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힘들다."
"나도 힘들다."
두 문장은 조사 하나의 차이로 아예 다른 말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감히 작금의 대한민국 모든 문제의 8할은 "나만 힘들다."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나도 힘들다."가 상대에 대한 이해, 존중, 배려, 공감이 가능한 말인반면, "나만 힘들다."는 상대에 대한 배척, 적개심, 몰이해, 무시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요즘 직장에서 일도 많고 상사도 어찌나 뭐라고 하는지 회사 다니기 너무 힘들어요."
"그렇지? 나도 직장생활을 30년이나 해봤는데 그게 참 쉽지 않더라."
"요즘 직장에서 일도 많고 상사도 어찌나 뭐라고 하는지 회사 다니기 너무 힘들어요."
"힘들긴 뭐가 힘들어? 너희들이 못 먹고 일해봤어? 토요일도 일해봤어?"
전자가 "나도 힘들다.", 후자가 "나만 힘들다."입니다.
앞의 말은 그 뒤에 자연스럽게 공감, 이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이어질 수 있으나, 후자는 맥락상 자연스럽게 훈계, 질책, 거부 등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는 "서구 열강의 180년, 6세대에 걸친 발전을 60년, 2세대만에 따라잡은데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가 진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글은 논문이 아니고 저도 관련 내용을 논할 전문지식이 없으니, 제 멋대로 기준을 잡고 쓰는 점에 대해서는 양해와 이해 부탁드립니다.)
산업혁명에 의한 본격적인 서구열강의 발전을 1851년 제1회 런던 세계박람회로부터 잡고,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발전은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첫 해로 보고, 1세대는 30년이라고 임의로 가정하겠습니다.
이렇게 시대상을 구분할 경우 서구열강은 1851년부터 2031년까지 6세대에 걸쳐 산업혁명, 천민자본주의, 공산주의 대두,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3차 산업혁명, IT혁명을 거쳐 AI시대, 양자컴퓨터 시대로 발전해왔으나, 우리나라는 1962년부터 2022년까지 단 2세대, 60년만에 이 모든 변화를 거쳤습니다.
서구열가의 경우 정치체제, 생활양식, 기술기반, 사상 등 어떤 면에서든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공통분모로 삼는 것이 적어도 하나 이상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851년~1881년 1세대와 1881년~1911년의 2세대는 정치환경, 생활양식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2세대가 살던 시대에도 1세대와 마찬가지로 입헌군주정은 유럽 정치체제의 주류였으며, 각국의 왕가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 손녀들이 즐비했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삶의 편리성이 급격히 발전하고는 있었지만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 발명이 1911년이므로 생활양식 또한 1세대와 2세대는 공유하는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3세대인 1911년~1941년은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로서 3세대는 1세대 및 2세대와 좋았던 그 시절, '벨 에포크'시대를 동경하는 얘기를 나눈거나 끔찍한 제1차 세계대전, 세계 경제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을 왜 막지 못했냐는 논쟁을 벌였을 것입니다.
3세대와 4세대 1941년~1971년은 사상적으로는 아노미상태가 끝나고 미소 냉전이 시작되어 단절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생활양식에 있어서는 전쟁중 급격한 기술발달과 이후 개량, 개선이 이어져 서로 간의 공통분모가 많았을 것입니다.
일례로 1910년대 뉴욕을 찍은 유튜브 영상을 보시면 길거리에 자동차와 함께 마차가 당연하다는듯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1940년대만 해도 더 이상 마차는 다니지 않아 2세대와 4세대 사이의 생활상은 아마 큰 단절이 생겼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CsV-c2XILo
https://www.youtube.com/watch?v=IjwyUAtACTI
서구 열강에서 1851년에 태어난 1세대 사람과 1881년에 태어난 2세대 사람은 서로 "빅토리아 여왕"을 주제로 아무런 무리 없이 대화가 통했을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정치에 대한 찬/반이 문제가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이라는 당연한 정치지도자 및 그로 대표되는 영국정치에 대한 많은 부분을 공유했을 거란 말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1962년에 태어난 사람과 1992년에 태어난 사람이 박정희를 주제로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할까요?
사실상 농경사회였던 대한민국에서 1962년에 태어난 사람은 박정희와 동시대를 살았고 박정희의 경제정책의 효능감을 온몸으로 직접 체험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1992년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산업화의 수혜가 일반 국민에 퍼지며 본격적인 마이카시대에 X세대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1962년생과 1992년생이 박정희란 주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은, 1992년생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의 경제개혁이란 것은 서구로 치면 산업혁명-근대화로 이어지는 시기의 것인데, 1992년에 근대화란 애저녁에 끝난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비유이지만 돌도끼를 전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자가 5,000년을 타임슬립해서 2024년의 대한민국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해봅시다.
이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1원이라도 벌 수 있을까요?
서구열강의 경우 이전 세대의 지식, 경험, 노하우의 상당부분은 그 다음 세대에게 유용했습니다.
최소한도 인생경험 자체가 완전히 이질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서구열강이 6세대, 180년에 걸쳐 발전한 것을 불과 2세대, 60년만에 따라잡은 전세계 역사에 앞으로도 유래없을 압축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조적인 세대 단절이 발생하였습니다.
아까 비유를 든 것처럼, (물론 좀 심한 비유입니다만) 6070세대의 노하우, 경험이란 것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더 이상 맞지 않거나 극단적으로는 신석기 시대의 돌도끼같이 아무데도 쓸데 없는 기술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저도 글을 쓰다가 생각한 것입니다만, "나만 힘들다."는 말이 나오게 된 근본원인도 세대 단절에서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해법이 무엇이냐?
제 생각은 의식적으로라도 "나도 힘들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유로 윗 세대의 힘듦과 아랫 세대의 힘듦은 질적으로 아예 다른 차원의 힘듦일 수 있고, 그것을 서로 간에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는 3차원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4차원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의식적으로라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언어습관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제 결론입니다.
모쪼록 현재의 극심한 대립이 조금이나마 바람직한 방향으로 완회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