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더엄공 Feb 21. 2022

부모의 코로나 확진으로 음성인 아이가 퇴원을 당했다.

나의 코로나 확진보다 무서운 것

  22개월 작은 아이가 밤마다 38도를 웃도는 고열에 시달리기를 사흘째, 결국 아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며칠 전 외래 진료 시에는 항생제도 처방받지 않을 정도의 초기 기관지염이었는데, 엑스레이 촬영 결과 초기 폐렴으로 즉각 입원 치료를 권유받았다. 입원을 위해 아이는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워킹맘인 나를 대신해 평일에 아이 곁을 지켜줄 친정엄마는 3차 접종 완료자로 신속항원검사가 면제되었다. 작년 추석 직후에도 파라인플루엔자로 인한 폐렴으로 입원을 했던 둘째 아이였다. 시아버지의 생신과 설 명절로 2주 연속 시댁에 다녀왔으니, 아이에게는 역시 조금 무리한 일정이었을까. 코로나가 우리 가정을 덮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니, 입원 전 의무적으로 실시한 검사에서 음성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아이가 아플 때 워킹맘은 죄인이다. 아이가 아픈 몸으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주삿바늘에 찔리고, 낯선 공간에 갇혀 지내는 동안 곁에 있어줄 수 없다. 아직 어려 모든 상황을 이해해줄 수 없는 아이에게 한 없이 미안하고, 아픈 손녀의 응석을 받아주느라 병원에 꼼짝없이 갇혀 밤낮으로 잠을 설치며 보호자 노릇을 해야 하는 친정엄마에게도 죄송하다. 하루빨리 주말이 오길 바랐다. 아이의 상태가 얼른 호전되어 퇴원을 하거나, 피치 못해 하루 이틀 입원이 연장되더라도 얼른 보호자 교대를 해야 했다. 아픈 내 아이 곁을 지켜주고 친정엄마를 쉬게 해드리고 싶었다.




  아이는 수요일에 입원을 했고, 금요일 오전 외래 진료  주치의는 아이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으니 토요일에는 퇴원해도 좋다는 소견을 보였다. 3 접종 완료자에게는 보호자의 코로나 신속항원검사가 면제되었지만, 2 접종 완료자인 내가 금요일 퇴근  보호자 교대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병원에서 실시하는 신속항원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룻밤만 지내면  퇴원이니, 친정엄마는 당신께서 하룻밤을  지내겠노라 하셨다. 나는 토요일 아침에 서둘러 병원으로  아이의 퇴원수속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퇴원 예정이던 아이는 금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 부터 갑작스러운 구토 증세를 보였고, 당초의 퇴원 계획은 취소하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나는 보호자 교대를 위해 옷가지와 세면도구, 작은   권을 가방에 쑤셔 넣고 서둘러 병원에 갔다.


  밤새 아이가 구토에 시달렸다니, 아이의 상태도 걱정이었고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성치 않은 몸으로 떼쓰는 아픈 아이를 업느라 고생한 엄마 생각에 진료도 개시하기 전인 이른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 입원 보호자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위해 외래 접수를 했다. 비용은 3만 원, 시간은 20분 소요. 그저 형식적인 검사일 텐데, 입원실에 곧장 올라가 아이를 만날 수 없고 검사실 앞에서 대기하는 20분이 아까웠다. 사실 나 역시 명절이 끝난 주말부터 몸살기와 38도를 훌쩍 웃도는 고열에 며칠을 시달렸다. 검사 당시에도 약간의 기침과 가래 증세가 남아 있었지만 그저 연이은 장거리 이동에 조금 피곤했거나 미세먼지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아픈 아이를 두고 내 몸을 세세히 돌볼 처지는 아니었기에 내 콧물이나 가래 따위로 그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검사실 앞 의자에 앉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가져온 책을 펼쳐 읽었다. 짤막한 에세이를 서너 편을 읽어갈 즈음, 열린 검사실 문틈으로 스윽 나를 엿보는 검사 담당자의 의아한 눈길이 느껴졌다. 1초? 2초? 짧은 눈 맞춤이었지만, 묘하게 싸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상한 기운을 떨치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자 간호사 두 명이 왔다 갔다 검사실을 드나들었다. 이윽고, 검사 담당자가 아닌 다른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내 앞에 마주 섰다.


"아공이 보호자분 되시죠? 엄공님 맞으세요?"

"네, 맞습니다. 이제 입원실로 가도 될까요?"

"보건소로 즉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양성으로 나오셨어요."

"네???? 양성이요????????????? 제가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결과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나는 뭣이 자랑이라고 간호사에게 큰 소리로 되물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곁에 있던 다른 환자들은 순식간에 내 곁에서 사라졌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작은 아이 병간호는, 불과 몇십 분 전까지 같이 먹고 자고 했던 큰 아이와 남편은, 어제까지 출근한 직장은, 며칠간 퇴근 후 작은아이 병실에 들렀는데 아픈 작은 아이와 엄마는 어떡하나.




  나는 병원이 보건소의 지침을 확인하는 동안 즉시 검사실 옆 수유실로 격리되었다. 입원 중인 아이는 동거가족이므로 아이와 친정엄마는 즉시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아픈 아이를 업고 검사실 앞으로 내려왔고, 나는 수유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이 앞에 설 수 없었다. 수유실 문에 붙은 불투명 시트지 틈새로 엿본 아이의 얼굴은 밤새 구토에 시달려 핼쑥했고, 보채는 아이를 업은 친정엄마는 며칠간 지속된 어린 손녀의 병간호에 지쳐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전해 온 딸의 코로나 양성 결과에 넋을 잃은 듯도 했다. 할머니에게 업혀 내려온 아이는 계속 울고불고 보채었고, 아이가 쓰고 온 마스크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이내 간호사는 내가 격리된 모유수유실로 찾아와 어정쩡하게 문을 열고 섰다. 신속항원검사 결과지를 지참하여 즉시 인근 보건소에 방문하여 PCR 검사를 받으라 하였다. 또한 아이와 친정엄마가 신속항원검사 재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올 경우, 즉각 퇴원조치임을 알렸다.


"선생님... 지금 제 아이가 바로 앞에서 많이 우는데, 엄마가 여기 있는 거 보면 저한테 오려고 할 거거든요... 제가 안 보이게 좀 가려주세요... 할머니랑 아이 중 한 명이라도 양성이 나오면 저희 엄마 혼자 아픈 아이를 데리고 즉각 퇴원하는 게 힘들거든요.. 잠시 후 제가 둘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함께 이동하면 안 될까요...?"


병원 측 대응은 단호했다.


"죄송하지만, 방역지침상 지금 이곳에서 즉시 나가주셔야 합니다."


인생 삼십 년 넘게 살면서 난생처음 당해보는 생경하고 억울한 처사였지만, 내가 전염병 환자라니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 그럼 혹시 여분이 있다면 우리 아이 마스크 하나만 바로 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가 혹시 양성일 지도 모르는데.. 지금 아이가 울어서 차고 있는 마스크가 다 젖었어요. 제가 가지고 온 게 없어서 마음은 직접 약국에 가서 사서 전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요.. 꼭 좀 부탁드려요..."


그것은 애원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자존심 센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이토록 애원한 적은 평생 단 한 번도 없었다.


"아.. 저희도 가지고 있는 게 없는데.... 한번 찾아볼게요. 그리고.. 아이랑 할머니 검사비용은 각각 3만 원입니다. 결제는 어떻게 할까요?"


  간호사에게 카드를 맡긴 뒤 울고불고 보채는 아이가 행여나 알아볼세라 얼굴을 숨기고 아이 앞을 지나쳤다. 학창 시절 내신이나 수능성적 1등급은 못되었어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신용등급만큼은 1등급을 유지해 온 나인데, 순간 빚쟁이가 된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내 몸에 있는 바이러스 때문에 바로 눈앞에 있는 아픈 내 아이를 안아서 달래어 주지 못한 채 허겁지겁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눈으로 본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부디 아이가 얼마간 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아이랑 엄마는 음성이기만을 바랐다.




  자차를 두고 왔으니 보건소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간호사는 보건소와 통화 후 택시를 타고 이동하라고 알려주었다. 추후에 찾아본 매뉴얼은 '방역 택시'를 이용하여 보건소에 가는 것이지만,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주였으니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알았는지 보건소에서는 일반 택시를 이용하여 신속히 검사를 받으라 하였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줄곧 가슴이 쿵쾅거렸다. 택시 기사님께 '제가 확진자인 듯한데요... 타도 되겠습니까?' 허락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염병 환자임을 숨기고 탄 것이 무척이나 불편하고 송구했다. 내가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친정엄마가 문자로 전해 온 작은 아이와 친정엄마의 신속항원검사 재검 결과는 둘 다 음성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아픈 아이가 병원에서 즉시 쫓겨나지 않고 더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그저 안심이었다. 이윽고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아이 검사 결과는 들으셨죠? 아이랑 접촉이 별로 없으셨나 봐요~ 혹시 다른 동거 가족도 검사받으시면 결과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외래랑 병원 오셨을 때 이동 동선에 대해 질문 좀 드리려고요."


  좁디좁은 택시 안 이었다. 숨쉬기조차 미안한 이 공간 안에서 이러쿵저러쿵 길게 대답해 줄 상황이 아니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듯했다.

  

"아.. 그런데 제가 지금 택시 안 이라서요... 좀 있다 연락드릴게요..."


  병원에서는 곧장 보건소로 가라고 일러주었지만, 나는 병원과 보건소 딱 중간 즈음에 위치한 집으로 갔다. 택시를 타고 곧장 보건소로 가면 2배로 오래 이 좁은 차 안에 머물러야 하고, 왕복으로 택시를 이용해야 하니 곧장 집으로 가서 자차로 이동하는 편이 훨씬 나아 보였다. 자차를 타고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외래 진료 때도 대기 환자가 거의 없는 시간 대였고, 병문안 시에도 다른 환자와 접촉은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다른 동거가족인 남편과 큰 아이는 우선 자가 키트로 검사한 결과 남편은 두줄, 아이는 한 줄이라 PCR 검사를 위해 따로 보건소로 이동 중이에요. 작은 아이는 음성이니 계속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거죠??"


"네 어머니, 음성이라 원장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그럼 키트 검사 결과는 우선 아버님도 양성이란 말씀이시네요. 나중에 PCR 결과 나오면 병원으로 좀 연락 주세요."




  회사에서도 여러 차례 전화가 오가고, 아이 기관과 학원에도 서둘러 연락했다. 먼저 보건소로 출발한 남편과도 보건소 상황에 대해 전화를 주고받았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보건소에 도착하니 검사 대기줄은 물론, 주차장에 진입하기 위한 주차 대기줄부터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친정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공아, 아공이 바로 짐 싸서 퇴원하란다."

"....... 아까는 음성이라고 있어도 된댔는데...."

"부모 둘 다 양성이라서 즉시 퇴원하라네."

"차도 없이 엄마 혼자 아픈 애 데리고 짐 싸서 어떻게 나가...."

"전화해보니 네 동생 지금 시간 된다니까, 데리러 오라고 했다."

"아까 많이 울던데, 아공이 상태는 어때??"

"좀 전에도 한번 토하고... 애가 전혀 못 먹어서 링거를 좀 맞히고 싶은데...

  일단 퇴원약을 좀 넉넉히 준다네..."

"어.... 엄마. 그러면 아까 카드는 간호사한테 맡겨 놨는데, 받았어?

 그 카드로 퇴원 수속 좀 해줘..."


  RS바이러스와 폐렴, 장염 치료를 위해 아동병원에서 실시한 입원 전 검사와 재검 모두 음성을 받은 둘째 아이는 그렇게 강제 퇴원을 당했다. 주변에 나나 우리 가족으로 인한 추가 확산만 없다면, 내가 코로나에 걸린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이미 수일째 지속된 고열과 폐렴 치료로 심신이 지친 아이가 뒤늦게 보인 장염 증세로 연신 노란 위액까지 쏟아내며 구토를 하고 먹기를 거부했다.




  다음 날 아침, PCR 결과 나와 남편, 큰 아이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셋은 재택치료 일반 군에 배정되어 7일간 격리 통지를 받게 되었다. 강제 퇴원을 당한 후 친정집에 머무르던 작은 아이는 다음날 실시한 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고,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다. 강제 퇴원 후 아이는 이틀간 구토를 지속했고, 먹은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는 아이가 그다음 날부터는 물 설사를 쏟아냈다. 12kg이던 아이의 몸무게는 고작 며칠만에 8kg대로 줄었다.


  자가격리 대상자인 아이의 입원까지는 안 되더라도 아이에게 수액치료를 해 줄 병원이 있을까 하여 119에 문의했다. 전화기를 든 내 자세는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정도로 애처롭고 긴박했지만, 저쪽에서는 이미 이런 전화는 질리도록 받았다느냥 퉁명스럽고 기계적인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직접 일일이 전화하셔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차라리 이 아이가 확진이 되면, 입원 치료가 가능한 건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인근 병원의 리스트만 문자로 덩그러니 날아왔고, 아직 잠복기일 가능성이 있는 어린아이의 치료를 자처하는 병원은 없었다. 또한 보건소에서 지정 해 주는 병원의 비대면 진료는 확진자만을 대상으로 하며, 음성인 자가격리자에게는 지원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코로나 신속항원검사 재검 중 아이의 얼굴에는 난생처음 기다란 상처가 생겼다. 홀쭉하게 야윈 아이의 몸과 얼굴을 사진으로 보고 있자니 애가 타다 못해 끊어질 지경이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내가 코로나에 걸려서가 아니라, 코로나에 걸린 나 때문에 아픈 내 아이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그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퇴원 다음 날 병원에서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지만, 토하는 채로 쫓겨난 아이의 상태 따위는 묻지 않았다. 오직 아이의 PCR 검사 실시 여부와 결과만을 물어올 뿐이었다. 그렇게 갓 22개월의 작디작은 내 아이는 엄마와 떨어진 채 근 10일간 외롭고 힘든 싸움을 견뎌냈다.


  수일 뒤 격리 해제를 위해 실시한 해제전 PCR 검사에서도 작은 아이와 친정엄마는 동일하게 음성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도 아이의 몸은 거의 회복되었지만, 난생처음 갑작스럽게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지낸 아이에게 자신이 그토록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 곁을 지켜주지 못한 아빠 엄마 언니에 대한 원망과 정신적 충격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어린것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던지, 이따금씩 도통 원인을 알 수 없는 생떼를 부리며 울고 불며 경기에 가까운 발악을 하거나, 지나치게 애교를 부리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인다.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이제는 내 품에 안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아 무기력하고 속상하다. 비록 같은 공간 안에서 아직도 마스크를 낀 채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지만, 내 마음을 어린아이에게 달리 전할 방법이 없어 그저 아이와 한번 더 눈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해본다. 으스러지게 꼭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으며 토닥토닥 다독여 준다.


"이제 괜찮아, 많이 무서웠지?, 엄마가 아파서 곁에 못 있어줬어,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단다.

정말 미안해, 이제 엄마가 곁에 있어줄게, 사랑해, 소중한 내 딸, 아프지 말자, 건강하자."




  평소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 특별히 애쓰는 내가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 아프지 않고 잘 자라기만 기도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만 급급하던 나였는데, 이제야 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사실 사고에 가까운 수준으로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코로나 확진이었지만,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내 아이들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았다.


  음성인데도 아픈 애를 매몰차게 쫓아낼 거면 도대체 비싼 돈 받고 검사는 왜 하느냐고 친정엄마는 화가 잔뜩 나셨다. 분이 삭지 않아 당장 병원에 전화해 따질 기세였다. 나더러는 당장 맘 카페에 올려서 여론몰이라도 하라셨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물론 나 또한 아픈 아이에게 그렇게 매정한 병원의 처사가 충분히 분하고 억울하다. 지금이야 '다시는 그 병원에 가나 봐라. 흥!' 하는 뾰족한 마음이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작년 추석 당일 작은 아이가 39도를 웃도는 고열에 시름시름 앓고 있던 때, 지역 내 문을 연 달빛 병원 소아과는 딱 한 군데뿐이었으며, 몰려든 환자에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아이의 진료를 보았던 어느 날의 경험을. 그날 아픈 아이를 들쳐 메고 황급히 달려왔으나 병원 진료가 조기 마감되어 망연자실하던 다른 부모들의 표정을.


  행여 이 다음에 아이가 또 아프고, 아이를 받아줄 병원이 마땅치 않을 때가 생긴다면, 그때의 나는 내 자존심 따위 기꺼이 지나가는 개에게 줄 수도 있을 테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아이 좀 치료해주세요' 사정하고 애원해야 하니, 이번에 당한 부당한 처사에 대해 소란을 피울 수는 없다. 불매는 하겠지만, 앞으로 그 병원을 기필코, 절대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장담은 못한다. 그래서 이 새벽, 이 글을 쓴다. 억울하고 속상해도 어디 마땅히 하소연할 곳은 없지만, 내가 당해보니 그렇더라고. 혹 이 글의 작은 파장이라도 있다면, 아픈데 병원에서 부당하게 쫓겨나는 확진자의 가족이 없기만을 바라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