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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하우사와 요루바 민족의 전설과 민담』을 읽고

얇고 넓은 독서가 건넨 영감으로 쓴 숏(Short)설(說)

어느 위대한 왕이 왕국 이곳저곳에 여러 아들들을 보내 통치하게 했다. 모든 아들들이 만족해했지만 단 한 명, 막내이자 가장 야심 찬 아들이 불만에 가득 차 얼마 후 아버지에게 돌아왔다. 자신의 영토가 너무 작고 하인들도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왕은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에게 막대기 한 다발을 보내 인간으로 변신시켰다. 

"여기에 더 많은 하인들이 있도다!"

왕은 놀란 왕자에게 말했다. 그때부터 그 부족은 힘은 세지만 어리석은 것으로 유명해졌고, '막대기의 아들들' 또는 '오모 이기'라고 불리게 되었다!<중략>

이 책에 실려있는 이야기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투박하고 낯선 내용들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이야기들이 그만큼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투박하고 때로는 유치한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은 아프리카의 본질인 건강한 생명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아프리카 하우사와 요루바 민족의 전설과 민담 중에서 / 오정숙, 김기국, 홍명희 번역 / 아딘크라 출판>












옛날 옛날에 범이라는 아이가 살았어요. 마음이 착한 범이는 엄마를 위해 봄이면 토끼 사냥에 열을 올렸고 여름이면 하루종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어요. 가을이면 겨우내 쓸 땔감을 구하느라 깊은 산속을 제집 마당처럼 드나들었어요. 눈이 오면 일하다 돌아오는 엄마가 걱정되어 골목길을 쓸고 또 쓸었어요. 동네 사람 모두 범이를 칭찬하고 예뻐했어요.

하지만 딱 한 사람, 언덕 위에 대추나무집 찬이는 범이를 미워했어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범이가 싫었어요. 

어느 봄날, 찬이는 길 한복판에 구덩이를 파놓고 토끼사냥에서 돌아오는 범이를 기다렸어요. 옆동네 혼인 잔치에 갔다가 돌아오던 동네 어르신들이 그 구덩이에 빠져 모두 다리가 부러졌어요.

어느 여름에는 범이를 골려주려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던 찬이는 그물에 칭칭 감겨 죽을 뻔했을 뿐 아니라 마을사람들의 그물을 모두 못쓰게 만들어 아무도 물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범이가 주울 땔감을 미리 싹 다 주워오다가 땔감더미에 깔린 찬이는 코가 부러졌고 그때부터 별명이 코삐뚤이가 되었어요. 

한겨울이면 찬이는 짱돌을 넣은 눈동이를 잔뜩 만들었어요. 범이에게 던질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범이와 함께 길을 지나던 자기 동생을 맞춰 동생도 코삐뚤이가 되었어요.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찬이를 혼내주려고 마을을 지키는 장승 할아버지가 찬이 꿈속으로 들어갔어요. 장승 할아버지는 제 꿈속에서도 못된 일만 일삼는 찬이를 뾰족한 모자 끝으로 쿡쿡 찔렀어요. 왕방울만 한 눈을 부라리며 겁을 줬어요. 커다란 이빨을 딱딱거리며 야단도 쳤지만 찬이는 도무지 반성을 할 줄을 몰랐어요. 결국 장승할아버지는 찬이를 꿀꺽 삼켜버렸어요. 

꿈속에서 깜짝 놀란 찬이는 그만 이부자리에 오줌을 쌌어요. 마당에 널어놓은 찬이의 이부자리에서 나는 오줌 지린내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온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앞산에서 살던 호랑이도 오줌 지린내 때문에 코가 마비되어 되어 더 이상 멧돼지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자 화가 난 호랑이는 찬이를 찾아와...


밤마다 엄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와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언제나 착한 아이였다. 벌을 받는 아이들은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이었다. 늘 내 편을 들어주는 엄마의 품은 햇빛 냄새가 가득한 포근한 이불 같았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엄마 대신 내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제부터인가 범이는 친구들과 어느 커다란 성, 깊은 곳, 작은 방에서 함께 살았어요. 범이 옆에 누운 친구는 식이었어요. 식이는 돈이 없어서 부자 친구들 집에서 마음대로 돈을 갖고 나오다가 우리 방에 왔어요. 그 옆에 누운 친구는 민이에요. 잘생긴 녀석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대요. 어쩔 수 없이 그는 결혼을 열 번도 넘게 했대요. 그래서 이곳으로 왔어요. 문간에서 누운 아이는 헌이에요. 우리 중에 나이가 제일 어려요. 자기가 술을 제일 잘 마신다고 잘난 척해요. 아무도 믿지 않지만, 아무튼 술 먹고 운전하다가 고라니 가족을 치었대요. 고라니 가족이 무단횡단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억울하다고 해요. 화장실 앞에 있는 상이는 마음이 많이 아파서 마법 가루약을 매일매일 먹다가 여기 왔대요. 우리의 주인공 범이는, 매일 밤 옛날이야기로, 환상의 나라로 이끌었던 엄마를 아름다운 천국으로 직접, 조금 일찍 보내드렸어요. 

범이와 친구들은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는 지루한 밤에 돌아가면서 옛날이야기를 하기로 했어요. 덕분에 다른 친구들의 슬픈 사연과 그 친구들이랑 얼마나 더 같이 살아야 하는 지도 알게 됐어요. 우린 다투기도 하지만 대체로 서로 의지하며 옹기종기 살아요. 왜냐하면 우리 방의 대장은 바로 나, 범이니까요. 내가 제일 오래 이 성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죠.

우리가 사는 성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모든 창문과 문이 쇠창살로 둘러 있는 진짜 멋진 성이에요. 게다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성이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만나기란 쉽지 않아요. 우리와 꼭 만나고 싶다면 문지기에게 신청을 해야 해요. 그리고 쉿! 이건 비밀인데요, 우리를 만나려면 이름을 부르면 안 돼요. 반드시 숫자로 우리를 불러야 해요. 파란 옷, 가슴팍에 새겨진  '7102', '6228', '2421' 이렇게요. 너무 신비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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