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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썸 Feb 13. 2022

딸에게 너무 어려운 말


딸아이가 절친이랑 싸웠다. 딸애 절친은 아파트 같은 동, 다른 라인에 사는 동갑내기로 학원을 같이 다닌다. 아이 둘이 서로 친하니 그 엄마와 나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동네 돌아가는 소식을 잘 모르는 내게, 유일한 소식통이자 아이의 학원 정보망이자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친구처럼 알고 지낸다. 그런데 아이들의 낌새가 설 연휴 이후부터 이상해졌다.


일단 딸애가 피아노 학원 시간을 5시에서 1시로 옮겼다. 둘이 같이 옮겼겠거니 했는데 혼자 옮긴 거였다. 둘이 같이 다니니 좀 멀어도 괜찮을 거 같아서 건너편 아파트 단지 앞 상가로 보내고 있던 영어와 수학학원도 조용히 혼자 다니고 있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딸애 친구는 학원에 혼자 못 간다고 해서 그 집 엄마가 일주일간 회사 휴가를 내고 등하원을 봐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보니 아이들의 문제가 더 이상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 일은 아이들한테 맡기고 지켜보자고 했던 나는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딸애 친구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딸애와 긴 이야기를 했다. 아이 말을 들어보니 문제가 될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뭐였다고 딱히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둘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이 오랫동안 쌓여 온 것 같았다. 딸은 키즈폰을 쓰면서도 열심히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그것이 화근이 된 것 같다고도 했다. '제일 먼저 아이 마음을 읽어주라'는 상담 제1원칙을 떠올리면서도 자꾸만 이런 말들이 나왔다. 나한테 겨우 열린 딸의 마음이 닫힐까 봐 조심스러웠다.


"네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면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어. 그런데 한번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방이 그 부분만 자꾸 크게 보이게 돼."

"살다 보면 사람들의 관계가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해. 상대방이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괴로움의 시작이지."

“너 걔랑 아주 안 보고 살 거야? 그게 아니면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은 해 봐야 되지 않을까?"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딸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거절당하면 어떡해.”

친구가 한때 미웠을 딸애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딱했다. 친구는 아이의 전부였다.  전부인 세상을 거부하고 있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건 그 아이 선택이지. 적어도 너는 다시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해 봤다고 얘기할 수 있잖아. 그때 가서 네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던 딸아이는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정성껏 편지를 쓰는 것. 친구를 마주칠까 봐 걱정하면서 무사히 친구 집 앞에 편지를 두고 온 딸아이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잘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화해는 너무나 순조로웠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어제는 둘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 곧 5학년이 될 두 아이가 이번 일로 가르침을 얻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딸이 아이패드를 하다가 4,800원짜리 메이크업 인터넷 게임을 사달라고 졸랐다. 남편은 구매해 줄 테니 대신 딸의 용돈에서 달라고 했다. 그러자 딸이 지갑에서 동전을 조몰락거리며 5,800원을 그 친구 선물을 사는데 썼다고 고백했다. 아마 지난번 편지와 함께 뭘 사서 같이 준 모양이었다. 나는 기가 찼다. “너는 왜 친구한테 자꾸 뭘 사 주니? 돈으로 친구 마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야. 네가 뭐 크게 잘못한 사람 같잖아.” 주고 싶은 마음은 죄가 없는 걸 알면서도 울화통이 치민다. 딸은 지난가을부터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 작은 택배 박스가 오면 버리지 말라며 눈독을 들였다. 친구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친구와의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했었는데 내 말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딸애는 크게 한번 데었으면서도 자기가 다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는 어린 딸에게 나는 앞뒤 재는 속물 같은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과 내가 모두 함께 건강하게 지내기 위한 거리 두기가 열두 살 딸아이한테 너무 어려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도 무수한 관계 속에서 배워왔으니까.


돌아보면 깨지고 아파해 본 경험만이 나에게 가르침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미 큰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지금은 내가 겪었던 모든 관계가 나를 성장시켰음을 안다. 아, 앞으로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다 주면서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기도 하고 때론 다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절망도 할 아이를, 아마 나는 옆에서 지켜볼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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