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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사짓는 뚱여사 Jan 05. 2023

당신은 나의 천사였나 봅니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의 일이다. 평소처럼 마당에서 신랑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부르르릉!!!!!

물건들이 널브러져 정신없는 우리 마당에 하얀 화물차한대가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 거래를 하던 이웃마을 농약사 사장님이 차에서 내리셨다.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무슨 일이실까? 얼마 전 정산을 해드렸는데, 계산이 잘못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님, 다른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오신 것일까?'

순식간에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상상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요란한 화물차문 닫는 소리와 함께 내리신 사장님의 주름진 손에는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제가 며칠 서울에 다녀와서 이제야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아이고~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물건들 다 정리하고 남은 거 몇 개 챙겨 왔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의 손에 든 비닐봉지에는 농사 지을 때 사용하는 칼슘제, 영양제... 그런 것들이 들어있었다.

농약사 사장님은 평생운영해오시던 농약사를 지난달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셨다.

우리는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사장님이 운영하시던 '풍년농약사'만 거래를 하고 살아왔다.


사장님이 다녀가신 뒤, 허전함과 쓸쓸함으로는 표현이 부족한 그런 감정이 올라왔다.

얼마 전 일인 것처럼 선명한 기억들이 이십여 년 전의 어느 날인 것처럼 느껴졌다.

도시에서 사업을 실패하고 신랑의 고향인 진도로 내려왔던 그때 우리 부부의 하루하루는 지옥 같은 시간들이었다.

매일매일 갚아야 할 빚에 쫓기며 새벽부터 캄캄한 밤까지 일을 했지만 버는 돈보다 갚아야 할 빚의 크기만 점점 늘어가던 그런 때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가 너무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있어 포기하지 않고 겨우 버티며 살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신랑이 선택한 새로운 일은 농업이었다. 갑자기 농부가 된 초보농사꾼은 이런저런 이유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동네사람들의 논과 밭들을 임대하며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던 우리는 농사를 짓는 것이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몰랐다. 씨앗을 사야 하고 땅에 뿌릴 퇴비와 비료들 모종을 키우려면 하우스가 있어야 하고 냇가의 물을 밭으로 끌어올려줄 모터와 농수관, 모종을 키울 포트와 상토, 비닐, 병해충약들, 영양제,..... 끝이 없는 투자의 연속이었다.

씨앗을 뿌려 작물을 키우는 몇 달을 지나서 수확해 팔기 전까지 들어오는 수입이 하나도 없이 견뎌야 하는 잔인한 직업이 바로 농부였다.


초보 농사꾼이 농사일을 하는 것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작물을 심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고추밭만 해도 심기 전에 밭에 들어간 퇴비, 거름, 방제약, 비닐은 둘째치고 심은지 며칠뒤부터 웃거름을 시작으로 진딧물약, 벌레약, 탄저병, 역병, 칼슘제.... 이런 약들은 수확 전까지 꾸준히 뿌려주어야 하고 관수시설로 물도 주어야 하고... 몸을 움직여해 주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 비료도 농약도 영양제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암담하고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진딧물이 번져 끈적해진 고춧잎을 보다 못해 무턱대고 이웃마을 농약사에 들어갔다.

"고추밭에 진딧물이 많아서요.... "

투박하고 거 친목소리의 할아버지 같은 사장님은 돋보기안경을 쓰면서 여유롭게 진딧물약을 찾으며 물으셨다.

"고추를 얼마나 심으셨소?"

"한 이천평정도 심었는데요."

"워따! 많이도 심었네~ 모종만 해도 돈이 겁나게 들었겠구먼, 진딧물 하고 벌가지약이랑 탄저병예방약이랑 다 챙겨줄라니까 저녁나절에 하세요."

"아, 제가 돈이 없어서 진딧물약만 하면 안 될까요?"

"약은 할 때 같이 해야 효과가 있지! 돈은 걱정 말고 나중에 고추 팔아서 연말에 줘도 되니까! 일주일 있다가 고추밭약 또 사러 오쇼. 약은 일주일마다 꾸준히 해줘야 돼요!"

이렇게 얼떨결에 내 손에는 농약이 가득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고 농약사에 난생처음 외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해가 넘어가기 전 1년 동안 쌓인 외상값을 갚아야 하지만, 초보농사꾼들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올해 농사를 잘 못 지어서 내년에 함께 계산하면 안 될까요?"

"그라시오!  내년 농사 잘 지어서 갚으면 되제! 평생농사지은 사람도 폭삭망할 때도 있는데, 안 하던 농사를 하는데, 당연히 잘 안될 수도 있지! 우리는 걱정 안 해도 돼요!"

사장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며 내년에는 농사가 더 잘될 거라는 희망의 말씀도 해주셨다.

그 뒤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농약사를 드나들었다.

"고추에 이런 것이 생겼는데, 뭔가요?"

"비가 온 뒤에는 무슨 병이 생기나요?"

"땅속에서 벌레가 언제까지 살 수 있나요?"

단순한 궁금증부터 심오하고 철학적인 궁금증까지 사장님께 의지했고, 사장님은 언제나 진지하게 해답을 알려주셨고, 새로 나온 영양제나 토양살충제가 있으면 먼저 써보라며 차에 실어주시곤 하셨다.

우리의 처지를 다 알고 계시다는 듯, 아이들 키우는 것이 돈이 많이 들 거라며 종친회에서 운영하는 장학재단에 장학생으로 우리 아이들 이름을 올려주셨고 농약사 아저씨가 만나는 사람마다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이라며 대견함을 칭찬하셨다는 말을 돌려서 듣게 되곤 했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동안 농약사 문이 닫혀있던 때가 있었다. 함께 농약사를 운영하시던 사모님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사모님은 요양병원에 계시고 사장님 혼자 농약사를 운영하시게 되었는데, 배달을 하실 때는 옆집이나 앞집 페인트가게나 철물집 사장님들이 대신 가게를 봐주시기도 하시며 힘겹게 농약사를 운영하셨더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장님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지시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충성스러운 단골이 되어드리는 것뿐인듯했다.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사장님이 청력이 좋지 않으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말소리를 못 알아들으시기도 하고 엉뚱한 말을 하시는 것이 아니신가,

나이를 드시니 청력이 안 좋아 지시나 싶었는데,

작년부터는 농약사 문 앞에 메모지와 볼펜을 놔두고 손님들이 필요한 것을 적어 보여드려야 약처방을 해주시는 상황까지 되다 보니 이제 더 이상 농약사운영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신 것 같다.


지난 명절 농사지은 참깨로 참기름을 짜서 소주병에 담아 농약사로 갔었다. 참기름 한 병에 감사인사를 꾹꾹 눌러 담아 농약사문을 당겼지만, 문이 잠겨있어서 문 앞에 두고 돌아왔는데, 어찌 아셨는지 며칠뒤 포도 한 상자를 우리 집에 놓고 가셨다. 큼지막한 포도알이 입안 가득 진한포도내음과 함께 달콤하고 끈적한 정을 입가로 주르륵 흘러내리게 하는 거봉이었다.


사장님을 처음 만났던 이십여 년 전 그날,

고단한 생활에 찌들어 초췌하고 희망이 없던 내 눈빛을 사장님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셨을까?

사장님이 남겨두고 가신 비닐봉지를 들여다보며 어느새 나는 그날의 내가 되어 그곳에 서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듯이, 내 불행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하게 다독여주던 그 비닐봉지가 그날인 것처럼 내 손에 들려있었다.

그날 사장님이 내 손에 들려주신 그 농약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농사를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았을지 모르겠다.


그 비닐봉지는 어쩌면 내가 삶을 놓지 않고 잡을 수 있는 동아줄이 되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마당을 돌아나가는 사장님의 요란한 화물차소리뒤에 소심한 감사인사를 함께 보내본다.


"사장님,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어쩌면 당신은 나를 살리러 오신 천사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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