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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운 Oct 15. 2024

필사 입문자를 위한 다정한 가이드

바야흐로 춘추 필사 시대


"바야흐로 춘추 필사 시대"


초등학교 교과서도 태블릿으로 대체된다고 하는 요즘이죠?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는 부담을 덜어주는 e-book리더기가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시대와는 어딘지 썩 어울리지 않는 취미가 급부상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 연예인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에서 필사를 취미로 즐기고 있는 유명 여자 아이돌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필사 열풍이 더 거세게 불어오는 것 같습니다.  


필사 그게 왜? 대체 뭐가 좋고 뭐가 힐링이라는 거야? 하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오늘은 필사에 대한 아래의 이야기들을 다정히 전해드릴게요.


▶ 필사의 쓸모

필사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필사 도구

필사하기에 좋은 책 고르는 법 





필사의 쓸모



마음의 우물을 좋은 문장으로 채우는 일


같은 분량의 글을 눈으로 쓰윽 훑어보며 읽는 것, 오디오북 듣듯 귀로 듣는 것 중 어떤 게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아시나요? 경험해 보니 오디오로 2배속을 해서 듣는다고 해도 사람의 눈이 빠르게 글자를 스캔하는 시간을 앞서지 못하더라고요. 금방 읽고 지나친 문장은 그러면 마음에 얼마나 오래 남을까요? 뇌리에 꽂힌 문장이 아니고서야 읽고 지나치면 그만인 문장이 되기 십상이겠죠?


물론 잊고 싶지 않은 문장이라면 여러 번 다시 읽으며 곱씹을 수도 있지만 필사를 통해 마음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기게 되면 어쩌면 책 없이도 그 문장은 마음에 오래오래 남아 언제든 불러올 수 있는 나의 좋은 문장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마음속에 머무는 어두운 감정들을 가만히 밀어내고 나에게 방긋 웃어주는 문장을 넣어두면 외롭고 지친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볼 때, 구름 뒤에 숨어있던 문장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수도 있을 테죠? 잘했고,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라고요.




몰입의 마중물


시험기간에 책상에 앉으면 그렇게 책상정리가 하고 싶던 사람 바로 저였거든요? 이것저것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물건들을 치우다 보면 어느새 피곤함이 밀려와서 하려던 공부대신 청소만 열심히 하던 날들이 많았는데요, 필사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 몰입을 위해 아주 훌륭한 마중물이 되어줘요. 미리 필사할 책과 종이, 노트를 준비해 두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하는 게 포인트인데요) 필사를 먼저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공부모드가 활성화되면서 이어서 무언가 계속해나갈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하는데요 그렇게 필사로 마중물이 딱 끌어올라 잘잘잘 흐르기 시작하면 원래 계획했던 공부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거죠.


생각이 너무 많아 시작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추천하는 방법이에요. 일단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새로운 생각들이 건져지기도 하거든요. 쓰다 보면 자기 갈길을 문장들이 서로 찾아내기도 하고요. 쓰기 시작하며 잠자던 뇌에게 노크를 하고 잠을 좀 깨운 다음 스트레칭도 하고, 워밍업을 충분히 하고 달리기를 시작하면 훨씬 편안한 경주를 이어갈 수 있겠죠?





즐거운 필사생활을 위한 도구들



필사 입문자를 위한 책 추천

나는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 | 정민 지음 | 동양북스 출판


필사가 좋다는 건 알겠지만 그럼 어떤 책을 필사할지에 대해 궁금하실 텐데요, 유명한 고전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를 떠올리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러분보다 조금 먼저 필사를 해본 입장에서 권해드리는 건 한 권의 책을 통필사하는 것보다는 정제된 문장이 잘 편집된 필사책으로 시작하시면 어떨까 싶어요. 이유는요? 필사가 목적인 우리들에게 너무 좋은 책은 필사 대신 독서를 하는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게 할지도 모르거든요.


필사를 위해 좋은 문장을 발견하는 시간도 물론 소중하지만 책을 읽은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필사도 독서도 그저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가벼운 필사의 시작을 위해서는 그저 따라 쓰기만 하면 되는 필사책으로 시작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너무 동떨어진 분야의 내용만 필사책에 담겨있다면 읽고 있는 관심분야의 책 중에서도 주요 문장을 다른 색지로 구분해 놓은 편집이 잘 되어 있는 책을 고른다면 필사할 문장을 찾기 위한 시간을 조금 줄일 수도 있어요.




필사 입문자를 위한 노트

노트는 필사의 형식에 반영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처음부터 어떤 방향으로 필사를 할지 생각해 보고 결정하시는 걸 추천드려요. 다꾸를 좋아하는 프로 다꾸러라면 밑줄이 진하게 그어진 노트보다는 프리노트가 다양한 꾸밈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문장이 일정하지 않고 지렁이처럼 오른쪽으로 갈수록 흘러내리는 게 싫다면 모눈칸이 인쇄된 책받침을 하나 준비하시고 프리노트 밑에 대고 필사를 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이런저런 꾸밈 말고 담백한 문장만 필사하고 싶은 경우에는 자신의 평소 글씨체 크기와 맞는 7mm 혹은 1cm 간격의 라인노트를 구입하시면 되고요. 필사할 문장에 내 이야기를 보태고 싶은 경우라면 라인과 박스가 위아래로 구성된 노트를 찾아보시면 문장과 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볼 수도 있겠네요. 만약 마음에 드는 노트를 시중에서 찾지 못하시는 경우라면 불렛저널을 한 권 구입하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불렛저널은 작은 도트가 일정한 간격으로 찍혀있어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직접 라인을 그리거나 모양을 그려 노트의 내용을 구성할 수 있는데요 창작의도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지만 세팅하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시면 됩니다. 시작이 어려운 만큼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도 크다는 장점이 있으니 필사의 즐거움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신 경우에 불렛저널을 필사노트로 활용하시는 것 추천드리고 싶어요.




필사 입문자를 위한 펜


하늘 아래 똑같은 립스틱은 없다는 거 알고 계시죠? 마찬가지로 하늘 아래 똑같은 펜은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만, 정말로 그렇답니다. 필사를 하기 위해 모나미 153 볼펜 한 자루 말고 뭐가 더 필요하냐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세상엔 두껍고 얇은 펜, 반짝이는 펜과 반짝이지 않는 펜, 볼펜, 수성펜, 유성펜, 중성펜, 형광펜, 마커, 색이 변하는 체인지 펜 등등 정말 다양한 펜들이 있거든요. 그래도 처음 필사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가장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을만한 펜을 추천한다면 스태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두꺼운 펜, 제목용), 펜텔 에너겔 0.5, 파이롯트 프릭션 정도를 추천합니다. 


먼저 스태들러 피그먼트 라이너는 제목이나,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쓰기에 적당한데요 펜촉의 방향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굵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 딱딱한 고딕 글씨체를 연출하기에 좋아요. 그리고 펜텔 에너겔은 부드러운 필기감에 종이 질을 많이 가리지 않고 잘 써지는 편인 데다가 굵기가 적당해서 사진을 찍어도 글씨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파이롯트 프릭션 볼펜은 펜 뒤에 붙은 고무로 글씨를 지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데요 볼펜으로 쓴 글씨 위에 화이트 칠한 흔적을 남기기 싫으신 완벽주의자 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펜입니다.





그 외 필사에 대한 팁


필사책을 구입하시는 경우에는 첫 한 글자를 써 내려가기가 굉장한 부담이 되실 수 있는데요 혹여 볼펜똥이라도 삐죽 번지는 날에는 시작과 함께 필사의 의지가 뚝 꺾여버릴지 모르니 꼭 먼저 필사할 종이에 펜 테스트를 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센스 있는 회사에서는 펜 테스트를 위한 종이를 따로 챙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프롤로그나 에필로그 혹은 목차 페이지 한 구석에 펜 테스트를 해보고 예쁜 종이를 잘라내어 마스킹 테이프로 그 부분을 멋지게 가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어요.




필사의 매력에 곧 빠지게 될 당신께


필사를 하면 마음속에 어떤 한 공간이 생겨나는 기분이 들어요. 그 공간 안에서 문장과 내가 만나 조용한 대화를 이어가죠. 떠오르는 질문과 정리되는 생각들이 더 깊은 내면의 나를 만나는 길로 인도해 주는 신기한 경험을 여러분도 꼭 해보시길 바랄게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처럼 쉽게 변해버리는 세상에 혹여 변하지 않을 가치와 따스함을 기대하시는 분들이라면, 내가 적어둔 문장들이 변하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 오래도록 나를 위로하는 경험을 꼭 해보시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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