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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May 06. 2022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난 스물네 살이었는데

우리가 벌써 서른이라고?




우리  여기 있는 거야? 우린 서른 살이라고.”


“Why we are here? We are 30 years old”




세상에, 벌써?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  24살이었고 너는 23살이었는데.



벌써 우리가 서른이라고?




아론이 한국에 왔다. 저 멀리 스페인의 작은 마을 카스떼욘에서 평생을 살던 아론이, 둥지를 벗어나 낯선 하늘 아래 뚝하고 떨어졌다.

나는 그를 6년 전에 스페인에서 처음 만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해안가를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까스떼욘이라는 작고 못생긴 마을이 있는데 나는 그곳에서 교환학생 학기를 보냈다. 까스떼욘은 못생긴 데다 특별한 것 하나 없는, 당신이 1년 동안 스페인 전국 여행을 한다 해도 절대 갈 이유가 없는, 그런 작고 별 볼일 없는 동네다. 그러나 나는 그곳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내가 다니는 대학이 손 잡은 스페인 대학교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 실력은 부족하고 스페인어 실력은 아예 제로였던 나는, 과연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친구를 만들 수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교환학생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친구들은 단연 유럽, 미국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남미에서 온 친구들이 특유의 그 유쾌함으로 자연스럽게 그들과 스며들고 있을 때, 아시안 친구들은 파티나 모임에 도통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어딜 가도 아시안은 나와 내 친구밖에 없었고 우리는 늘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눈을 여기저기로 굴리기 바빴다.



나름 준인싸(?)로 평생을 살아온 나는 모임에서 소수가 되는 게 꽤 당황스러웠다. 남은 4개월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하우스 파티도 하고 여행도 가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저들이 서로를 잘 알지 못할 때 나도 어서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학기가 시작하고 첫 번째 파티가 열리던 날, 나는 5명의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 갔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친구.

친구 만들기.

  명이라도!



파티는 왈라비라는 술집에서 열렸다. 클럽이라 하기에는 너무 투박하고, 펍이라 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뜨거운 이 동네 술집은 매주 수요일이면 교환학생들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교환학생임을 인증하는 카드만 있으면 돈을 내지 않아도 입장할 수 있었고, 작은 병맥주 5개를 단 3유로에 살 수 있었다.



파티를 찾은 학생들의 피부색과 머리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설렘과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만은 같았다. 모두 맥주가 가득 담긴 버켓을 하나  끼고 적당히 어깨를 들썩이며 같은 질문을 주고받았다.



“반가워! 넌 어느 나라에서 왔어?”

“넌 뭘 공부하니? 스페인은 처음이야?”

“이름이 뭐야?”



뭐 대충 이 세 가지 질문만 하고 나면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된다. 다음에 길에서 마주쳤을 때 둘 중 하나라도 상대를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우리는 아는 사이로 쭉 지내게 될 것이다. 클럽 안의 거의 모든 사람과 똑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웬만해서는 기억하지 못할 이름들을 수집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저들끼리 신나서 춤을 추는 무리가 보였다.



꽤나 본격적인 움직임에 클럽 안의 교환학생들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들을 흘끔 쳐다봤다. 그 무리의 사람들은 다른 교환학생들의 이름이나 국적 같은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 눈치였다. 마치 클럽 안에는 저들만 있는 것처럼 춤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로부터 2미터가량 떨어져서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지켜보고만 있었다. 3유로에 산 다섯 병의 맥주를 하나씩 비워가며 내가 충분히 취할 때까지 기다렸다. 술기운이 올라오면 어떻게든 다가가 볼 생각이었다.



네 번째 맥주를 털어내고 마지막 맥주를 땄을 때 나는 그들에게 가 보기로 했다. 그들은 마침 터팅이라는 손가락 춤을 추며 놀고 있었고 나는 이 기회를 틈타 그들 앞으로 불쑥 다가가 3개월 전 유튜브 동영상으로 혼자 배운 10초짜리 터팅을 뻔뻔하게 춰 보였다. 나의 서툰 움직임은 ‘나도 춤 좋아하고 너네랑 놀고 싶다 ‘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뜬금없이 터팅을 시전 하는 나를 보고 머리를 쥐 뜯으며 소리를 질렀다.




WHATTTTTT??????

너 뭐야!!!!!

다시 해 봐! 다시!


애석하게도 내 춤은 딱 10초 짜리였기 때문에 나는 그 이상 보여줄 게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흥미를 끌기에 10초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고 밤새 함께 춤을 췄다. 그중에 가장 키가 큰 아이가 나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우리가 매일 춤을 추는 곳이 있어. 너 내일 우리 춤추는 거 보러 올래?”


나는 바로 옛쓰! 를 외쳤고 다음 날 그 아이가 준 주소를 찾아갔다. 구글맵의 안내를 따라 걷다 보니 내가 다다른 곳은 길거리 한 복판이었고 그곳에는 길바닥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는 무리가 있었다. 어제 파티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내가 쭈뼛쭈뼛 다가가자 내게 전화번호를 물은 남자애가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이게 바로 내가 아론을 만나게 된 날의 기억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일주일에 최소  번은 파티에 함께 갔다. 어떤 때는  4일을 뛰기도 했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오픈 시간에 입장해 클럽에 전세   놀다가 사람이 슬슬 많아지기 시작하면 동그랗게 모여 원을 만들었다. 돌아가며 들어가 춤을   있게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상 원을 만들기도 어려울 만큼 클럽이  차면 그제야 밖으로 나가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알게 된 댄서 친구들은 스페인에서 지내는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성별도, 인종도, 언어도 다른 나에게 마음을 열고 진짜 친구가 되어주었다. 1년 동안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 날이 좋으면 함께 바닷가로 소풍을 가기도 했다. 내가 스페인을 떠나오던 날에는 부둥켜 엉엉 울기도 했다. 그 모든 꿈같은 시간이 시작된 것은 첫 번째 파티에서 우연히 시작된 아론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아론이 지금 한국에 와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낼 아론에게는 어떤 인연이 다가올까. 이 친구의 한국 생활을 다채롭게 해 줄 이는, 과연 누구일까?





아론에게도 아론 같은 친구가 뿅 하고 나타났으면 한다. 그 친구를 통해 한국을 경험하고 이곳에 푹 젖어들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그 역할을 하겠지만,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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