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중에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에 재능이 있는 이들이 꽤 있다. 영국 전 총리 윈스턴 처칠과 미국 전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그림을 그렸다. 독일 전 총리 헬무트 슈미트는 피아노를 연주했고, 빌리 브란트는 만돌린(?)을 연주했다. 처칠과 아이젠하워의 그림 솜씨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었고, 작품도 많이 남겼다.
슈미트는 클래식 음반을 출시할 정도로 피아노 연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독일 북부 한자 동맹의 도시 뤼베크에 있는 빌리 브란트 하우스에는 브란트가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담배를 물고 만돌린을 연주하는 사진이 있다.
만돌린(?)을 연주하는 독일 전 총리 빌리 브란트(사진 : 필자가 뤼베크 빌리 브란트 하우스에서 촬영)
우리나라 정치인으로는 전 총리 김종필이 여러 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렸고, 피아노와 아코디언 연주도 했다. 그림은 개인전을 열 정도로 잘 그렸으며 골프도 잘 쳤다고 한다.
129억 원에 팔린 처칠의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
2021년 3월 1일 처칠(1874〜1965)의 작품 한 점이 고가로 팔려 화제가 되었다. 그의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Tower of Koutoubia Mosque)’이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828만 5000파운드(약 129억 원)에 팔렸다고 한다. 1943년 1월 처칠이 카사블랑카에서 회담한 후 루스벨트 대통령과 함께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고도(古都) 마라케시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처칠은 이 작품을 1951년에 트루먼 대통령에게 우정의 표시로 선물했다고 한다.
처칠의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사진 : 경향신문, AP)
트루만에게 선물했던 이 그림은 돌고 돌아 한때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소장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관심을 더 끌었다. 처칠은 40대부터 그림을 시작하여 5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바쁘고 힘든 정치 일정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아데나워 하우스에 있는 처칠과 아이젠하워의 그림
나는 처칠이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의 작품이 이 정도 거액으로 거래되는 줄은 몰랐다. 처칠은 트루먼뿐만 아니라 서독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에게도 그림을 선물했다. 아데나워는 폐허가 된 그리스의 신전을 담은 처칠의 그림을 아침 식사를 하던 방에 걸어 두고 보았다. 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걸려 있다.
처칠과 아데나워는 같은 시기에 살았고, 두 사람 다 전후 총리로 재임했었다. 처칠의 두 번째 총리 재임기간(1951〜1955)은 아데나워의 총리 재임기간(1949〜1963)과 4년간 겹친다. 처칠이 두 살이 많았으며 2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는 1990년대 본 Bonn 근교 뢴도르프에 있는 아데나워 하우스에 두세 번 갔었다. 그때는 그림을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예술적 감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년 전인 2019년 6월에 다시 아데나워 하우스에 들렸을 때 아데나워 하우스 관계자가 설명을 해주어 비로소 처칠의 그림을 보았다. 처칠의 그림 이외에 또 다른 유명 인사의 그림도 보았다. 값비싼 공산품이 아니라 자기가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고받는 정치인들이 멋져 보였다.
아데나워 총리가 아침 식사를 했던 방에 걸려 있는 그림들. 왼쪽이 처칠의 그림이고, 오른쪽은 아이젠하워의 그림이다. (사진 : Ⓒ 손선홍)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던 아이젠하워
처칠 그림과 함께 걸려있는 또 다른 그림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가 그린 숲 속의 나무 그림이다(위 사진 오른쪽 그림). 아이젠하워는 50대 후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3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음에도 꽤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이다.
독일 국제방송인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그림에 재미를 붙인 그는 1960년 겨울에 독일 바이에른 알프스 지방의 람사우(Ramsau)에 와서 이곳의 명소인 성 세바스티안 교회를 그렸다. 그는 이 그림을 완성한 후 프린트하여 친구들과 백악관 참모들에게 그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바이에른주 람사우의 성 세바스티안 교회(그림 출처 : DW)
처칠이나 아이젠하워는 총리와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격무에 쫓기면서도 정치를 잠시 멀리하며 여유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을 즐기며 정치에서도 여유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정치는 살벌하기 그지없다. 협치는 말뿐이다. 권투 선수가 비틀거리는 상대방을 구석에 몰아넣고 최후의 한방을 날리려는 권투 시합과 비슷하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예술이나 문화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면 생각할 시간도 가지면서 정치가 좀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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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도시로 떠난 독일 역사 문화 산책』 (2020, 푸른길), 102-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