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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Jan 20. 2024

나의 첫 크리스마스 트리

  어릴 적 내가 나고 자란 강원도 시골마을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교회에만 있었다. 교회 앞마당에 있는 나무엔 겨울이 되면 전구와 장식물을 달아 트리를 만들었다. 어둠이 다른 곳에 비해 더 빨리 내려앉는 이곳에 유일하게 반짝이는 전구로 뒤덮이는 공간이었다.


 나는 반짝이는 트리를 좋아했다. 겨울만 되면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트리가 갖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달라는 나의 부탁을 매년 거절했다. 집이 좁아서,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까, 보관할 곳이 없어서라며 번번이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남동생은 트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나만 엄마를 졸랐고, 나만 실망하면 되는 일이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나만 크리스마스에 목을 멨다.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12월이 되면 슬펐다. 가질 수 없는 트리를 보며 서운한 마음이 뒤섞여서 말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졌다. 나는 반복된 거절에 포기하고 그해에는 1월부터 트리를 사기 위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이 되자 나는 일 년 동안 모은 용돈을 내밀며 엄마에게 트리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온전한 트리 하나 사기에는 돈이 부족하니까 엄마에게 조금만 보태달라 말하면서 말이다. 엄마는 역시나 단칼에 거절했다. 나는 속상하고 서러웠다. 하지만 엄마의 도움 없이 트리를 살 수 없었다.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서러워 펑펑 울었다. 야속한 마음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손녀딸이 문을 잠그고 울자 할아버지, 할머니는 놀라셨다. 시간이 지나 방 밖으로 나온 나를 붙잡고 왜 울었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셨다.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할아버지는 나무를 가지고 오셨다. 한 겨울에도 푸르른 사철나무, 살아 있는 나무를 잘라 가지고 와 화분에 심어 고정시켰다. 그제야 할머니가 트리를 만들 수 있는 나무를 구해오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럴싸한 나무가 생겼다. 나는 기분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나무만 있으면 뭐해요. 장식이 없는데..”



 이 한마디에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함께 문구점으로 향했다. 전구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장식을 가진 돈 내에서 몇 가지 사가지고 왔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앞장 세워 혼자만의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를 했다. 마지못해 쳐다보는 엄마에게 눈을 흘깃하고 말이다. 신난 마음에 집안 불을 모두 끄고 점등식도 했다. 반짝반짝, 드디어 나에게 처음으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 해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나도록 트리를 치우지 않았다. 나무가 시들어 버려야 할 때까지 거실에 두고 또 봤다. 학창시절 처음이자 마지막 트리였다. 나무를 자르는 일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생각에 다시는 나무를 잘라서 만들어 달라 조르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니기 위해 서울에 오고 나니 겨울마다 반짝이는 트리를 구경하기 위해 가야 할 곳들이 많아졌다. 갖가지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인 트리를 보면 예쁘다 사진 찍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내가 처음 가졌던 그날의 트리가 항상 생각난다. 어릴 적 손녀의 마음을 이해해 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애정이 담겨있었던 유일한 트리이기 때문이다.  그날, 내 눈에 담은 것은 반짝이는 전구뿐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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