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의 세계란 끝이 없는 것
2020. 03. 25 수
지난 일요일 오후 산책하는 길에 보물섬4를 발견했다. 올해 들어서는 첫 번째 보물섬 발견인데 아파트 단지 가장자리에 있는 13동이다. 산수유가 은은하고 어룽어룽한 노랑 문이었다면 어떤 색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를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다정함이 느껴지는, 작고 아담한 문이었다.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조심스러워 안까지 들어가 보진 않기로.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웠다. 가꾸시는 분의 정성이 느껴져 '어떤 분일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는데. 오늘! 우연히 그분을 만났다!
작년 여름부터 아파트 현관 화단을 구경하다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4명이다. 첫 번째는 그 동에 살고 계신 할머니. 할머니는 "예쁘지?! 여기 돌보는 이가 있어. 우리 동에 같이 살어." 꽃구경을 하고 있는 내게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건네주신 분이다. 두 번째는 청소 아주머니. "아유. 꽃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그죠?!" 잠시 나란히 서서 같이 꽃구경을 했다. 세 번째는 "거기 뭐가 있어요?!" 물어보시던 18동 주민분. 백목련 나뭇잎이라고 하기엔 모양은 같은데 너무나 커서 기웃기웃하고 있었는데 "어머! 진짜 사람 얼굴보다 큰데요? 매일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못 봤네.", "아! 여기 나뭇가지가 이어져 있네요! 잎이 커서 그렇지 같은 나무 맞나 봐요. 신기하네." 궁금증을 해소해주셨다. 네 번째는 "옴마~ 꽃이 언제 이렇게 폈대?!” 지나가던 이웃 주민분.
오늘 만난 다섯 번째 그분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는 것. (평소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왠지 저분 같은데. 어쩌지...' 분명 망설이고 있었는데) 호다닥 달려가서는 "저기... 혹시 여기 가꾸시나요?!" 여쭤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해서 취미로 해요." 다정하게 말씀해주셨다. 덕분에 처음 본 보랏빛 꽃이 '현호색'이라는 것도 지금은 나뭇가지만 덜렁 있어 허전해 보이지만 꽃이 피면 정말 예쁘다는 '병꽃'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현호색은 보물주머니, 병꽃은 전설이라는 꽃말을 가졌더라.
보물섬4에 보물주머니.
보물섬을 가꾸고 계신 전설 할머니.
병꽃은 내 생일인 5월에 핀다고 한다. 잘 기억하고 있어야지. 요즘은 진달래와 수선화가 예쁘다.
2021. 04. 22 목
그렇게 1년이 흐르고 보물섬4의 사월. 요즘은 하얀 옥매가 예쁘고 모란이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모란은 이름만 익숙했지 가까이서 실제로 본 건 작년이 처음이라 궁금해서 이것저것 검색해보고 알아보았었다. 그러다가 모란도 4폭 병풍을 보았는데 모란은 예부터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었다고. 그래서 궁중에서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가례와 흉례에 썼다고 한다.
커다란 꽃봉오리만큼이나 왠지 서두르지 않고 한 장 한 장 천천히 피워낼 것 같은 모란을 보면서 마음 한 켠 작은, 미니 모란도를 걸었다. 안팎으로 평안함을 기원하면서. 그리고 모란 아래로는 송이송이 탐스럽게 핀 하얀 옥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