 모든 영상을 다 보면 한 시간 넘는 시간이 소요되니, 관람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오는 편이 좋겠다. (다행히 앉을 공간은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영상 작업 중 인상 깊었던 작품은 <마릴린>(2012)인데, 실제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머물렀던 장소인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스위트룸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상은 호텔 방과 마릴린의 목소리, 그리고 글씨만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허구로, 마릴린의 목소리와 필체는 로봇이 학습한 것이며 호텔 방은 세트장이다. 이미 사망한 배우의 많은 것들을 화면에 재현함으로써 마치 마릴린이 실제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일종의 영혼 소환 의식 같기도 하다. 

이외에도 전시장 곳곳에서 특이한 소리가 계속해서 나는데, 이 또한 파레노의 작품 일부이다. <∂A>라는 제목의 신작은 인공언어 창조자인 데이비드 J.피터슨과 제시 샘스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와 서울 곳곳에서 수집한 음성을 조합해서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새로운 언어이다. 마치 미술관 그리고 관람객에게 최면을 거는 듯한 이 소리는 파레노의 전시장에 기묘함을 더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4) 퍼포먼스

블랙박스에서 그라운드 갤러리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퍼포먼스를 관람할 수 있다.

예고 없이 관람객들 사이에서 등장하는 퍼포먼스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전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관람객들도 함께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당황스러운 반응이다가 하나둘씩 작품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휴대폰을 꺼내드는 모습 또한 재미있다.

필립 파레노가 동료 작가인 티노 세갈(Tino Sehgal)에게 관람객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작품을 의뢰해 탄생한 이 작품은, <이렇게 장식하기(쉬헤라자드 파레노)(보이스 버전)>(2024)이다.



4. 결론

필립 파레노는 전시장 전체를 작품으로 만든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전까지 파레노의 작품들은 소품으로만 보아왔는데, 소품과 전시장 전체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감동은 현저히 다르게 다가왔다. W와의 인터뷰에서 파레노는 "미술관의 형태는 변화가 필요하다. 계속해서 진화하고 변화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보다도 더 한 차원 뛰어넘는 무언가를 곧 보여줄 것만 같다. 


5. 관람정보

관람시간 | 화-일 10:00-18:00

관람요금 | 성인 기준 18,000원

전시기간 | 2024.2.28 - 07.07 *사전 예약 필요!


<참고>

디자인+, '리움미술관에서 만날 작가, 필립 파레노 미리 보기'

서울문화투데이 '[현장스케치] 정지된 시간 속을 유영하다…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VOICES)》展'

W '전시장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작가의 이전글 침묵을 통해 말하는 물방울 작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