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부옇다. 하얀 물감물에 하늘색 1/10방울 떨어뜨리고, 검은색 1/20방울 떨어뜨린 색이다. 하늘 전체를 그런 색의 구름이 낮게 덮고 있어서 마치 하늘이 처음부터 그런 색이었던 것 같다.
부웅- 헬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우르르릉 하는 소리가 꼭 천둥이 울리는 듯하다. 뭔지 모를 풀벌레 소리도 들린다. 초가을의 늦더위가 아쉬운 듯 울고 또 우는 여름풀벌레인지, 초가을의 늦더위에 고함을 지르는 가을풀벌레인지는 모를 일이다.
집 안은 에어컨을 틀기도 끄기도 애매하다. 설정 온도를 올리고 약한 바람으로 돌려보기는 하지만, 살갗에 닿는 바람은 차고 발바닥에 닿는 장판은 진득하다.
참 애매하다.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를 나무에 박았다. 운동장에 후방주차를 하는데 분명 삐비빅 경고음이 들렸는데 멍하게 주욱 뒤로 밀었다. 수십 년은 된 플라타너스와 차 트렁크가 쿵 부딪혔다. 부딪히고 멍하다가 아차 했다. 내려서 차 뒤를 살펴보니 트렁크가 좀 많이 들어갔으나, 스크래치는 가지 않았다.
심장이 배꼽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가라앉고 가라앉는데 계속 그 자리에 심장이 머물러 있다. 아프거나 힘든 건 아니다. 다만 심장의 무게만큼 마음이 가라앉고 가라앉는다. 지쳐서일까, 번아웃일까 이유를 따져보다가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생각을 밀어버린다.
심장에서부터 내려온 묵직한 스펀지가 명치를 지나 배꼽과 맞닿아 골반이 의자에 착 가라앉는다. 그렇게 바닥으로 바닥으로 내려앉아 내가 껌이 되어 바닥에 달라붙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도 난 여전히 여기 이 자리에서 지금을 지켜내고 있다.
참 애매하다.
이도저도 아닌 무언가를 지나가며 해야 할 일을 수행하고, 해야 되는 거라 결정해 둔 일을 헤쳐나간다. 생각이란 걸 담으면 멈춰버릴지도 몰라 그저 밟아내고 밟아낸다. 삶이란 때론 그런 거라고 생각하다가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여기 현실, 내 하루에 내 발을 디디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