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 of chicago
시카고 힐튼 호텔의 사진을 처음 본 건 오래전이었다.
금빛 샹들리에가 드리운 로비, 대리석 계단 위로 떨어지는 빛,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 안을 거니는 상상을 하며 나는 마음속에 메모를 남겼다.
“언젠가, 나도 그곳에 있을거야 .”
그리고 그날이 왔다.
뉴욕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나는 시카고 도착 첫날을 힐튼에서 보내리라 기대했다.
시카고는 내게 미지의 도시였다.
뉴욕보다 더 깨끗하고 조용하며, 어쩐지 지적인 공기가 흐를 것 같았다.
공항에서 내려, 여행 책자와 안내서들을 품에 안고 나는 기차에 올랐다.
그러나 곧 낯선 어둠이 나를 둘러쌌다.
기차 안에는 피로한 얼굴들, 이해할 수 없는 시선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의 냄새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도시의 그림자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Hilton Chicago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여덟 시를 넘기고 있었다.
피로가 몸을 잠식하던 그때, 로비의 화려함은 이상하게 낯설었다.
체크인 카운터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체크인을 담당해준 직원은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결제한 디파짓 100달러 중 오늘 안에 25달러 크레딧을 꼭 사용하셔야 합니다. 내일이면 소멸됩니다.”
그 말은 혜택처럼 들리지 않았다.
늦은 밤, 닫힌 가게들 사이에서 ‘무조건 써야 하는 돈’은
웰컴 기프트가 아니라 작은 의무처럼 느껴졌다.
방 문을 열었을 때, 어둠이 먼저 나를 맞았다.
커튼을 젖히자, 창밖은 벽이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회색의 벽.
나는 미시간 호수의 반짝임을 상상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건 도시의 무표정한 등줄기였다.
욕실의 배수구에는 오래된 얼룩이 남아 있었고,
하얀 수건 옆에는 작은 벌레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옷을 걸려던 나무 옷걸이는 손끝에서 부서졌다.
나는 잠시 그 조각을 바라보다가,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완벽을 향한 기대가 부서지는 소리가 그렇게 들렸던 걸까.
피로와 체념이 동시에 몸을 감쌌다.
그날 밤,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앉았다.
커튼 틈새로 스며드는 도시의 불빛이 벽에 부딪혀 사라졌다.
그 빛은 마치 시카고의 그림자 같았다—화려하지만 닿을 수 없는,
찬란하지만 어딘가 슬픈.
공항에서 챙겨온 여행 책자들은 가방 속에 그대로 있었다.
아트 인스티튜트, 밀레니엄 파크, 재즈 바의 이름들이
낡은 종이 속에서 희미하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꺼내지 않았다.
그날 밤은,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무엇을 느꼈느냐’의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회색 벽 뒤로 새벽 햇살이 비치자
나는 이상하게 평온했다.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야 비로소, 나는 스스로의 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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