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겐남, 그리고... 하이볼.

시련은 내면을 강하게 한다

by JJ teacher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요즘의 내 상황이 그렇다.

지난 10월 추석연휴가 막 시작되던 때, 어머니가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이대로 보내드릴 수가 없어 연명치료를 결정하고 인공호흡기를 다셨다. 이것이 진정 어머니를 위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어머니를 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지금도 중환자실에 계신다. 그리고 아내가 암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였지만 서울과 제주를 수시로 오가야 했고 종양제거 수술을 했다. 지금은 방사선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같이라도 살면 좋으련만....

이럴 때면 제주도로 내려갔던 결정이 후회가 된다. 서울에 있는 나는 주말이 되어도 제주에 가지 못한다. 어머니가 계신 중환자실은 오전 30분 동안만 면회가 가능하기에 내가 어머니를 볼 수 있는 때는 주말 뿐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씩씩하게 견뎌주고 있는 아내에게 감사할 뿐이다.


지난주 수요일 밤, 아내가 응급실에 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가 넘어져 무릎 수술을 해야 하고 입원을 한다는 연락에 둔탁한 무언가에 뒷통수를 맞은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병원에 있어야 했고 나는 당장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이 사면초가, 설상가상이라고 하던가? 아슬아슬 지켜오던 가정의 평화가 모두 깨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내를 보러 내려갈 수 있는 주말을 기다렸다. 제주도로 떠나려는 토요일 아침, 딸이 일어나자마자 토를 했다. 딸의 얼굴을 만져보니 열이 불덩이 같았다. 딸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간 나는 예매했던 비행기표를 모두 취소했다. 열이 39도가 넘었고 독감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주말을 딸간호를 하며 보냈다.

KakaoTalk_20251124_002138175.jpg


나는 원래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나를 감성적이라고, 보기 드문 F남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내가 싫다. 지금도 슬픈 영상이나 이야기를 보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심지어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가도 감동적인 장면,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먼저 목이 메이기도 한다.

그런 내가 이제는 울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가 인공호흡기를 다는 순간에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소리를 낼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항상 씩씩하던 아내가 암판정을 받고 내 앞에서 울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아내가 다리를 다쳐 수술을 하고, 딸이 독감에 걸려서 꼼짝없이 서울에 있어야 해도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울고 무너지면 가족들은 누구에게 기댈 수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도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시련은 내면을 강하게 한다.

그토록 눈물이 많던 내가 이처럼 숱한 일에도 울지 않으니 나는 지금 강해지는 과정에 있다.

"괜찮니? 힘들지 않아?"

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다. 사실 그렇게 힘든 것도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은 얼른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근무하는 직장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며

"선배, 다른 건 다 괞찮은데 하이볼은 못 끊겠어요."

라고 하자 선배는

"마셔. 그런 것도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

라고 말했다.

그래, 마시자. 이런 것도 없으면 내가 어찌 버틸까.....

눈물 많은 에겐남, 오늘도 하이볼 한잔에 버틴다.

KakaoTalk_20251124_002223411.jpg 인생 참 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발적 외로움과 불편함에 익숙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