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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앱 Feb 19. 2021

사랑의 환희를 대하는 특별한 질문

[레드컬튼 개관작]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 리뷰


헌신은 배신당하고, 애정은 응답받지 못한다.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의 작품 세계가 그렇다. 대표작 ‘여자의 일생’(Une Vie, 1883)의 주인공 잔느는 남편이 두 번이나 바람을 피웠고, 끝내 내연녀의 배우자에게 살해당한 남편 몫까지 홀로 아들을 키웠다. 하나 남은 아들은 장성해 도시로 떠난 뒤에도 몇 번이나 손을 내밀어 잔느를 생활고에 빠뜨렸다.




응답받지 못한 일생 단 하나의 사랑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은 모파상의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여자의 일생’과 다르지 않게, 평생토록 지속된 지리멸렬한 여자의 사랑을 다룬다. 55년 간 지속된 여자의 해바라기 같은 마음은 죽음으로서 비로소 끝이 난다. 연극은 제3자의 입을 통해 회고되는 여자의 일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서사의 중심에 선 소녀는 가난한 부모와 함께 떠돌며 의자를 고쳐 생계를 이어가는 소녀다. 고작 열한 살인 소녀는 학교도 가지 못한 채 그저 부모를 도와 망가진 의자를 수거하는 게 일상이다. 가정의 보살핌도, 친구와의 우정도 남 얘기였던 소녀는 어느 날 반짝이는 소년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의자를 고쳐 번 돈을 건네면 환하게 웃어주는 그 소년은 소녀가 살아가는 의미가 된다. 그 후로 평생 동안.




일방적 사랑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파동


소녀가 숙녀가 되고 노인이 되기까지 펼쳐지는 스토리를 ‘짝사랑’이란 한 단어로 치환하기엔 부족하다. ‘의자 수리공’이란 부모의 정체성을 이어받는 소녀는 현재진행형인 가난의 대물림을 아프게 조명하고, “공부 안 하면 쟤처럼 된다”라며 소녀에게 선을 긋는 어른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소녀에게 소년과의 관계는 유일하게 ‘절실히 원하는 대상’인 동시에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대상이다.

너무나도 일방향적이고 단편적인 소녀와 소년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씁쓸한 내음을 풍긴다. 줄곧 소년은 대상으로만 존재하고, 소녀는 응답받지 못할 헌신을 이어가며 일생 전부를 ‘소녀’로 살아간다. 시골에서 도시로 터전을 옮기고, 사업을 확장하는 삶의 궤적은 오롯이 소년을 따라서만 진행된다.




탁월한 연출이 일궈낸 '주관의 객관화'


대사를 최소화하면서도 소녀의 감정을 아릿하게 담아낸 극단 물결의 연출은 탁월하다. 넓은 무대에 소품은 의자와 수레 등 큼직한 오브제들 뿐이고, 시시각각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생동감을 얻는 배경 연출도 인상적이다. 무용과 오페라 등 다양한 요소들은 그야말로 종합 퍼포먼스라고 할 만하다. 소녀의 모습에서 동화 ’성냥팔이 소녀’와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속 주인공이 나란히 겹쳐 보이는 이유다.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은 액자식 구성의 강점을 십분 발휘해 끊임없이 주관의 객관화를 시도한다. 극 중 화자인 의사가 소녀의 일생을 회고하고, 주변인들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이를 평가한다. 이런 질문과 토론들은 무대를 벗어나 관객에게까지 파고든다. 그리고는 결국 큼지막한 화두를 눈 앞에 던진다. 공연이 끝난 뒤 한동안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이 맴도는 이유다.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

출연배우: 김준삼, 김충근, 신서진, 전필재, 오주원, 박상현, 한은비, 한주연, 박상하, 진여준, 진영 외
제작: 극단 물결
작/연출: 송현옥
공연일시: 2020년 3월 12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관람등급: 12세이상 관람가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는 연극・뮤지컬 공연실황 OTT 플랫폼 '레드컬튼' 개관작입니다. 서비스 론칭 이후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레드컬튼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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