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줄넘기를 사 준건 1년 6개월 전이다. 줄넘기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보다 줄넘기를 가지고 놀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생각에 줄넘기를 사 주었다. 마침 우리 반 아이들도 줄넘기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에 일찍 접하면 나중에 좀 수월하게 배우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기대감도 있었다.
두 딸은 줄을 몸에 감고 푸는 놀이부터 시작했다. 거창하게 표현하니 '감고 풀다'지, 실은 둘이서 양쪽 줄을 붙잡고 깔깔대고 놀았던 게 전부다. 그러다 줄의 탄력을 느끼고는 줄다리기를 한참 했다. 옆에서 어른용 줄넘기로 시범을 보이며 "여기 좀 봐!"라고 아이들을 자극했지만, 몇 번 해보더니 어렵다며 버림받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줄다리기에도 흥미가 떨어지자 줄넘기는 1년 넘게 똬리를 틀고 차 트렁크 한쪽을 차지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줄넘기를 끄집어내어 낑낑대며 연습을 하는 게 아닌가. 옆집 지은이가 줄넘기를 잘한다며 뽐내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우리도 줄넘기 있어~"라며 대꾸하더니 줄을 한 개도 넘지 못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더니, 아이들의 잠자던 도전 의식이 깨어났나 보다. 역시 엄마의 시범, 엄마의 잔소리보다 더 탁월한 촉매제는 친구의 뽐내기다.
처음엔 한 개도 성공이 어려웠다. 손목이 아니라 팔 전체를 사용하여 줄넘기를 돌리고, 사뿐사뿐 뛰는 게 아니라 온몸을 점프해서 바닥으로 착지하니 될 리가 있나. 한 바퀴 돌아간 줄이 발 앞에 떨어지기 일쑤고 어떻게 점프를 했다고 해도 줄을 밟고 멈춤이 다였다.
그러더니 은이가 꾀가 생겼다. 한 바퀴 돈 줄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눈으로 확인한 후 잽싸게 퐁 뛰어 줄을 넘는 게 아닌가. 줄넘기 1개 넘기를 '스을로우모션'으로 작동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자신의 두 발이 줄을 넘었다는 사실에 은이는 방방 뛰며 기뻐했고, 나는 손뼉 치며 "역시, 하니까 되네!"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은이의 줄넘기 1개 성공을 보던 연이도 줄넘기에 열의를 보이더니 어느새 1개를 폴짝 성공했다. 역시 쌍둥이 은이의 성공은 연이의 없던 힘도 나게 만들었다. "연이야~ 진짜 멋지다!" 엄지를 들어 축하하니 연이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한 개에서 멈추지 마.
두 개도 멈추지 않고 뛰면 넘을 수 있어.
줄을 한 번 넘은 후 멈추지 말고 한 번 더 넘어보라는 조언을 하니 아이들은 몇 번의 연습 끝에 두 번을 넘었다. 한 번 넘은 뒤 발을 멈추면 거기서 끝인데, 그다음을 생각하고 폴짝 뛰면 두 번도 쉽게 넘어간 덕분이다.
줄넘기를 두 번 넘은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이후 며칠에 걸쳐서 줄넘기를 매일 연습했다. 두 번을 넘은 아이들에게 "두 번 뛰고 멈추지 말고, 세 번을 뛰고 멈춘다고 생각해 봐"라고 조언했더니, 아이들은 연습 끝에 세 번을 넘었다. 세 번을 넘은 아이들에게 "세 번 다음은 네 번이야. 네 번 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세 번 다음 멈추지 마"라고 조언했더니 아이들은 네 번도 넘겼다.
그러자 네 번을 막 성공한 은이가 물었다.
엄마, 그럼 다섯 번도 금방 뛰겠네?
네 번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연습을 충분히 하면
다섯 번이 금방 되는 거야.
그러니 연습하면 할 수 있어.
은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줄넘기를 연습했다. 한 번을 넘고 줄에 걸리고, 세 번을 넘고 줄에 걸리고, 네 번을 넘었다가 다섯 번째에 줄에 걸려 울상을 짓던 은이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연습 최고"라고 추켜세웠더니, 힘을 낸 은이가 줄은 넘고 또 넘었다. 그리고 은이는 거짓말처럼 다섯 번을 성공해 보였다. 곁에 있던 연이도 줄을 넘는데 집중을 하더니 곧이어 다섯 번, 여섯 번을 넘더니 열 번을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나도 몰랐다. 모르고 한 말이었다. '멈추지 않으면 뛸 수 있다, 충분히 연습해서 익숙해지면 그다음은 금방이다.' 자기 계발서에서 읽고 유튜브로 들었지만, 성취는 익숙한 결과로만 받아들여졌고 실패는 한계로 여겼다. 자신의 한계를 미리 설정해두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당신은 성공했으니 가능하지요"라며 스마트폰 위에서 손가락만 놀렸다.
눈앞에서 명언이 사실로 펼쳐졌다. 멈추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고, 충분히 연습하면 다음 단계로의 도약은 수월히 이루어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단순히 줄넘기를 성공했을 뿐인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에게 줄넘기의 성공은 오늘의 성취감이자 인생의 성공담이다.
글을 쓰면서 고민했다. 아이의 줄넘기 성공에 비견하는 나의 요즘 성공은 뭘까? 아이와 엄마의 성공을 비교하는 문장을 쓰고 싶었는데, 아이의 그것에 비견하는 나의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 나는 마음을 다해 전심을 쏟아본 일이 있었는가? 잇단 실패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거듭하여 성취의 기쁨을 누려 본 적이 있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루의 일과를 쳐내기에 바빴고, 밀려드는 감정의 쓰나미에서 정신을 가다듬기 바빴다.
아이들은 오늘도 추위를 뚫고 줄을 넘을 것이다. 차가운 공기에 운동으로 열이 올라 두 볼이 빨개지도록 줄을 넘고 또 넘을 것이다. 그리고 줄넘기에 열정이 식으면 다른 목표로 눈을 돌리겠지? 거기에 또 몰입을 하여 시행착오를 겪은 뒤 성공의 맛을 볼 것이다. 킥보드 타기가 그랬고, 두 발 자전거 타기가 그랬고, 줄넘기가 그랬던 것처럼.
뭔가에 열심을 쏟는 아이들 곁에 서서 나에게도 질문을 던져야겠다.
넌 오늘 무엇이 재밌니?
넌 오늘 무엇을 하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