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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Sep 12. 2023

내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

퇴고를 앞두고

두 번째 책 퇴고 마감일이 목전이다.

이번 주에는 틀을 잡아야 추석 전에는 마무리가 될 일이다.

원고를 종이로 프린트해 둔지는 3주가 흘렀지만, 아무것도 손대지 못하고 3주가 지났다.

미루고 미루고도 또 미루고도 싶은 것이 퇴고이리라.


내 글을 예뻐해 주는 게 왜 이리도 힘든지.

그냥 휙 쓰고 덮어버리고 싶은 목록 중 하나가 나의 글이다.

썩 잘 쓴 글도 아니다.

그럼에도 눈은 높아서 내 글의 민낯을 보고 싶지 않고,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내 글의 고칠 점을 찾아내고 싶지 않다.

주절주절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 내려갔음에도 뭐라도 하나 들어있겠지, 진심을 알아봐 주겠지라며 글 쓰는 이의 나태함을 부려본다.


출판사 편집자님께서 알려주신 퇴고의 방향을 놓고 나의 초고를 살피니 에피소드만 남겨두고 다 고쳐야 할 판이다.

쓴 에피소드 중 몇 개는 삭제하고 다시 머리를 쥐어짜 내 새로운 글도 써야 한다.

머릿속으로 굴려보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며 진행이 될 것 같은데 막상 프린트된 원고를 보면 계약을 무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내가 뭐 그리 잘났다고

내가 뭐 그리 잘 쓴다고

내가 뭐 그리 안다고

책을 쓰려고 덤볐는지.

그 과정을 알면서도 무턱대고 두 번째 책 작업에 들어간 건지.

누가 보면 배 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맞다, 배부른 소리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23시간 55분이고, 해볼까 하는 마음이 5분이다.


도망칠 수 없는 시간 앞에 더 이상 쫓기기 싫어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자우림의 노래를 왕창 집어넣고 하루 내내 틈틈이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 미술 수업을 기다리면서 근처 바닷가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가을바람은 선선하고, 김윤아의 음성 너머로 파도소리가 들린다.

엉덩이에 닿는 몽돌 해변은 한낮의 햇살을 머금어 따끈하다.

운동화를 벗고 두 발을 쭉 뻗으니 양말 사이로 바닷바람이 지나간다.

지평선 너머를 응시하며 눈을 감았다 떠 보았다.


침잠이 필요해.


초고를 쓰던 퇴고를 하던

글을 쓸 때는 침잠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의 겉을 둘러싼 환경의 즐거움과 버거움을 그 자리에 놓아두고, 내 속으로 속으로 들어가 우물 안의 나를 만나야 한다.

이마 앞에서 알짱거리는 목소리들을 그대로 버려두고, 머릿속 어딘가로 깊이깊이 들어가 숨어있는 단어 하나를 만나야 한다.

머리를 쥐어뜯어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다.

잠자코 바라보며 기다리며 걷다 보면 저절로 마주할 녀석들이다.


유명 작가들을 흉내 내려는 게 아니다.

습관처럼 쓰지 못해서, 루틴으로 쓰지 못해서

글쓰기라는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침잠.

침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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