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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Jun 04. 2024

사는게 힘들 때 한 겹의 위로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오늘이 딱 그렇다.


어젯밤, 내가 부탁한 일을 동거인은 해놓지 않았고 난 아침에 그걸 해놓지 않음을 탓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탓'을 들은 동거인은 발끈하였고, 난 '알겠다'라고 응수하곤 출근 준비를 했다. 동거인은 몸을 일으켜 어제 부탁한 일을 해 놓았고, 나는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이들을 깨웠고, 먹였고, 아침 활동을 채근했다. 아이들은 만화를 더 보겠다고 했고, 만화를 더 보게 됨으로써 줄어든 시간과 조바심에 아이들을 탓했다. 어젯밤부터 꽉 눌러놓은 체기가 아이들에게로 다 돌아갔고 아이들은 엄마의 분노의 목소리를 들었다. 

차를 바꿔서 출근 다녀오라는 동거인의 이야기에 '알겠다'라고 대답하고 아이들을 맡기고 나왔다. 출근하는 길, 바뀐 차에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고, 이유 모를 화에 몸만 부들부들 떨렸다.


출근하여 마음을 가다듬으려는데 동료 교사의 은밀한 왕따가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조금 더 사교적으로 응수하지 않는 나에게 의아함을 표현하지만 나는 그런 행동에 사교적으로 응수하고 싶지 않다. 나르시시즘으로 똘똘 뭉친 그 동료교사의 행동에 1도 응답해주고 싶지 않다. (뭐 이 또한 나의 성격이다) 괜히 교무실에 커피를 가지러 가서는, 괜히 출장 가는 또 다른 동료교사에게 "잘 다녀오라"라고 이야기를 해서는, 동료 교사의 은밀한 왕따 의식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여자들 사이에서의 은밀한 배척은 대꾸해 봤자 응수하는 사람이 지고 마는 것이기에 무응답이 상책인데 내 몸 안에 꽉 들어찬 화는 어깨를 누르고, 머리를 누른다.


이유를 찾고 싶지 않다.


난 내 뜻대로 초단위로 움직여주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화가 났다. 나의 불안을 자극한다. 이건 내가 다시 바로잡아야 할 시선이고 마음의 화임을 알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럴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동료 교사의 은밀한 왕따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 그자는 그저 그런대로, 나는 나대로 살련다. 그러기에는 나 또한 인정욕구와 관계에서 찾는 친밀 욕구가 크기에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고 더욱 세력을 확장하는 여성들의 은따를 겪어 본 사람은 알 테다. 결국 곪아가는 건 나이기에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 외에는 없다.


사는 게 참 어렵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삶에서 답답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다.

일기장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쓰는 것도 감사하다.

그래도 익명의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겹의 위로가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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