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주보에서 아브라함 얘기를 보았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잠시만 아브라함과 이삭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교회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립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와 사이에서 아들을 얻지 못하다 그가 100세가 되던 해에 드디어 아들을 얻으니 이가 이삭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에서 번제는 산 짐승을 잡아 불로 태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뜻했기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이삭을 죽이라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이삭과 함께 번제 준비를 하고 산에 올라 이삭을 정말로 죽이려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말리며 그의 믿음을 인정했다는 얘기입니다.
교회 주보에 실린 칼럼에서 어느 목사님은 스스로의 믿음과 목회를 위한 희생을 아브라함과 이삭의 얘기에 빗대면서, 자신은 아브라함에 비하면 하찮은 어려움과 고뇌로 힘들어했다면서 반성하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 고뇌, 짐을 털끝만큼도 대신 들어줄 수 없습니다.
각자의 고통과 고뇌는 오롯이 그 자신의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상 인정받는 훌륭한 위인이 나보다 훨씬 심한 역경에 처하고 이겨냈다면 그 자체로 존경을 받을 일이지, 그것과 지금 나의 상황을 단순비교하여 내가 못난 사람이라거나 약한 사람인 양 생각할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상 위대한 인물과 우리를 단순비교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이런 논리의 가장 큰 오류는 역사상 훌륭한 위인들 - 마더 테레사, 이순신 등 - 이 나보다 훨씬 어려운 역경을 훌륭히 이겨낸 예가 있다면, 나보다도 작은 고통, 고난에도 힘들어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런 무너지더라도 누구하나 비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어설 수 있었는지, 그 마음가짐을 배우고 참조하는 것입니다.
규격외의 괴물과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파괴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행복을 찾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