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대책이 없는 건 나다. 무급 방학은 10년째 긴장된 나날. 그런데 아무 생각도 없이 대학로에서 연극도 보고, 홍대에 놀러도 갔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허걱 대고, 드라마 스페셜 <국시 집 여자>와 <아득히 먼 춤>을 찾아보고 김애란의 소설을 여전히 훔쳐봤다. 통장 잔고와 상관없이 새로 나올 그녀의 장편 소설에 예약 구입을 누르기 직전까지.
나이를 먹고도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건 '죄'가 될까. 그런데 평생 살고 싶은 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죄'스러움을 느꼈다. 그렇게 얻은 것은 매 순간 주춤거림, 무수한 빈말. '억울한 인생'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럽다. 모든 순간을 선택한 건 나니까. 더 나은 선택을 위해 고민하고 망설였지만 제자리였던 날들. 그동안 나는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여름은 내게 또 '죄'스러움을 안겨준다. 책상에는 토마스 만, 카뮈, 소로우의 책이 널려져 있다. 이 책 저 책을 넘기다 점심에는 김밥을 쌌다. 아이들과 설민석이 소개하는 '동물농장'을 보고, 책을 찾으려 책장을 뒤진다. 큰 아이는 '동물농장'도 안 읽고 어떻게 국어를 가르치겠냐고, 큰소리를 친다. 너의 말은 대부분 맞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다 여름을 맞았는데, 나는 그대로 집 속에 고꾸라져버렸다. 가을이라는 게 오는 건지 믿기질 않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나는 사는 게 좀 '재미'가 있다. 그런데 들키지 않기 위해 '재미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 아무에게도.
그런데 어쩌나. 불안의 안개는 깔리지만 대책없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지금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나 더 보태자면 읽고 있는 책들을 끝까지 읽어내야 한다는 것. 그 정도 노력은 할 수 있겠지. 아무리 대책 없는 너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