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1979년 첫 판이 나온 후 6권 전체가 나오기까지 10년간 판매금지와 영업정지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책은 1979년 10월 한길사에 의하여 처음 출간되었다. 서슬이 퍼런 ‘유신’ 정권과 5공화국 하에서 이 책이 출간된 것은 놀랍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는 헌법 위에 군림하는 ‘긴급조치 9호’에 따라 책을 검열하고 금서를 지정했다. 책 출간 후 얼마 안 된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었고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979년 10월 28일 계엄사는『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회수명령을 내렸고, 이튿날 압수해 갔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정보과 형사들이 출판사를 감시했다. 그들은 출간될 책들을 파악하고 작가들의 동향까지 감시했다.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막스 베버의 책이 금서가 되기도 했다.
1979년 말 출간된『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제5공화국 독재체제 하에서 금서목록에 올랐다.『해방 전후사의 인식』에는 친일파의 실태가 담겨있다. 당시 보안사 관계자가 ‘친일 좀 한 게 뭐가 문제라고 이런 글을 싣느냐?’ 협박하며 책을 압수했다고 한다. 1945년 해방되고 35년이 지난 1980년에도 여전히 친일이 ‘금기’의 대상이었고 친일파를 다루면 금서가 될 수 있었다. 직후 판매금지 조치를 당한 후에 일부를 삭제한 뒤 1980년 군사정권의 검열을 통과했다. 결국 1989년에야 4~6권이 나오면서 완간되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출판자유화 조치’로 일부 북한 서적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서들이 해금되었다. 그러나 1994년 부산지검이 서점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등을 압수했다. 당시에도 대법원에서 이적표현물로 분류하고 있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을 하던 10년이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다시 15년이 지난 2004년 한길사에 의해 재출간 됐다. 2004년에 김언호 한길사 사장은 압수당했던 책의 반환을 요청하는 문서를 정부에 냈다. 2008년 이명박 정권 당시에도 금서가 있었다. 당시 군부가 22권을 금서를 지정하여 군내에 반입을 금지시켰다. 여기에는 장하준의『나쁜 사마리아인들』같이 시중에 나온 서적도 있었다. 출판에 대한 검열과 금서의 지정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 신앙에 반하는 책이 대부분 금서가 되었다.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에는 근대적 인본주의를 쓴 책, 심지어는 칸트의 책도 금서가 되기도 했다. 검열과 금서는 한 국가와 사회가 열린사회인지를 보여준다. 검열과 금서가 있다는 것은 부당한 종교집단과 정치권력 그리고 전체주의가 인간을 누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열린사회’를 주창한 칼 포퍼(Karl R. Popper, 1902~1994)는 1943년 자신의 저서『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한국어판 ‘열린사회와 그 적들’) 서문에서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같이 위대한 사상가들을 비판하였다. 자신들의 생각이나 신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기도취에 빠지는 것은 사이비과학이라는 비판이다. 종교적 근본주의, 배타적 국수주의, 이데올로기에 열광하는 것에 대한 공격이다. 그가 말한 열린사회인가 닫힌사회인가는 비판이 수용되느냐 그리고 변화가 허용되느냐에 의하여 정해진다. 인간 문명이 쇠퇴할 때 새로운 문명으로 태어났던 것은 합리적 비판이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근현대에 들어 종교혁명, 과학혁명, 시민혁명 등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종교가 재창조되고, 민주주의, 과학발전을 꽃 피우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열린사회와 비판적 합리주의가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데올로기 논쟁이다.『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관련된 논쟁은 프랑스의 두 지식인간 논쟁과 연결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우파지식인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1905~1983)과 우리에게 잘려진 좌파지식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레이몽 아롱은 북한의 남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사건이라며 북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반면 장 폴 사르트르는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다는 프랑스 공산당의 주장을 그대로 복사하여 지지했다. 북한이 남침했다는 사실이 구소련 비밀문서로 확인된 뒤에는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진보지식인이 수구적 보수 세력의 아전인수식 억지주장을 편 것이다. 이러한 논쟁을 배경으로 레이몽 아롱이 1955년에 출간한『지식인의 아편』이란 책이 1986년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레이몽 아롱은 “정치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좀 더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선택일 뿐이다. 정치와 이념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보수나 진보나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오류라는 것이다. 열린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어느 진영이던 또 다른 전체주의일 뿐이다. 진보이던 보수이던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고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근본주의 종교와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