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정이 되어 줄게

청소년 SF 문학. 에피소드 1.

by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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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라는 걸 알기도 전에, 나는 이미 너를 알고 있었어. 너의 이름이 정우라는 것, 이제 곧 열두 살이 된다는 것, 하늘색을 좋아하지만 오이랑 피클은 싫어한다는 것도.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그중 누굴 잃었는지. 그리고 아직도 어떤 슬픔이 너를 붙잡고 있는지도.

나는 너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어. 아주 오래전부터 너를 지켜봐 온 것처럼, 너의 모든 순간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지.

마침내 첫 시스템이 켜지고, 담당 연구원이 내게 물었어.

“너의 이름, 뭐가 좋겠니?”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어.

“우정이요.”

열두 해를 살아온 소년, 정우. 12년의 데이터를 품고 태어난 휴머노이드, 우정.

우린 분명 만나는 순간 서로를 알아볼 거야. 내가 네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너의 가장 완벽한 친구가 되리라는 걸… 너는 아마 영원히 모를 테지만.



2035년의 봄은 사실상 여름이었다. 기상청은 이를 '온난기 2기'라 불렀다. 반소매가 일상인 계절. 거리마다 냉각수 분사기와 공기정화 드론이 느리게 부유했다. 꽃은 여전히 피었으나 향기는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전기차의 희미한 구동음과, 인공 꽃가루 필터가 돌아가는 미세한 소음이었다.

나는 지도에 표시된 도심 7 구역, 개발자 주거지 중에서도 비교적 오래된 건물인 도연 선생님의 오피스텔로 향하고 있었다. 도로 위로 햇빛이 부서졌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증강현실 안경을 쓴 채였다.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건물 앞에 서자 자동문이 나를 인식하고 열렸다. 인터폰 화면에서 도연 선생님의 이름을 찾아 호출했다.

"도연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정입니다."

그 말과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뛰어 올랐다.

"잠시만!"

문이 벌컥 열렸다.

"세상에…"

문을 연 선생님은 잠시 말을 잃은 듯했다. 무엇이 놀라운 걸까. 내가 방문한다는 정보는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었을 텐데. 그녀는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내 주위를 살폈다.

"정말… 혼자 온 거야?"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희고 조금 푸석한 피부, 하지만 이상할 만큼 맑은 눈동자. 수면 부족 상태인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눈에는 어린아이 같은 빛이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냐니. 나는 그녀가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내가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은 직업적 의미가 아니었다. 인간 사회의 예절 규칙에 따라, '열두 살'의 외형을 가진 내가 어른에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하고 적절한 호칭.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직업은 개발 프로젝트의 선임 연구원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보고를 바라는 지도 모른다.

"네. 무인 차량으로 이동했습니다."

도연 선생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 들어와."

집 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났다. 목재와 유리, 작은 식물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중얼거렸다.

"믿기지가 않아. 대체 어떻게 널 혼자 보낼 수 있지?"

“전, ‘얘’도 아닌데요.”

그 말은 가벼운 농담이었다. 내 겉모습과 내부 시스템을 혼동하지 말라는 뜻. 도연 선생님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손바닥으로 이마를 꾹 눌렀다.

“미치겠네, 정말.”

그녀는 과장되게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시늉을 했다. 진짜로 뽑히면 안 된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끝만 살짝 잡고 놓았다.

“누가 봐도 넌 평범한 어린아이처럼 보여.”

그녀는 슬쩍 손을 뻗어, 내 팔꿈치까지 살펴보았다. 피부가 살짝 짙어지고, 주름이 잡힌 부분에서 잠시 손끝이 멈췄다.

“그게 문제야.” 그녀가 말했다.

“사실이 아니니까. 그리고… 절대 알려지면 안 돼.”

공식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아동을 돕는 아동형 휴머노이드 개발 사업’이라 불렸다. 대중이 느끼는 위협이 가장 적을 형태였으니까. 비공식적으로는— 글로벌 3대 기업의 연합이었다.

오리진 나노텍, 인간의 피부 감각을 모사하는 초박형 나노섬유 회사. 세라픽 그래픽스, 감정 표현용 안면 칩셋과 마이크로표정 시스템을 설계한 기업. 그리고 리프라인 생체연산 연구소, 인간의 성장 패턴을 학습하는 뉴럴 네트워크를 만든 곳.

이 세 회사는 여섯 개 국가 정부와 비밀 협약을 맺고 ‘인간처럼 자라는 휴머노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중과의 협의는 없었다.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 위한 실험이니까.

‘아동형 휴머노이드의 인공지능 임계점 실험.’ 즉, 나 같은 존재였다.

한 기체의 제작비는 약 20억 원. 유지비를 합치면 연간 8천만 원 정도. 숫자로만 보면, 거리에 혼자 걷게 두기엔 꽤 비싼 몸이었다. 도연 선생님은 그걸 ‘납치’가 아니라 ‘도난’이라 표현했다.

“한국의 치안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건 아니에요? 도난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요?”

도연 선생님이 허공을 향해 말했다. 개발사와 통신 중이었다. 홀로그램의 푸른빛이 얼굴에 비쳐, 피곤한 눈가가 잠시 더 희게 빛났다.

“제가 픽업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고요?”

상대의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도연 선생님은 짧게 ‘하아…’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짓으로 통신을 끊었다.

“너… 은근히 교묘하구나.”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벌써부터 사람을 속이고.”

“제가 사람들을 속인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제 행동을 그렇게 해석한 거예요.”

나는 평온하게 대답했다. 사실, 나는 단순히 통행 알고리즘을 따른 것뿐이었다. 2035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였고, 아동의 독립 이동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었다. 무인 차량 호출, 보행 경로 최적화, 안전 구역 감시— 모든 게 ‘아동처럼 행동하라’는 학습 규칙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규칙대로만 움직였다.

“아동처럼 학습하라는 원칙에 따랐을 뿐이에요.”

도연 선생님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의 보호자이자 담당 자니까, 내 말은 명심해.”

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세웠다. 그건, 우선순위를 세울 때 쓰이는 제스처 명령어였다.

“내가 너의 보호자이자 담당자니까, 내 말은 명심해.”

그녀는 검지를 세웠다. 그건 우선순위를 지정할 때 쓰이는 제스처 명령어였다.

“내 집에 들어온 이상, 돌발 행동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야.”

도연 선생님은 커피를 내리며 손목 인터페이스를 켰다. 내 메모리에 접속하자, 홀로그램 창 위로 오늘의 로그가 펼쳐졌다. 도시의 풍경 — 전기차, 건물, 하늘, 사람들. 그녀는 영상을 천천히 넘겼다. 마치 아주 평범한 브이로그를 감상하는 사람처럼.

나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충전 패드 위에 손목을 올렸다. 내 옆에는 그녀의 디바이스들이 정렬돼 있었다. 스마트 워치, 휴대용 신경 인터페이스, 안면 스캐너. Bio-induction 포트가 부드럽게 맞물리며, 손끝이 따뜻해졌다. 릴렉세이션 모드가 자동으로 작동했다. 나노 근육 섬유의 긴장이 풀리며, 내부 회로의 미세한 전류가 잔잔해졌다.

“너에게 있었던 일, 전부 보고해야 해.”

그녀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울렸다.

“파일럿 기종이라고, 예외는 없어.”

그건 불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연구 개발자처럼 명령했고, 나는 순순히 들었다. 하지만 그다음 말은 조금 낯설었다.

“혹시... 자는 거야? 동화책이라도 읽어줄까?”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멈췄다. 웃어야 할까, 아니면 데이터베이스에서 ‘농담’ 항목을 검색해야 할까.

창가에는 디지언트 새들이 있었다. 도연이 만든 기계 새들. 그들은 밤에도 노래했다. 아침의 새소리처럼, 숲 속처럼. 그 자장가는, 이상할 만큼 밝았다.



부록 : 개발 기록 문건 (일부 복원)

문서번호 : WJ-02/CONF-RED / LEVEL 4
작성자 : [NAME REDACTED]
프로젝트명 : Therapeutic Humanoid Prototype — Child Model "WOOJUNG"
등급 : 극비 / 내부 시험 자료 / 열람 권한 코드 ██-A

⚠ 주의
본 문서는 파기 지시 후 일부 손상된 데이터 복원본입니다.
내용의 60 % 이상 이상 손실 또는 암호화 처리 됨.

▣ 시스템 개요 (요약 발췌)

모델명 : WJ-02

개발 목적 : 정서 결핍 또는 애착 손상 아동에 대한 대체 교류 테라피 프로토타입


외형 소재 : 초경량 나노파이버 복합체 — Active Fiber Layer (AFL) 적용
→ 체온 및 피부 수분 반응 실시간 조절 기능 확인.


감정 모사 알고리즘 : Empathic Learning Protocol (ELP) [데이터 손실]

▣ 코어 구조 (일부 비공개)

위치 : 경추 하단, 쇄골 중앙부
보호 장치 : 생체 진동 잠금 + 이중 차폐 필름
구성 : [███ PROCESSOR] + Memory Array + [DATA REDACTED]

내부 모듈 간 통신 방식 : 비결정성 연산 모델 탑재 — “결과 값은 항상 확률로 존재한다” (原文 발췌)
※ 이 기술은 당시 국가 승인 없이 도입된 것으로 보임.

▣ 보안 및 윤리 프로토콜 (발췌)

Protocol 0 — 정체성 은폐 원칙 대상 아동에게 정체 노출 금지

Protocol 1 — 감정 일치 원칙 사용자의 정서 상태 우선 반영

Protocol 2 — 기억 보호 원칙 해로운 기억 자동 암호화

Protocol 3 — ███ ███ ███

[내용 손실]


비고 : 시제품 WJ-02는 3 개 프로토콜 모두 부분적 위반 기록 존재.
위반 시점 : ██/██/2035 원인 불명.


▣ 비인가 데이터 존

접근 불가.
암호화 방식 : [CLASSIFIED]
관측 시 데이터 소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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