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합격 후 연수원에 들어갔을 때,
그곳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뒤 훈련원에 들어가자
하루의 결이 달라졌다.
시험이 시작되면서 시간은 더 촘촘해졌고,
작은 흔들림에도 마음은 자연스레 경계했다.
훈련원은 미숙한 부분을 드러내고,
그 위에 새로운 모습을 쌓아가는 곳이었다.
감정은 절제되어야 했고,
표정은 항상 정돈되어 있어야 했으며,
누구에게든 먼저 친절을 건네야 했다.
딸 셋 중 막내였던 나는
큰 결정에서 한발 물러선 채 자라는 편이었다.
의지할 곳이 많았던 만큼
조금 느리고, 덜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늘 침착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익숙하지 않은 과제였다.
휴대폰은 맡기고 하루를 시작했다.
앉는 법, 서는 법, 말투, 시선까지
사소한 몸짓 하나에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했다.
밤마다 규정대로 매니큐어를 바르고 누웠다.
굳기 전에 잠들어
이불에는 늘 핑크색 자국이 남았다.
잔머리가 흐트러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덕지덕지 스프레이와 젤을 발랐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두피까지 성실했다.
화장은 규정대로, 최대한 단정하게 했다.
잠시 내 취향은 내려놓아야 했다.
아침마다 탔던 택시는 스스로를 살짝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하루의 긴장감이 머리 위를 스치고,
신호에 걸릴 때마다 머리와 얼굴을 다시 정돈하며
누군가에게 보일 모습을 챙겼다.
그날도 익숙한 문장을 반복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 무렵, 집에서는 일이 생겼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고 큰 수술을 받으셨다.
한 달 뒤, 퇴원을 앞두고서야 그 사실을 들었다.
가족들은 나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조심스레 숨기고 있었다.
말을 들은 순간, 감정이 밀려왔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서 웃고 있었을까.’
쪽잠으로 버티며 공부했지만
시험은 계속 미끄러졌다.
재시험은 내 이름 옆에 하나씩 쌓여 갔다.
변한 내 기색을 주변에서도 금세 알아챘다.
“요즘 왜 그래?”
교관님의 물음에
그때는 그저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만 답했다.
며칠 뒤, 다른 교관님이 조용히 물었다.
그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셔서… 집중을 잘 못했습니다.”
교관님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말했다.
“이 일은 그래.
힘들어도, 속상해도,
개인사를 드러내기 어려운 순간이 많아. “
훈련이 거의 끝날 무렵에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장이고 하루뿐이니까, 오지 말고 교육 잘 받아.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결국 가지 못했다.
회사 화환만 보냈다.
가야 할 자리였지만,
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승무원 사이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 불리는
훈련생의 3개월. 그 자체만으로도 버티기 버거웠다.
그 위에 개인적인 일들이 겹치니
마음이 허전해지고,
기댈 곳 하나 찾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지나고 보니 알게 된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을 하다 보면
예고 없이 마음을 뒤흔드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한다.
숨이 막힐 듯 버거운 날도,
기댈 곳 하나 없는 듯 외로운 순간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인생의 고비마다 반드시
시간이라는 여정이 함께한다.
그 길은 고통스럽고 더디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힘듦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변화와 성장 과정일 뿐이다.
잘 알려진 말처럼,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그 순간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그 하루를,
그 순간을 끝까지 건너온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단단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