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일어나서 바로 화장실에 간다. 간단히 세수를 한다. 그다음 주방으로 가서 컵을 찾는다. 왼손엔 컵을 들고, 오른손엔 핸드폰을 들고 기상 인증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컵을 내려놓고 체중계 위에 올라서서 보이는 숫자를 확인한다.그다음엔 500mL 텀블러에 물을 가득 채운다. 천천히 들이킨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도 있지만, 물을 한 모금 두 모금 넘길 때마다 잠이 깨며 정신이 든다. 한 컵을 다 마신 뒤 다시 500mL를 새로 채운다. 물이 담긴 텀블러를 들고 나의 아지트로 향한다.
내 아지트는 안방과 안방 화장실 사이 한 평의 공간이다. 감사하게도 내 아지트에는 조그마한 창문도 있다. 아지트에 들어가면 먼저 창문을 열고 밖을 본다. 가끔은 창밖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자는 까치를 마주하는 날도 있다. 내가 내는 소리에 까치가 잠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깊게 숨을 들이쉰다. 한껏 들이마시는 새벽 공기는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을 들이켠 듯 청량하다. 새벽엔 호흡 몇 번만으로도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매일 반복하는 나만의 하루 시작의식이다. 소박한 나만의 의식에 '의미'와 '스토리'가 더해져 매일 새벽 시간은 나에게 더없이 특별하다. 단연코 내 삶의 '여덟 단어'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새벽과의 야심 찬 첫 만남, 그 시작은 한없이 미약했었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소심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매일 새벽 책상에 앉아 보잘것없고 부끄러운 나 자신을 직면했다. 내가 미워했던 내 모습을 용서하고 애도했다. 내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외롭고 아팠던 기억을 새벽마다 글로 눈물로 토해냈다. 평생 내가 증오했던 사람이 결국 그 속에 비친 나를 미워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연민이 차오르자 용서할 수 있었고 가슴이 후련해졌다.
미약한 도전을 매일 반복했더니 조금씩 단단해졌다. 반복할수록 창대해질 거라는 믿음도 견고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나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따라 매 순간이 창대한 순간이 될 수도 있음을 배우고 있다. 내 안에 생동하는 촛불을 마주하면서.
나에게 새벽은 내면의 촛불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혹여나 빛이 약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보살핀다.
예전에 JYP 박진영 씨가 했던 말처럼, "세상의 어두움을 탓할 시간에" 나부터 마음의 촛불을 켠다.
내 마음에 '꼬리표'나 '색안경'을 알아차리고 태워버린다. 내면의 촛불이 더 환히 빛날 수 있도록. 미처 몰랐던 나와 그들의 선한 욕구를 찾는 시간. 그리고 마음에 사랑과 연민을 채우는 시간.
내 안에 가득 채운 것만이 흘러넘쳐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내 안에 불만과 피로와 의심이 가득하면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흘러간다. 내 안에 사랑을 가득 채우면 그것 또한 주변으로 흘러간다. 내가 하는 한마디 말에 위로가 담기고, 내 눈빛으로 공감이 전해지기를.
새벽은 감성 근육의 트레이닝 시간이다.
머릿속을 시끄럽게 했던 어제의 사건들을 다시 복기하며, 상황과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시간. 내 몸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을 자각하고 수없이 흘려보낸다. 단단하고 유연하게 마음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다. 김영하 님도 《말하다》에서 '감성 근육'을키워야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느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참고는 하겠지만 의존하지 않는다. 남에게 침범당하지 않는 단단한 내면은 감각과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김영하 산문 《말하다》
매일 새벽 나를 관찰하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지금 내 안에 생동하는 욕구를 알아차린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놓친 것이 무엇인지도. 그렇게 매일 내 직관에 대한 확신을 쌓아가며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깊어진다.
새벽은이제 내 삶의 방향키이다. 비전을 향해 순항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 실패를 기꺼이 맞이하는 내가 되도록 준비하는 시간. 내 생각에 질문을 던지며 다시 균형을 잡는 시간. 그러므로 새벽에 나는 바다 위를 가르는 서퍼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