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의 대하는 자세(2)
작년에 졸업한 학생 중 한 명이 밴드로 톡을 보내왔다. 스승의 날이 일요일이니 다음 날인 월요일에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6학년일 때 학교 규칙으로 단톡방을 엄금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단톡방에 북적북적 모여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점잖게 타일렀다.
"월요일 학교 방문은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 출입이 아직 엄격하거든. 지금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자고 전해 주렴. 나는 조용히 잊히고 싶단다."
"헉,,,, 알겠습니다ㅠ 앞으로도 행복하시길 바래요!"
오잉? 이렇게 대화가... 끝? 이상기류를 감지한 나는 부랴부랴 문자를 다시 보냈다. 교실로 찾아오는 건 다른 선생님들께 방해가 되니 퇴근 후에 교문 밖에서 만나는 건 어떻겠냐고.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아이들 얼굴을 보고 이름이 막힐까 봐 컴퓨터 화면에 붙여 놓은 작년 명렬표를 한 명 한 명 읊조리고 나왔다. 작년 담임으로 잠시 돌아가야 했다. 교문을 나서니 키가 훌쩍 자라서 중학교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떼 지어 몰려왔다. "선생니임!" 길에서 한 두 명 마주칠 땐 멋쩍게 인사만 하더니 역시 무리 속에 있으니 생기가 넘친다. 올해 3월 초 새로 만난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리움'을 알게 해 준 녀석들이다. 궂은날이나 맑은 날이나 모든 날이 좋았었는데 너희는 아니. 이것 봐. 내 말이 맞지. 지나고 보면 어떤 시간이었는지 제대로 보인단다. 곧 학원에 가야 하는 아이가 있어서 카페에서 음료 한 잔씩 들려서 방해되지 않게 밖으로 나왔다.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육교에서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헤어지려고 하니 말수 적은 여자 아이 하나가 나를 덥석 안아준다. 진심이 느껴져서 울컥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안아 주고 토닥여 주고 하트를 몇 번씩 보내면서 어렵게 헤어졌다. 아이들은 나를 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애틋하게 헤어지기 위해 만난 것 같았다. 뭘 대단한 걸 가르쳤다고 일부러 찾아오니, 우리의 만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지레 겁먹은 것은 나였다. 시간이 어련히 알아서 할 일을, 감히 잊히고 싶다는 소리가 어떻게 내 입에서 나왔을까. 실수를 안 하려고 정신을 바짝 차려도 이렇게 빈틈이 많다.
내가 아이들한테 주는 것보다 몇 배로 받고 산다. 집에 돌아와 편지를 읽다가 또 울컥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즐거운 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선생님께서 건네셨던 조언들이 더 나은 저 자신으로 향하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선생님의 평안한 나날들을 응원할게요." 오랜만에 읽는 A의 글을 읽으며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이제 A의 문장을 다시 읽을 수 없겠구나.
한때는 어른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 덜 고단할 것 같았다. 한참 모자랐을 때의 나를 만났던 아이들이 내게 상처받지 않고 어딘가에서 제 몫의 삶을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한다. 아이들 속에 있는 단단한 진심을 읽으면서 이제는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이 아니었으면 이만큼 성장했을까 자신이 없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도 졸업하고 내년에 나를 찾아올까. 그럼 얘기해 줄 거다. 거 봐. 지나 보면 어떤 시간이었는지 더 잘 보인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