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과 퀄리티, 그리고 상생
코로나19 시국이 장기화되면서 연극, 뮤지컬 공연계가 전에 없던 시도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이른바 ‘랜선 공연’이죠. 네이버TV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대형 플랫폼을 중심으로 다수 공연들의 온라인 생중계가 진행됐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순 이후에는 OTT 플랫폼을 통해 지난 공연을 VOD로 서비스하는 움직임도 커지는 중입니다. 극단, 제작사들이 과거 촬영해 둔 공연실황 영상을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하거나, ‘다시보기’ 용으로 공연 실황을 촬영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3월 중 모바일 앱 출시 예정인 레드컬튼이 추진하는 서비스이고, LG유플러스나 KT 등 IPTV 사업자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진행해 온 사업이기도 하죠.
하지만 중소 규모 공연 제작사와 극단에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는 낯선 영역입니다. 오프라인 무대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티켓 수익을 창출해 온 지금까지의 공연 생태계에, 난데없이 새로운 비즈니스가 열린 셈이니까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바로 이러한 실황영상 다시보기 서비스에 대해 제작자들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려 합니다.
창작물의 저작권은 당연히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의 경우 다양한 주체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만큼 저작권이 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죠. 극본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가, 음악은 작곡∙작사가가, 무대미술은 미술감독가에게 있어요. 배우와 연주자, 연출가의 경우는 저작인접권을 갖고 이를 보호받아야 하고요.
때문에 공연 실황 영상 공급은 사실상 그 작품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저작권, 저작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일종의 2차 저작물인 실황 영상은 모든 배우와 스태프의 동의 없이 공개될 수 없는 것이죠. 일회성과 현장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연 특성상, 누군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걸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으니까요.
많은 중소 제작사들은 레드컬튼에 묻습니다. “카메라 하나로 무대 전체를 찍은 영상 뿐인데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하겠냐”고요. 카메라 2~3대는 갖고 클로즈업도 하고 무빙도 하면서 좀 그럴듯한(?) 영상을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아카이빙 용으로 제작된 제작사들의 실황영상 대부분이 와이드 앵글 카메라 하나로 촬영된 게 현실이니까요.
그렇지만 단순히 화려한 컷과 카메라 워킹, 클로즈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연실황 영상은 영화와 달리 카메라의 역할을 최소화되어야 하죠. 무대 위 어느 부분에 집중할 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고, 카메라는 그저 관객이 혼란스럽지 않게 공연을 관조하는 역할에 치중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컬튼은 이용자가 주도적으로 실황 영상을 콘트롤하며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 중입니다. (자세한 건 비밀입니다. :-))
Full HD 급의 해상도와 포커스, 조명이 어느 정도 퀄리티가 된다면, 진짜 중요한 건 사운드입니다. 천장이 높은 공연장은 대부분 공간음이 심하고, 배우들의 대사도 동굴처럼 울리게 들리거든요. 단순히 마이크 한두 개를 셋팅해 배우들의 음성을 레코딩하면 스트리밍 시청 시 대사 전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가능하면 배우들에게 핀마이크를 착용시키는 등 하울링을 최소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공연에 목마른 코로나 시대의 관객들은 레드컬튼 같은 연극, 뮤지컬 OTT 플랫폼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단언컨대 레드컬튼이 출시된다고 해서 공연장에 발길을 끊지는 않을 겁니다. 직접 객석에 앉아 눈앞의 배우들을 보고 그들의 캐릭터를 만나는 경험은 다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공연실황 스트리밍은 오프라인 공연의 서브 역할을 할 뿐이고, 당연히 그래야만 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작사와 극단에게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오프라인에서 공연되는 작품의 정체성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역할을 해야 하죠. 짧은 기간 공연해 미처 볼 수 없었던 공연,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았던 소극장 공연들이 ‘레드컬튼’을 통해 잠재관객들과 만날 수도 있는 거예요. 넷플릭스 오리지날 영화나 시리즈들이 플랫폼의 힘을 등에 업고 유명세를 타는 것처럼, 레드컬튼이란 플랫폼을 통해 잊혀질 작품이 새 생명을 얻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제작사에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는 새로운 공연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자체의 수익을 넘어 마케팅 차원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