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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썸 May 16. 2022

어깨춤을 추게 해 봐

-스승의 날을 대하는 자세

"얘들아, 오늘은 모닝페이지 주제를 줄 거야. 일명 '선생님 기 살리기'. 선생님 어깨뽕이 하늘까지 치솟도록 선생님 칭찬을 써 보렴." 


농담처럼 던졌는데 아이들은 진지했다. 결의에 찬 눈빛이 정말 공책 한 바닥을 채울 요량인지 교실이 금방 조용해졌다. 몇 해 전, 스승의 날을 맞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일기 주제로 쓰게 했는데 아이들 일기 속에 그려진 다양한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비교하고 움츠러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긴 5월 중순이면 이제 두 달 반 지난 시점인데 일 년을 같이 지낸 선생님과 게임이 되겠는가.(그렇게 믿고 있다.) 그때 마음먹었었다. 언젠가 스승의 날 글쓰기를 한다면 다른 선생님 말고 내 이야기만 써 보라고 해야지. 


아이들이 돌아간 뒤 설레는 마음으로 걷어 놓은 모닝페이지를 읽었다. 비행기를 타고 한없이 자꾸자꾸 올라갔다. 기억에 남는 칭찬은 이런 것들이다. 


-캐묻지 않으신다. 예전에 다른 사람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하셨다.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믿어주시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 우리의 헐거워진 나사를 조여준다.(이건 내가 많이 하는 말이다.) 약간씩 화를 내기도 하시는데 그런 행동이 화도 안내는 착한 선생님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을 보면 왜인지 모르게 행복하다.

-굉장히 엄청난 습관을 가지고 계신다. 매일 책을 읽으시고 맘에 드는 문장을 기록하는 습관 말이다. 그래서 굉장히 유식하시다.('굉장히'를 두 번 썼다.)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런지 조용히 말을 하실 때는 서울대 교수님 같기도 하시다.(아는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스승의 날 이것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 '엎드려 절 받기'이지만 급격히 하락하는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극약 처방이요, 고갈되는 에너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몇 달은 나 혼자 조용히 웃으며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계속 도취되어 있으면 곤란하다. 정신을 차리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글로 쓰지 않았을 뿐, 나는 단점도 많은 사람이니까. 항상 되뇐다. 지금 이 순간, '뭣이 중헌디'. 


완벽한 교사가 되기는 어렵다. 완벽한 교사가 되기 위해 한때는 꽤나 열성적이었다. 모든 아이들의 사랑과 학부모님들의 칭찬을 갈구했을 그 당시에 나는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였는지 몰라도 행복한 교사는 아니었다. 행복한 교사가 되어 보니 이제야 아이들이 온전한 존재 하나하나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힘을 주고 있는 줄도 몰랐다가 이제는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 게다가 이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기 좀 살려 봐. 나도 칭찬 좀 들어보자." 여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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