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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Jan 17. 2024

05 얘들아, 교무실 좀 그만 와

교무실이 바글바글, 대안학교의 가장 핫한 장소

2023 한국성서박물관 견학 중!


나 좀 앉자.
여기 교무실 맞나요?ㅜㅜ 항상 얘들이 더 많음


1교시 후 교무실, 선생님보다 아이들이 더 많다. 앉을 자리가 없어 의자 좀 앉아보려고 얘들 사이를 비집고 드디어 착석. 믹스 커피 한 잔 마시며 쉬려고 했는데 텄다.


인기가 많은 K 선생님은 가장 막내인 중1반의 담임이라 주위는 시장통이다. ‘어제 제가 돈가스를 먹었는데요.’부터 ‘선생님, 원래 머리가 곱슬이세요?’까지. 곧이어 학생부 J 선생님의 '우리도 좀 쉬자'는 호령에 아이들은 교무실 밖으로 나오고야 만다. 입을 삐죽 내밀고서.


아고, 이제야 숨 돌리며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80-90년대에는 지각을 해서, 머리가 단정하지 않아서, 시험을 못봐서, 때론 선생님이 기분이 안좋아서 맞았다. 처절했다. 막대기로 청소 밀대로 30cm자로, 그 딱딱한 출석부로 혹은 손이나 발로 아찔하고 무자비한 순간들의 연속.


그렇게 12년 학교를 다니는 동안 '좋았던 선생님'은 손에 꼽는데,(그나마 나는 몇 선생님들이 감사한 기억) 남편은 아무 선생님도 기억에 없다며 굉장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학교와 관련한 어떤 즐거운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며 지나 온 학창생활을 멍하니 돌이켰다.


선생님의 폭력와 폭언은 그 시절 당연했다. 합법적이었으니까. 고개를 들 수 없도로 낯뜨거운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늘어놓던 국어선생님부터, 수업에 왜 집중하지 않냐며 앞으로 나와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목을 밟던 수학선생님(선생님이 아니라 선생)까지. 아이들을 맘놓고 무시하고 야유하던 권리들은 하늘을 찔렀다.


이제, 아이들은 행복한가요?
체벌도 사라지고, 시간이 이렇게도 흘렀는데 우리는 언제쯤 행복해질까요?


우리의 학창시절은 지난 노래들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그 전쟁터에서 숨죽여 듣던 김동률의 노래가, 주고받던 너와의 아련한 교환일기가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 다행히 지금은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아이들이 행복한가?'는 그때와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두 사이에 끼어있는 교사조차 불행해 보인다. 그러고보면 학교는 누구에게도 안락한 공간이 되질 않나보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선생님들' 덕분. 어떤 선생님이 아이의 담임을 해도 걱정이 없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서, 해마다 바뀌어 담임을 해도 오히려 개성있는 선생님들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나는 파트타임 교사라 일주일에 3일 수업시간에만 가지만, 담임선생님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 계신다. 아이들을 케어하고, 수업을 하고, 행정을 처리하고, 때때마다 행사를 진행하고, 봄 가을 여행과 겨울 입학설명회에 쉴 틈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날은 입술이 터져있기도 하고, 엎드려 쪽잠을 주무시기도 한다. 갈수록 피곤은 점점 짙어가는데도 늘 웃으며 나와 아이들을 맞아주는 우리 선생님들.


여기는 기대도 될 어른들이 있구나.
믿어도 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들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들어주고 다정하게 답해주는 사람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년 이년 그리고 10년째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진짜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이 마음을 아이들은 안다. 진짜 좋은 어른들이구나. 여기에 기대고 싶구나.


아이는 모든 선생님을 다 좋아하지만, 담임선생님인 k선생님이라면 죽고 못산다. 어떻게 그렇게 퐁당 빠졌는지 헤어나오질 못한다.(비법이 뭡니까...대체) 한 학기동안 선생님 댁에 벌써 세 번을 놀러가서 자고 오고, 선생님도 우리집에 두 번을 오셔서 자고 가셨다. 급기야 아이는 선생님 집에 가서 살면 안되냐고 하다가, 그건 안되는 일이라고 하니 우리 집에 남는 방에 같이 살면 안되냐고 한다. 그러나 k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 중 1,2등을 달리는데 그래도 좋다는 건 말릴 수 없는 중병.


방학이 시작되지 얼마 전, 아이의 핸드폰에서 ‘카톡‘이 울렸다. k선생님이셨는데(보려고 한 게 아니라 보여서…진짜다…)  ’M 머리 잘랐네‘ 라고. 그 말이 뭐라고 울컥했다. 아이의 바뀐 헤어스타일이, 얼굴 표정이, 마음의 상태가, 오늘의 기분이, 너의 이런저런 것들을 주고받는 선생님와 아이.  


다시 학기가 시작되면 북적이는 교무실 틈새에서 믹스커피를 마시겠지. 그 애틋한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홀짝홀짝 마실 단맛쓴맛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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