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 Jan 23. 2024

일상과 일탈의 교차로

“잠시 후 이번 열차의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열차 내 방송소리가 나온다. 졸린 눈을 뜨자 흐릿하게 회사 건물이 보였다. 서울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주말 당일치기로 다녀온 여행에 KTX안은 밤 기차임에도 불구하고 만석이었다. 사람들이 짐을 내리기 위해 일어섰다. 모두의 얼굴엔 피곤함이 보이지만 두 손 가득한 짐들만큼 만족감도 서려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비워내고 무엇을 담아 왔을까. 손에 잡히는 대로 사온 기념품들과 달리 담아온 것들은 내 마음속에 있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와 처음으로 함께 다녀온 여행이었다. 나는 예상했던 발령이 틀어져 낙심했고 친구는 팀원이 퇴사해 업무량이 늘어 매일 야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저녁에 마시는 한 잔의 맥주만으로는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아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로 맘 먹었다. 태생이 강원도인 나는 강릉바다가 익숙하지만 부산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강원도는 해외를 가는 것 만큼 멀어 가본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친구에게 나의 고향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목적지는 강릉으로 정했다. 




   주말에 KTX를 타기 위해선 서울역으로 가야하는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회사쪽으로 향했다. 평일과는 달리 직장인들이 사라져 공기마저 변한 것 같은 지하차도를 걸으며 역으로 이동했다. 단 하루만인데 역의 온도가 뒤바뀐 것 같았다. 역에서 친구를 만나 같이 기차를 타고 두어 시간 정도 달려 강릉에 도착했다. 우리는 일정을 촘촘하게 짜지 않은 채 여유를 즐기며 다니기로 했다. 가고 싶은 곳 한 두 군데만 정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보냈다. 유명한 짬뽕순두부 식당에서 한시간을 기다려 점심을 먹었고, 커피거리의 한적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바닷가 백사장에 앉아 깊이 모를 고민을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던져 보냈다. 아마 동해안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 것이다. 깊고 푸른 바다를 볼 때 친구는 강릉바다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나 역시 강릉바다는 여러번 봤어도 이렇게 위로를 받은 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파도가 잔잔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니 내가 겪은 어려움도 금방 곧 잦아질거라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각자의 고민은 바다 속에 던져버린 채 여행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월요일 아침이면 나는 출근하기 위해 평소처럼 서울역으로 올 것이다. 주말 여행이 나에게 남긴 설렘은 조금 옅어진 채 말이다. 평일의 서울역은 출근길의 일부라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나에게 서울역은 일상과 일탈의 교차로이다. 주중의 모든 일상이 여기에서 이루어져 지치고 무료함이 가득하지만 가끔씩 일탈 같은 하루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민과 걱정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라 나를 괴롭게 하지만 주말의 설렘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고단한 일상에 매일의 마음가짐이 일탈과도 같을 수 없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당분간은 편안할 것이라 믿는다. 가벼워진 마음이 언젠가 또 무거워질 때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언제든 1번 출구로 망설임없이 향할 것이다. 출근하는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여행객들처럼.


작가의 이전글 나의 첫 크리스마스 트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