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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음 May 05. 2021

내 생일 오월에는 병꽃나무

생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해마다 하나씩 늘어가는 생일초가 부담스러워지는 것과는 별개로  생일 5월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여태껏 모르고 지낸, 이름도 생소한 ‘병꽃 피기 때문이다.  


 2020. 05. 04


 지난 3월 보물섬4(13동)를 가꾸고 계신 전설 할머니께서 꽃이 피면 정말 예쁘다고 알려주셨던 병꽃나무. 그래서 5월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예쁜 병꽃을 놓치지 않고 보는 게 근사한 생일 선물이 될 것 같아서. 5월이 가까워오면서 혹시 피었으려나 몇 차례 13동 화단을 기웃거렸지만 잎만 무성해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허탕은 아니었으니 자주 들른 덕분에 지는 모란과 옥매에게는 꽃피우느라 수고했다고 배웅을, 무늬 둥굴레에게는 반갑다고 맞이를, 새로 본 꽃은 이름을 찾아 다음번엔 서운치 않게 불러줘야겠다고 ‘왜철쭉이구나.’ ‘왜철쭉!’ 기억에 새겨볼 수 있었다. 오늘도 생각이 나 출근하는 길에 들러보았는데 병꽃이, 피고 있었다!

 병꽃나무는 연한 노란색 꽃이 피다 붉게 변하는 ‘병꽃나무’와 처음부터 붉게 피는 ‘붉은병꽃나무’ 두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자줏빛인 걸 보니 ‘붉은병꽃나무’인가 보다. 사진으로 다시 보니 잎의 가장자리도 꽃색처럼 붉은빛이 도는 게 신기하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팬텀싱어 3>를 보았는데 쿠바 음악 <Tu eres la musica que tengo que cantar; 넌 내가 노래해야 하는 음악이야>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얻기 힘든 리듬과 / 수정할 필요가 없는 색조와 / 제일 자연스러운 예술의 아름다움 / 넌 내가 노래해야 하는 음악이야’ 노래 가사를 일기장에 옮겨 적었는데 문득 이 노래, 세상 모든 식물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2021. 05. 05 

 모처럼만에 볕이 좋았던 하루.

 세션 마치고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 파이를 사러 갔다가 할머니 진료가 있다거나 엄마 검사를 기다릴 때 들르곤 했던 병원 1층 야외정원을 잠깐 걸었다. 환한 꽃송이들이 눈에 가득 담겼다. 싱그러운 초록을 따라 여유롭게 걷다가 “어어!” “헤에~ 와~” 하고 멈춘 건 병꽃 무더기들 때문이었다.

 지나온 계절 동안 같은 산책로를 여러 번 걸었는데 전혀 몰랐다. 동네 아파트 화단에만 있는 줄 알았던 작은 병꽃나무가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예쁘게 피어있었다니. 지난해부터 내겐 생일 꽃다발과도 같은 병꽃이 곳곳 어여삐, 오월의 풍경을 채우고 있을 상상을 하니 괜스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렇게 때때마다 잊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꽃들은 감동적인 선물이 되어준다.

 외할머니 생신 1월에는 저녁 어스름 빈 나뭇가지가 특히 근사하고, 3월 아빠 생신 근처에는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는 산수유가, 엄마와 동생 생일이 있는 4월에는 연둣빛 나뭇잎이 눈부시고 라일락 향기가 좋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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