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름방학인 데다 코로나 거리 두기 4단계 격상으로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더 많아졌다. 매일 집에서 무슨 놀이를 할지 같이 고민하고, 함께 논다. 외동아들이기에 집에서 놀 때만큼은 내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서다. 요 며칠은 도미노 놀이에 빠져 하루 1번 이상 만들고 쓰러뜨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도미노를 하나하나 세워가며 모양을 만들어 가던 아들이 갑자기 나를 부른다.
"엄마, 내가 문제를 하나 낼 테니까 맞혀보세요. 화가 났을 때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을까요?"
그러면서 이렇게 3지 선다형으로 답안 예시를 제시했다.
-1번: 꼭 붙어있는다.
-2번: 손을 벌리면 닿을 정도의 거리로 떨어져 있는다.
-3번: 서로 닿지 않을 정도 거리로 떨어져 있는다.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중간 거리 2번을 골랐다.
아들은 "땡!"을 외쳤다. 그리곤 1번 예시 도미노부터 하나씩 쓰러뜨려 가며 설명한다.
"먼저, 딱 붙어 있는 1번 보세요. 한 명이 화가 나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쓰러지겠죠?"
한 사람의 화난 감정이 주변 사람들에게 다 전해져서 같이 쓰러진단다. 제일 안 좋은 경우라고 말했다.
2번의 경우도 어느 정도 떨어져 있지만, 그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고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3번보다도 더 떨어져야 해요. 화가 났을 때는 완전히 떨어져서 혼자 있는 게 좋아요.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거리 두기는 이럴 때도 필요해요. 그래야 화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어요."
갑작스러운 퀴즈 문제로 아들의 깊은 생각을 알게 되어내심 놀랍고 기특했다. 삶에 필요한 지혜를 잘 배워가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어른스러워져 버린 것 같아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이렇게 아들이 '화'를 다루는 방법을 빨리 깨닫게 된 것은 부모 때문이다. 과거에는 화가 나면 후회할 말과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해 아이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는 실수를 했었다. 서로 아파하며 방법을 터득해갔다.
가족과 함께 있다가 화가 폭발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땐 하던 것을 멈추고 잠시 뿔뿔이 흩어진다. 방을 분리해서 각자 떨어져 있는다. 성난 파도가 지나갈 때까지 추스를 시간을 갖는 것이다. 화가 난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먼저 대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 시간을 존중하며 충분히 기다려 준다. 이렇게 하면 화를 참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차분히 대화할 수 있을 때 다시 만나 화가 난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이제는 부모건 자식이건 상관없이 모두에게 통하는 우리 집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내 마음의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철저히 혼자여야 한다. '화'가 난다고 곁에 있는 대상에게 괜한 분풀이를 터트리지 말아야 한다. 틱낫한 스님도 '화'는 날감자와 같다고 표현했다.감자를 먹기 위해서는 냄비에 넣고 익기를 기다려야 하듯, 화도 그러하다고.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의 시간으로 화를 아기 다루듯 달래라고 말씀하셨다.
화가 날 때 떠오르는 생각은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많다. 내 생각이 더 큰 화를 불러 모은다. 그래서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들숨과 날숨을 하고 있는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화를 달래고 나면, 화 속에 숨겨져 있던 진짜 감정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실은 분노가 아니라 서운함, 슬픔, 외로움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