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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ka Mar 04. 2024

그리스에서 뭘 먹지? (흐타포디 크시다토)

[그리스 일상] 나의 그리스식 시골 밥상 6




그리스 섬들의 바닷물은 맑고 영롱하다. 특히 여름에는, 깨끗한 물에 엷은 하늘빛 에메랄드 색상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투명한 컬러감에 반짝거리며 속도 훤히 들여 보여준다. 수면 위에서 물속을 들여다보면 수 미터 아래의 바닥이 선명히 보이고, 수면과 바닥 사이 공간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떼들의 모습은 한가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보트와 함께 하늘색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다. 지평선 위로는 물고기 대신 새하얀 구름 뭉치들이 느릿느릿 헤엄쳐 다니는 듯하다. 지중해의 바닷물은 이처럼 숨김이 없고 파도도 쉬어가는 듯 늘 고요와 평온유지한다. 하늘과 지평선은 한 몸인 듯 닮아있다. 바다 위에서 느끼는 고요함과 평온함은 육지에서의 평온함보다 더 온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맑고 투명한 바다 풍경이 사실은 바닷물 속의 해양 생태계에 공급해 줄 만한 영양소가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중해는 지리적으로 육지에 갇혀 있는 형태이다 보니 외부와 물의 교환 및 순환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 영양소 공급이 미미하다. 이로 인해 식물성 플랑크톤 같은 조류(藻類)와 미생물 세계에는 궁핍한 환경이 조성되어 먹이 사슬의 상의 모든 생물에게도 번성할 곳이 못된다. 물 안에 유기체나 생물체가 번성하지 않으니 숨김없이 투명하고, 파도와 해류가 약하니 고요하고 평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서해와 같이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열려 있는 주변 지형과 물의 교환이 활발하며, 넘실대는 파도와 활발한 해류가 곳곳으로부터 쓸어온 토사와 여러 다양한 성분이 칵테일을 이루는 곳이야말로 해양 생물계에는 배부른 천국이다. 우리가 보기엔 탁하고, 어둡고, 나를 삼킬 듯 무시무시해 보이는 곳이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생태계가 또 다른 세상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삼면이 '영양이 풍부한' 바다로 둘러싸인 국가답게 우리 민족의 식생활은 해산물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메인 메뉴로 담백한 삼치구이, 매콤한 고등어조림, 칼칼한 해물찌개 또는 쫀득하면서도 입에서 사르르 녹는 회도 좋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된장찌개는 멸치를 우린 육수로 끓여야 제맛이고, 김치는 생선을 절여 만든 젓갈이 감칠맛을 더해준다. 뜨거운 쌀밥에 싸 먹는 바삭하고 고소한 김은 말이 필요 없다. 우리나라 바다 생태계의 복잡성만큼이나 한국의 해산물은 복잡 다단한 맛과 다채로운 식감으로 입안을 가득 채워준다. 그 맛 안에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이 요동치는 것만 같다.




맑고 투명한 지중해 바닷가 지역에서도 물론 해물과 생선을 많이 먹는다. 특히 유럽 대륙과 비교하면 지중해 지역은 해산물 요리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바다처럼 해양 생물이 풍부하지 않다 보니 서식하는 바다 생물의 종류는 제한적이고, 식탁에 오르는 해조류는 찾아볼 수 없다. 보통은 오징어, 문어, 새우, 홍합, 정어리, 황새치, 대구, 앤쵸비 정도이고, 그릴 요리나 튀김 요리가 대부분이다. 가끔씩 '땡길 때' 먹는 요리이지, 굳이 해산물이 없어도 그리스식 밥상을 차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개인적으로 그리스에서 가장 자주 먹었던 바다 요리는 생선구이, 오징어튀김, 모둠 해산물 그릴 플래터, 생선 살이 들어간 수프 그리고 새우나 문어가 들어간 파스타 정도이다. 시댁 집밥으로도 가끔 생선이 올라왔는데, 숯불을 피워 생선 그릴을 하거나 감자와 양파가 들어간 화이트소스의 생선 조림을 먹었다. 밀가루를 입혀 올리브기름에 통째로 튀겨낸 정어리도 겉 바삭 속 짭짤 별미이다. 


모든 요리에는 신선한 레몬을 짜서 뿌리고, 그릭 샐러드와 페타 치즈를 곁들여 먹는다. 시원하고 크리스피한 화이트 와인을 입에 머금으면 한결 더 맛깔난다. 대부분 그리스 요리가 그렇듯, 해산물과 생선요리에도 크게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그리스에서의 해산물 요리는 맑고 투명한 지중해의 바닷물처럼 신선하고 깨끗하며, 고요하고 잔잔한 지중해의 수면처럼 단조롭고 심플하다. 





한국보다 지중해에서 조금 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해산물로는 문어가 있다. 내 짝꿍은 어릴 적에 해변에서 노는 동안 아버님이 바닷가에 들어가 맨손으로 문어를 '때려' 잡아 오곤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스 섬들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식당에서 신선하고 튼실한 문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요리는 '식초에 재운 문어' Χταπόδι Ξυδάτο (Htapodi Ksydato ; 흐타포디 크시다토)이다. '흐타포디 크시다토'는 문어를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아 먹기 좋게 자르고 식초, 오레가노, 올리브 오일을 뿌려 재워서 먹는 요리이다. 그릴로 구운 문어 요리도 맛있지만 식초와 올리브유에 재워진 보드라운 문어살은 입에서 살살 녹으며 상큼한 끝맛으로 미각을 애무하여 준다. 그리스 전통주 Ouzo(우조)와도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는 안주 요리이기도 하다. 


기분 좋은 게으름에 늘어지는 햇볕 가득한 오후, 지중해 바닷가 앞에 앉아 그리스식 문어 요리, 얼음 넣은 Ouzo(우조) 한 잔, 그리고 Nana Mouskouri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이면, 나는 그 순간, 인생에서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진다. 이런게 아마도 천국이겠지. 


흐타포디 크시다토(Htapodi Ksydato) 한 접시 & 얼음을 넣어 뿌연해진 우조 ( Ouzo)






2023.11. Dae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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