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전국국어교사모임(이하 전국모)에서 학교로 날 찾는 전화가 왔다. 교장쌤께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이지?"했는데, 전국모 여름호 회지 원고 청탁이었다. 감사하게도 또 글을 종이에 실을 수 있다는 기쁜 생각에 별 생각없이 A4 10장 분량의 국어 수업 사례 글을 쓰게 되었는데...
생각보다는 험난한 과정. 에세이보다는 실용적인 수업을 소개하는 글이어서 좀 더 수업에 대한 체계적이고 명확한 부분들을 써야 했다.(설명하지만, 설명하지 않듯! 글쓰기는 참 어렵다.) 4월에서 5월 중반까지 글을 썼다 지웠다가 엎었다가 뒤집었다 하면서 편집자와의 수많은 교정 끝에 원고가 완성되었다.
회지에 실린 내용은 대안학교와 일반고등학교에서 국어 수업을 했던 부분들. 그리고 글을 쓰면서도 알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우리 대안학교에서 국어 수업하는 것이 나는 참 좋다.
흐트러져라, 너는 문학이다
- 단편영화 ‘유월’과 ‘샤메크블루위’ 사진찍기와 글쓰기
정아름 인천 이봄학교 jungar1215@naver.com
“전통적인 교실에서 수행하는 배움의 방식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무감각해지고,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상실하게 되었는가? …… 이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과정은 권태롭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는가?”
최근 부천 원일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행복한 학교’를 주제로 독서토론 수업을 하다 물었다.
“얘들아, 학교 어때?”
“싫어요!”
“왜?”
“재미가 없어요.”
“어떤 게 재미가 없어?”
“공부요. 수업 시간이요.”
‘권태롭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것’이라는 듀이의 말처럼 우리의 학교는 재미라곤 완전히 사라지고, 단절된 지식만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국어 수업도 나른한 유월처럼 아이들을 때때로 무료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내가 수업에서 자유와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글쓰기와 수업을 병행하면서부터였다. 최근에 연극과 뮤지컬 대본을 쓰면서 새벽까지 머리채를 붙들고 대사 한 줄을 쓰기 위해 새까만 밤과 텅 빈 종이를 대면했다.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다 거친 말을 내뱉으며 노트북을 덮었다. 환희와 고통 속을 오가고, 영혼은 유체를 이탈한 것만 같은 지점에서야 글은 완성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알았다. 자신만의 생각과 감상을 가지려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자유롭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컴컴한 마음 깊숙한 곳을 헤매며 한 단어, 한 문장, 자신의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
2021년 2학기, 부천 소사고등학교에서 2학년 ‘현대문학감상’과 3학년 ‘문학과 매체’를 가르쳤다. 내가 근무했던 대안학교와 달리, 당시 함께 한 일반고 아이들은 대부분 의욕이 없었다. 2학년 ‘현대문학감상’ 첫 수업. 뒷자리에서 엎드려 자는 아이를 살며시 깨웠는데 갑자기 팔을 확 휘두르며 노려보고는 다시 엎드려 자는 것이 아닌가. 옆에 있던 친구가 “선생님,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며 뭘 신경 쓰냐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수업 중에 자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무시해야 하나? 당시, 나는 정신과 병원 위 센터에서 우울증 등으로 병원에 입원한 청소년에게 국어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여서 고민이 두 배로 늘었다.
어떻게 하면 이곳저곳의 ‘의욕 없는’ 아이들과 즐거운 국어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선생님, 집에 가서 혼자 보세요.”라며 몰래 넣어주던 아이의 편지. “선생님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라는 아이의 글자 하나하나가 나를 새롭게 했다. 갈등과 기대 사이, ‘문학과 매체’ 수업은 시작됐다.
대안학교의 국어 수업
고등학교 시절, 술 냄새를 풍기는 나이 든 국어 선생님의 수업은 지루했다. 별표를 남발하는 문학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가끔 자유로운 기분이 들 때도 있었는데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파트리트 쥐스킨스의 《좀머씨 이야기》 속에서 그와 종종걸음을 같이 걸을 때, 동일 작가의 작품인 《깊이에의 강요》를 읽으며 홀로 그 ‘깊이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때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자유로웠다.
대안학교 국어 교사 11년 차. 입시와 공부가 목적이 아닌,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의 장이 있다면 그곳엔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대안학교에 들어섰다. 이곳에도 갈등은 있지만, 자유가 있고 차별은 적고 순수한 수업과 생활이 가능하고, 아이들과 교사가 친구가 될 수 있는 학교. 오늘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수다를 떠느라 교무실에 바글바글하다.
이번 학기, 대안학교에서는 국어와 별개로 ‘글쓰기 수업’이 개설됐다. 글을 즐기고, 또 잘 쓰려면 별도의 ‘글쓰기’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학교에서 흔쾌히 만들어 주었다. 글쓰기 시간 동안 깊이 생각하고 솔직하게 쓰고, 고쳐 쓰는 과정을 아이들과 연습 중이다. 중등부 10명, 톡톡 튀는 아이들의 말하기와 글쓰기로 이 반은 늘 기대가 된다. 6차시 ‘오감으로 느끼는 글쓰기’ 시간. 여러 감각을 이용해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자세하게 글을 써 보기로 했다. 빼빼로를 하나씩 나눠준다. 나는 먼저 “절대 먹지 마시오!”를 강력히 외치고, 아이들에게 빼빼로를 살펴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또 손으로 잡은 부분의 촉감을 기억한 다음, 천천히 먹으면서 맛을 느껴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위아래로 유심히 빼빼로를 관찰한다. 킁킁거리며 빼빼로를 코에 갖다 댄다. 초콜릿이 묻지 않는 과자의 결을 만져본다. 이어 또독, 씹는 소리가 고요한 교실에 퍼진다. 이제 오감으로 느껴 본 빼빼로를 글로 쓸 시간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느낀 점을 쓰도록 했다.
초콜릿이 녹고 나무가 보인다.
나무는 오독오독 씹힌다.
이빨은 도끼가 된다.
도끼는 나무를 자른다. (권혜성, 이봄학교 중2)
“이번 학기는 매주 수요일마다 온종일 독서 수업을 하는 건 어때요?”
교장 선생님의 예상치 못한 제안. 1-6교시 내내 독서 수업은 가능할까?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을까? 나는 대답을 주저하다 독일의 발도르프 교육이 떠올랐다. 발도르프의 에포크 수업에서는 동일한 과목을 매일 2시간씩 3-5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정해진 교과서 없이 선생님과 많은 대화와 토론을 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에포크 수업처럼 한 주제를 깊이 다루며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수업이라면 아이들에게 넓은 시각과 깊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헨미 요의 에세이 《먹는 인간》과 한국 사회의 주요 문제들을 다룬 《한국의 논점》 책을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했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논의해보면 좋을 사회 문제와 이에 관련된 문학과 매체를 연결해 독서 수업을 진행해 나갔다.
1, 2교시는 아이들이 충분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전 독서 수업에서는 책을 미리 읽어오게 했는데, 책읽기가 숙제가 되니 아이들에게 책 자체가 괴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책을 읽어오지 않는 아이를 나무라는 것도, 따로 책읽기를 시킨 다음 수업에 참여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1, 2교시동안 아이들에게 책 읽을 시간을 주었더니 아이들은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며 집중해서 읽는다. 텀블러의 물을 홀짝이며 책을 읽는 아이들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3, 4교시는 읽은 책과 관련된 영상을 시청했다. 영화나 다큐, 혹은 강의나 뉴스 등을 다양하게 연계했다. 영상을 본 후에는 1,2교시 때 읽었던 책 내용을 가볍게 나누고, 미리 준비한 질문들을 같이 고민해 보았고 토의 및 토론주제를 정해 아이들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보았다. 5, 6교시에는 질문지 내용을 글로 정리했는데 감상문이나 기사문, 논설문 등 여러 형태의 글을 썼다. 가장 아이들이 활발하게 참여했던 것은 아이들이 직접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해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정한 주제의 자료를 조사하여 프리젠테이션을 만들고 발표했다. 발표 후에는 각자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나는 일주일 내내 수업 준비를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독서 수업을 끝내고 나면 진이 빠졌지만,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하루종일 독서 수업만 하는 것도 괜찮은데요.”라는 게 아닌가. 어쩌면 아이들은 책을 읽고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데, 교사가 감히 상상하지 못해 아이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건 아닐까.
대안학교의 국어 수업은 내가 고등학교 때 겪었던 수업과 달랐다. 마치 학교 도서관에서 느꼈던 그 자유로움과 닮았다. 대안학교에서는 아이들 모두가 국어 수업에 재미있게 참여하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또 아이들은 글을 쓰며 즐거워했고, 더 쓰겠다고 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다음 시간에도 또 쓰면 안 되냐고 물었다. 시키지도 않은 글을 써서 가져오고, 선생님과 친구들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최근 1200자 소설 쓰기를 했는데, A4 한 장을 훌쩍 넘은 아이들이 꽤 있고, “시간 다 됐다.”라는 말에 “안돼요. 조금만 더요!”라며 ‘글을 더 쓰겠다고’ 간절히 애원하니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교무실까지 따라와 “선생님, 제 소설 읽어 보셨어요? 어떠셨어요? 말해주세요.”라며 아직 읽지도 않은 나를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