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바람이 실은 기억 _ 허해찬
[2021년 1월 21일]
방학을 맞아 정읍 본가에 내려가있었다. 비 오는 날 오전 열한시 즈음, 같은 해 학교에서 막 친해진 인규가 1월에 군대간다고 얘기한 걸 떠올리며 전화를 걸었다.
"너 1월에 군대간다고 했지? 나 25일에 올라가는데, 입대 전에 한 번 보자"
인규가 답했다.
"좋아. 나 근데 25일에 입댄데?"
"그럼 언제 시간되는데?"
"21일"
세 시간 뒤 나는 기차를 타고 성남으로 향했고 자취방에 도착해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너 마곡나루 살고 나 성남에 사니, 가운데인 강남에서 만나자고. 그러자 그는 입대가 100시간도 안남아 숨만 쉬어도 시간이 아깝다며 마곡나루로 오라고 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 반 지하철을 타고 마곡나루에 도착해 인규와 현우, 조은이를 만났다.
이 무렵 나는 성남의 한 언덕 꼭대기 집에서 학과 선배 두명과 함께 살고있었다. 술자리를 좋아하나 조절하지 못하여 마실 때 마다 필름이 끊기곤 했다. 그래도 집 근처에서 놀면 친구들이 데려다주거나, 같이 사는 형들이 함께 자리했기에 집에서 눈 뜰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그러면 안됐던 것이다.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놀다 그만 취해버렸고, 코로나로 인해 9시 영업제한이 있던 때라 9시 11분에 9호선 열차에 몸을 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억부터가 문제였다.
"여기서 주무시면 안된다구요!!!"
나는 깜짝 놀라 튀어오르며 문 열린 열차 밖으로 빠져나갔다. 왼손에는 우산이, 오른손에는 준성이형과 전화 중인 휴대폰이 쥐어져있었다. 형에게 물었다. "형 왜요?"
또 한번 큰 소리가 들렸다. "해찬아 어디냐고!"
고개를 돌려 역 이름을 봤다.
"형 저 김포공항인데요?"
형이 집에 올 수 있냐고 묻는다. 타이밍 좋게 방송이 울린다.
"금일 열차 운행이 종료되었으니, 플랫폼에 계신 승객들께서는 ..."
어라. 준성이 형은 내게 차로 데리러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함께 사는 준성과 범준은 조경학과 4학년으로 조경 기사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아침 열 시부터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지내고있는데 열두시가 지나도 내가 집에 없자 전화를 한 것이다. 형들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알고있던 나는 혼자서 돌아갈테니 걱정 말라고 답하고서는 전화를 끊었다.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첫 차를 타고 돌아갈 계략이었다. 이 때 내가 간과한 세 가지가 있다.
1. 김포공항은 밤 열 한시 이후로 운영을 안한다.
2. 김포공항역 근처에는 PC방이 없다.
3. PC방이 있다 했더라도,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을 시간이다.
지도 앱을 열었을 때 배터리는 11%였다. 아무리 찾아도 근처 PC방은 나오지 않고 배터리는 금세 8%가 됐다. 다시 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와줄 수 있어요..?"
형이 오려면 한 시간 반은 남았다. 역 밖으로 나오니 차들이 가득한 주차장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 뒤의 밤이라 으슬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취해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바로 옆의 인천은 무서운 동네라 들었는데.. 나 내일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되는 거 아니야?' 두려움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는 방전 직전인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남겼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누군가 이 기록을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2021년 1월 22일 12시 29분, 허해찬 김포공항역에 있습니다. Somebody help me!"
김포공항 역에 홀로 떨어진 걸 영상으로 기록한 뒤 휴대폰은 옷 속에 꽁꽁 숨겼다. 곧바로 옆의 수풀에 몸을 숨겼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십여분 지났을까. 술을 많이 마셨던 나는 수풀 속에서 작은 일을 처리했다. 같은 곳에 머무를 수 없어 다시금 주차장으로 걸어나왔다. 가득 찬 주차장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빗물 고인 웅덩이엔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난 여전히 취해있었다. 문득,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기타 자작곡 하나를 가지고있던 나는, 김포공항에서 데뷔를 했다. 가득 차 있으면서도 텅 빈 주차장을 달리며 노래를 불렀다. "잊지말아요 그대♪". 이 순간 나는 영화 주인공이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풍경 속에 눈치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공기를 가쁘게 내뱉으며 음도 박자도 다 틀려도 아무렴 좋았다. 이런 종류의 행복은 처음이라,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뻥 뚫린 마음으로 신나서 노래를 불렀다.
바깥에서 호텔로 연결되는 구름다리에 올라서니 새까만 공항 너머로 작은 무리의 빛이 보였다. 작고 꿈틀거리는 빛은 촛불처럼 떨리면서도 꺼지지 않았다. 다시 노래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만나요 우리~♪" 언제 시간이 금방 지나버렸고 준성이형이 도착했다. 그렇게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오늘은 분명 오래 기억될거야.
따뜻한 침대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김포공항에 있었다. 이렇게 맑은 마음으로 행복했던 적이 또 있었나. 매일이 오늘처럼 행복한 하루로 선명하게 남으면 좋을 것 같았다.
2년동안 학교를 다니며 너는 학교생활 잘 한다는 이야기를 수 차례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친구들과 잘 놀고 늘 신났던 날들 이었다. 그러면 지난 2년 사이, 오늘처럼 기억에 남는 날은 얼마나 있지? .. 아무 날도 떠오르지 않아 당황했다. 분명 나 항상 신나게 놀았는데? 뭐가 문제지. 고민은 다음 날 까지 이어졌다.
친구들과 학교 근처에서 부어라마시며 매일 신나게 놀지만 오히려 한강에서 맥주 한 캔 홀짝인 날이 더 선명히 남아있다. 일 년 전, 북한산에 올랐던 어떤 하루의 옷차림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하는 것이다. 문제는 생활권이었다. 똑같이 놀더라도 생활권 안에서 보낸 하루는 다른 기억과 함께 뭉쳐져있었고, 생활권 밖에서 보낸 날들은 오래도록 선명히 남아있었다. 벗어나기로 했다.
역병이 돌고있어 멀리 나갈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돈을 벌고있지도 않았기에 국내 여행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닿게된 것이 책방 여행이다. 성남에 자취방이 있으니, 아침에 여행을 떠나 저녁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 닿지못한 서울경기 곳곳의 책방을 기점으로 걸음하며,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