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을 다듬어가며 만들어가는 철학
그냥 하는 일은 없다.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행하는지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시작하며 전하는 TMI
엉거주춤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한지 어언 2년, 배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고군분투한지는 약 4개월 여, 방랑자 마냥 여기저기 부유하며 배움을 좇던 와중에 약간의 숨돌릴 틈이 나 드디어 오랜만에 글을 적어본다.
사건의 시발점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 설렘에 벅차 적었던 라우드 소싱 작업 이후 이런 저런 작업을 혼자 해보면서 디자이너로서의 내실을 다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큰 이벤트는 현업 BX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이나 전체적인 업의 흐름을 알고싶어 막연하게 학원을 가본 것이다. 학원에 다니게 되면 어떤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되려 학원을 다닌 후에 더 배움에 목마르기 시작했다. 변태처럼 각종 에이전시와 현업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아카이빙하며 그들의 작업 이야기를 보고, 그들이 전개하는 그래픽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되었다. 이론은 이론대로, 시각화는 시각화대로 배우기에 바빴다. 아무튼 그런 흐름이 빠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연속적으로 맞이하고 느낀 것은 본인의 관점이 2주, 한달, 두달, 계속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바빴기에 작업 자체를 해내고 고도화하기에 바빴지 그 과정에서 발전하는 스스로의 관점은 그냥 ‘그땐 그랬지’라며 흐린 기억 속에 잔재로 남겨놨을 뿐이었다. 하지만 배움을 지속할수록 이 분야에 대한 스스로의 철학을 수립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판단되었고, 그런 이유로 성장일지라는 명분으로 나의 의식 흐름 progress를 담아보기로 결정했다.
이런거 쓰고 안쓰고, 뭐가 다를까
생각, 말, 일기, 그리고 남이 보게 되는 글까지, 표현되는 형태와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같은 메세지도 전개되는 형태가 다르다. 생각에 담긴 메세지는 정제되어있지 않고 형태도 굉장히 모호하다. 하지만 그 메세지가 타인에게 말로 표현되는 순간 우선 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돈하여 이야기해야 하고,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는 미션이 생긴다. 일기로 적어내릴 때는 서사가 생긴다. 가령 하루의 일과라는 단편적인 주제를 생각해보더라도 우리는 하루의 일과를 기본적인 서사구조로 전개한다. 굳이 일과가 아니고 겪은 상황에 대해 기록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일기는 철저히 혼자 보는 글임에도 메세지에 기승전결이 담기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이 보게 되는 글은 앞서 이야기한 요소들이 모두 담긴 것들이라 판단된다.
남이 보게 되는 글은 뭐가 담겼기에?
본인이 생각하기에 남이 보는 글에 갖춰져야하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들은 아래와 같이 네가지다.
1)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설명할 것
2) 메세지의 설득력을 갖출 것
3) 기승전결의 흐름을 가질 것
4) 정제된 형태로, 뚜렷하게 표현할 것
기본적으로 이해가 되는 문장이어야 하고, 글을 배포하는 행위 자체가 본인의 생각을 노출해 타인과 교류할 여지를 남기는 행위기에 혼자만 이해하고 동의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면 무의미해진다. 또한 기승전결의 흐름이 없다면 전체적인 맥락 파악이 어렵거니와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몰입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다. 마치 정리 안된 방에서 어수선하게 물건을 찾기 위해 뒤적이는 과정과도 같다. 마지막으로 남이 보는 글은 생각, 말, 일기에 비해 가장 정제된 형태의 아웃풋이다. 생각이나 말은 조금 두서없더라도 비언어적인 표현이 수반되기에 보완될 가능성이 있다. 일기는 혼자만 보면 되니까 오로지 혼자만의 생각 위주로만 적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남이 보는 글은 앞의 1), 2), 3)의 요소를 다 충족시키는 상태에서 주장하는 바를 가장 공식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타 아웃풋에 비해 논리는 더 뚜렷해야하고 전달 방식은 더 간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다듬어가며 완성하는 BX 철학
그것이 앞에 설명한 과정을 통해 완성하고 싶은 본인의 목표다. 철학을 만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겉멋이 아니라 이 업에 대한 본인의 애티튜드를 정리해가는 과정이다. 그 애티튜드는 각각 태스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자체로 모든 태스크의 근본적인 목적이 된다. 브랜드 경험이라는 것은 왜 필요한지, 브랜드 경험은 어떻게 전달 되어야 하는지 등의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대답해가는 과정을 거듭해 거기서 형성된 목적의식을 기반으로 작업에 대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의 철학을 지켜보며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마음을 먹는 것과는 또 다른 과정이다. 마치 핀터레스트를 보면서 오 이거 좀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끝나는 것과 내가 그런 작업물을 시도해보는 것이 너무 다른 차원인 것 처럼. 스스로의 설계도 굉장히 중요하다.
(혹시라도 이전 글을 읽은 사람들이 궁금할까봐)
+ 5월에도 비슷한 말을 한거 아닌가?
5월에도 히스토리 모음을 전개하겠다 이야기했다. 다만 그때 정의한 것과 지금의 히스토리 테마가 다르다. 5월에 전개하겠다고 이야기한 언급한 히스토리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진 않았지만 작업물에 대한 히스토리였다. 지금은 그것을 포함하겠지만, 주된 포커싱을 업에 대한 가치관이라던지 나의 BX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